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관련 종종 들르긴 했는데 성벽 관련해서 질문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까 질문드립니다 ㅠ
중세 마을 관련 사진들을 보면 마을 둘레로 성벽을 쌓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이 성벽을 아예 한 군데도 뺴놓지 않고 사방으로 두르는게 원칙일까요?
어떤 사진을 보면 앞과 옆에만 성벽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정작 중요한 성 뒤에는 성벽이 없는 거 같은 사진을 본 거 같은데 이 경우는 지형의 특성 때문인지
대체로 중세에 마을들은 사방에 성벽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로마나 엄청 큰 도시의 경우는 성벽을 그만큼 크게 쌓을 수가 있었던 걸까요? 부피가 엄청났을텐데..
아니면 그런 대도시도 초입에는 성벽이 없다가 중심부로 갈수록 성벽이 생겼던 걸까요? 엄청난 대도시들은 외곽방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대도시 만들어야징! 하고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거점/마을이 존재했고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발전하면서 성벽도 목책 정도 두르다가 대충 돌로 쌓고, 제대로 된 방어를 위해 쌓는 형식으로 발전됨. 근데 암만 그래도 대도시 전체를 싸는 건 굉장힌 비용이 들어가고, 막상 그 방어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병력이 필요해질 수 밖에 없음. 당장 조선조차도 한양 더럽게 긴 성벽을 다 커버할 병력이 없어서 임란 때 수도 포기하고 런 했는데, 보통 조선보다 인구수가 더 적었을 중세 유럽이면 더하면 더했지.
로마같은 경우도 초창기 빌빌거리던 도시 국가 시절엔 성벽을 충실히 갖추었지만, 포에니 이후 지중해를 자기네 앞바다 삼은 이후엔 카이사르가 그냥 쿨하게 성벽을 무너뜨렸음. 수도 쳐들어오기 전에 차단하면 되지 그보단 도시 확장에 방해되는 게 더 안좋음 이란 마인드. 근데 이후 게르만 준동으로 로마가 공격당해서 다시금 성벽이 필요하게 되었고, 몇년 꼴아박아서 다시 로마를 둘러싸는 성벽을 만듬. 근데 역시나 이 아우렐리우스 성벽도 15km 넘는 더럽게 긴 길이 때문에 제대로 방어할 병력을 못만들었고 이후 몇번씩 로마가 털림.
그나마 대도시의 성벽으로 제대로 기능한 건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 정도나 되지만, 이것도 바다 쪽은 그냥 바다에 맡기고 뚫려있는 육지에 몰빵한데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인데다 길이 자체도 6km 밖에 안됐다고 함. 근데 얘도 몇번씩 방어를 해냈지만 결국 십자군에 털리고, 투르크에게 털리고 그랬음.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궁금한게 말씀하신 카이사르의 경우라면 적군이 성벽에 다다르기 전에 먼저 나가서 전투를 벌이는 방식을 생각했던 걸까요? 각종 영화나 드라마 만화를 보면 공성전 같은 경우 성문을 두고 양 측이 치열하게 싸우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적군이 침입하는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그 앞의 성문에서 대기를 하다가 싸우는 거겠죠? 그런데 말씀하신 역사적 사례의 경우를 비추어 볼 떄 결국 방어해내는 쪽의 부피가 넓을 수록 수성 쪽의 인력이 부족할 테니 실제로는 침입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겠군요.
그것보단 당시 로마 주변과 외부 안보가 확실하게 로마 우위로 굳어진 것도 커서 그럼. 바로 위의 갈리아/게르만은 카이사르가 갈리아원정 때 두들겨팼고, 지중해 주변 국가들도 카르타고는 멸망한지 오래, 그리스도 황혼기에 들어가서 옛날 같지 않고, 이베리아도 내전 때 쳐맞고 수그러든데다 이집트도 클레오파트라가 아예 카이사르랑 관계를 맺은데다 끽해야 저 멀리 서아시아의 파르티아 정도나 큰 안보위협이 됐으니깐.
로마 성벽에 침공하기 이전에 국경 부근에서 중요 요충지를 막는 게 더 효율적이니깐.
수성/공성전은 흔히 매체에서 묘사하는 피터지는 치열한 공성전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음. 기본적으로 공성은 성을 포위하고 말라 죽을 때까지 버티고, 수성은 반대로 포위한 쪽이 못버티고 떨어져나갈 때까지 버티는 게 주목적이니깐. 거기다 공성 입장에선 최대 3배가 있어야 수월하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피해가 크게 입는 전투라서 공성 한번만 하고 전쟁 끝내거나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하는 조건이 없는 이상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었음.
아 그리고 성공한 도시 방어전 케이스가 있긴 했네. 오스만에게서 수차례 공성전 끝에 버텨낸 빈 공방전이 있음. 근데 얘네도 나중엔 도시 확장에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성벽 해체해버림.
빈 공방전의 경우에도 1차는 오스만 군의 보급이 부족했고, 역병까지 돌아서 길게 포위를 유지 못했고, 2차 땐 각잡고 보급 챙겨와서 말려죽이기 직전까지 갔는데, 빈에서도 집을 무너뜨려서 시가전을 유도하고 끝까지 버텨서 구원군이 오스만 후방을 공격할 때까지 존버를 성공함.
다시 정리하자면 요충지나 애초에 방어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채나 요새에 비해서 도시 성벽은 태생이 넓은 도시라는 것 때문에 긴 방어선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많은 숫자의 방어군을 요구해서 실질적인 방어력은 콘스탄티노플 같은 특별한 지형을 제외하곤 성채/요새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었다 라고 보면 됨. 다만 빈 공방전 같이 후방에서 보급을 충실히 받거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존버가 가능한 케이스도 있다 정도로 인식하면 됨. 이게 안되면 로마 꼴 나는 거고.
재밌는 글이네 글고 보니 성벽 갤 같은건 없나? 그쪽도 관심있는데
너무 마이너해서 그쪽 관련 커뮤니티는 잘 못본듯. 네이버 부흥 카페 쪽에 한국 성벽들을 다른 나라 성벽들과 비교한 글이 시리즈로 간간히 올라왔던 거 같음.
자세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비용 문제도 커서, 넓은 면적을 방어해야 하는 경우엔 적들이 돌파하기 힘든 일부 지형엔 성벽 덜 쌓는 경우도 있었음. 윗댓에 언급한 콘스탄티노플도 바다가 여러 방향을 막아주다보니 성벽을 비교적 한정된 방면으로 집중해서 쌓을 수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