유림이 아뢰기를,
“신이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로 있을 때에 보았습니다.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 선미(船尾)에서 지휘하는 사람은 반드시 머리를 내밀어 살피는 것이 관례인데, 불행하게도 그 사람이 먼저 탄환에 맞아 쓰러지게 되면 배는 항해할 수 없습니다. 사수가 지갑(紙甲)을 지니고 있듯이 화수가 머리를 내밀어 살필 때에도 머리를 방어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니, 철주(鐵冑) 앞에 가면(假面)을 만드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밑의 갑붕이가 말해준 승정원일기 1639년 3월 21일 기사인데
인조랑 통제사 유림이 왜군 침공에 대비해서 논의하면서 화포도 정비하고 배 장갑도 두텁게 하고 얼굴에 안면갑 씌우자는 말이 나옴.
전체적으로 유림의 제안에 인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내용.
유물이나 회화 기록이 없긴 하지만 조선 전기 장창이나 장검처럼 분명히 널리 쓴 게 맞는데도 유물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어서 안면갑이 수군 일부에 그쳤다면 자료가 안 남을 수는 있음. 뭐 일부라도 쓴 건 쓴 거니까...
다만 형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는 게 아쉽네. 짤처럼 하회탈을 그대로 썼을 수도 있고 일본 멘구랑 비슷한 형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런 형태일 수도 있고.
실제론 시행안된 것 같은데
자기 판타지 충족용으로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뭐임? 그럴것같으면 걍 판타지를 파
판타지를 만들어도 역사적 근거가 1줄이라고 있고 없고 차이가 큼
뭔 말도 안돼는 궤변이야
응 호흡관리 힘들어~
나도 탈 관련 기록 싹 뒤져봤는데, 그나마 좀 비스무리한 기록은 이방원이가 밤에 올빼미 우는 거 무섭다고 근위병들에게 방상씨탈 씌우고 근무 세운 거 정도
동아시아에서 면갑을 주로 쓴 건 일본 정도나 있고, 중국도 면갑은 제식 정도의 소수나 썼었고, 갑갤 아이돌 철부도 같은 찰갑도 소수 중장기병대 정도나 가능했지 대부분 안면을 까고 다녔음. 그냥 드림이나 목가리개 정도로도 충분히 카바 가능했다고 생각했거나, 얼굴 가림으로써 시야 제한 거는 걸 더 디메리트라고 생각했겠지
다른 건 몰라도 하나 확실한 건 오늘날에도 안면 방탄 같은 건 개같이 답답한 물건이라는 거
그딴거 없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