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마치 봉액처럼 보이는데 이상한 모습이다. 금꽃으로 장식한 높은 모자는 거의 2자에 이른다. 비단 옷에 푸른 포에 띠는 느슨하게 매어 바지까지 내려온다.
아마도 고려인들은 선천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 특별히 높은 모자와 비단으로 장식하여 그 용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11 의장대(仗衛) 1
갑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마치 봉액처럼 보이는데 이상한 모습이다. 금꽃으로 장식한 높은 모자는 거의 2자에 이른다. 비단 옷에 푸른 포에 띠는 느슨하게 매어 바지까지 내려온다.
아마도 고려인들은 선천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 특별히 높은 모자와 비단으로 장식하여 그 용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11 의장대(仗衛) 1
고려도경 하나만 가지고 다른 나라들에 있는 몽골 갑옷 그림이나 기록 개무시하는 클라스ㅋㅋㅋ - dc App
교차검증이 무슨 말인지 아슈? - dc App
그럼 고려 갑옷을 고려에 대한 기록으로 믿지 뭘로 믿냐? 그리고 지금 올라온 서양에서 그린 몽골군 갑옷도 다 다른 데 저게 몽골갑옷일지 어떻게 앎?
이야 몽골에 관한 다른나라 기록들은 다 못믿는디 서긍은 믿는당께요 - dc App
어 다른나라가 기록한 몽골갑옷 중 몽골습래회사에 나오는 갑옷은 없습니다요
다른나라 기록을 안믿는게 아니라 고려갑옷이란 증거가 있는데 몽골갑옷이라 우기는 병신들을 못믿는거지
그게 니 혼자만 생각하는 증거라고요. 뭔 실물 갑옷이 있나, 다른 나라에서 교차검증되는 소스가 있나
그래도 의구심 들면 여기 명백하게 의문점 야기 하고 있으니까 들어가봐
https://m.cafe.daum.net/shogun/1Db/6025?listURI=%2Fshogun%2F1Db
의문점만 이야기하지 고려도경의 글 한줄만 가지고 주장하는 게 너랑 뭐가 다름? 너 진짜 교차검증 모름? 다른 나라가 묘사한 몽골군 회화, 유물, 기록 같은 건 다 개무시하고 지 말만 맞다고 하네ㅋㅋㅋ - dc App
깃털투구 고려 갑옷을 묘사한 묘석이나 조각도 존재하는데 지 뇌피셜로 암튼 내가 맞음 - dc App
가마쿠라 후기에 일어난 몽고습래 (몽골전쟁)에 관한 사료는 의외로 적다. 그 중에서도 이 전쟁에 참가한 비후국 (肥後国:히고노 구니,현·구마모토현) 고케닌이었던 다케자키 스에나가가 그리게 했다는 「몽고습래회사」(궁내청 소장)는 두 번에 걸친 전쟁을 생생하게 묘사한 매우 드문 역사 자료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현재의 상태가 된 것은 에도시대 관정 연간 (19 세기 초)의 수리·성권(成巻)에 의한 것이다. 또한 이 두루마리 그림에는 착간과 개변이 많아 관정의 수리에서 적지 않은 보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통은 하나 뿐인「옥서」(권말의 작성취지서)가 둘이나 존재하는 외에 용지 종류 또한 일관성이 없는 등 의문 투성이인 두루마리 그림이다.
따라서 본 작품을 역사연구의 측면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면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 회화작품이라 해도 본 두루마리 그림이 원래의 실제 모습을 묘사 한것은 아니다. 본 작품의 모습에서 순수하게 역사적 사실을 추출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두루마리 그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면밀한 사료 비판이 필요한 이유이다. 즉 이 두루마리 그림의 성립에 얽힌 작
작성자의 의도와 목적, 현장에 대한 상상적 복원, 최근의 몽골전쟁 연구와 두루마리 그림 자체의 연구성과에 입각해 규명해 본다. 이러한 작업에 의해 몽골전쟁의 표상론에 대한 범아시아사적 단서를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시모토 유 橋本 雄 (홋카이도대학)
일본교수도 몽골습래회사는 고증오류가 많아고 평가하잖아 미국 박물관 뒤져서 유물찾아보고, 똑같이 처맞은 이슬람애들이 그린그림들 가져오면 "아 몽골습래회사가 틀린부분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게 정상아니니?
이슬람 애들이 그린 거도 연대나 이슬람 문화 영향 이런거 다 감안하면 그게 100% 오리지널 몽골 갑주라고 보기는 힘들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