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카더라 단편적 발언 하나만 가지고 확신하면 좀 곤란함. 그러면 임란 때 우키타 히데이에가 "무기의 질이 형편없다. 소수는 열심히 응전하여 싸우지만 지휘관과 장수들은 공격이 시작되면 대부분 도망친다" 라고 했다는 레퍼 불명의 드립쳤는데 정작 우키타는 행주대첩 때 졸렬한 지휘하다 화차로 두들겨맞고 죽을 뻔하고 전쟁도 졌었음.
Ha_rang(phr8812)2023-10-13 16:31
답글
그리고 너풀거리는 소매를 정리하고 손목 보호도 할 수 있는 토시 유물은 오늘날에도 차고 넘침. 안에 털가죽 댄 것들도 있고.
Ha_rang(phr8812)2023-10-13 16:34
답글
마지막으로 소매 이야기는 명나라 초기에는 고려양이 유행이었고, 홍치제가 고려양 금지 때렸어도 지들 도포 같은 건 여전히 입고 다녔으니 자기들 소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확률이 높음...
임란때 이야기에 명초의 패션의 한 갈래인 고려양을 언급하는게 무슨 상관인지?
왜장의 조선군 평가나 토시는 걍 논점일탈이라 상종할 가치도 없고
익명(112.167)2023-10-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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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가 말했는지 어디에 기록됐는지도 모른 카더라 하나만 가지고 확실한 증거 운운하는 건 맞고?
그리고 고려양 뿐만 아니라 명 복식 자체가 조선과 크게 차이가 나지않고 서로 교류가 있었기에 소매 운운은 말도 안된다는 게 이해가 안됨? - dc App
Ha_rang(phr8812)2023-10-13 22:49
답글
설령 조선 소매가 더 길었다고한들 그거 정리하는 토시, 습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건 유물도 회화도 다 존재하는데 대체 뭘 믿고 저 말에 신빙성을 느낌? - dc App
Ha_rang(phr8812)2023-10-13 22:50
답글
역시 주제랑 무관계한 헛소리
ㅂ2
익명(223.38)2023-10-14 13:06
답글
소매이야기 본문에 버젓이 있는데다 레퍼 하나 없는 이야기 쳐믿는 능지 보소 - dc App
Ha_rang(phr8812)2023-10-14 15:51
어느부분이 결정적인거야?
아르군(dkfmaldjem)2023-10-13 16:36
이런 문헌증거씩이니 필요없음
그림도 없고 기록상 보유수도 적고 유물도 거의 없는데
자주 썼다는게 씹국뽕이지
익명(223.39)2023-10-13 17:04
애초에 조선군이 비갑을 잘 썻으면 의장용 식양갑으로 전락했을때도 비갑을 형식화한 토수를 같이 썻을거임 그 예로 청나라를 들수가 있고 걔넨 아예 비갑을 소매처럼 연결해버리기 까지 했는데 조선은 그런 비갑을 형식화한 토수는 커녕 제대로 발견되는 유물도 거의 없이 여반장군 비갑이 꼴랑 다잖어 그니깐 사실상 안 쓴게 맞지
갑갤러 1(110.9)2023-10-1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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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조선왕조실록에 비갑 검색하면 버젓이 수량이 몇개가 있다고 나오는데 니 뇌피셜로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거냐?
갑갤러 2(182.211)2023-10-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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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씨 무슨 내가 조선군은 비갑을 아예 안썼다고 말한거냐 저게? 글 맥락을 이해를 못하냐? 비치물자로 창고에 장비가 얼마 얼마 있고 뭐뭐 수리하고 다시 제작해야되는지 의논한걸로 너는 그게 조선군이 비갑을 "아주 잘" 사용한 증거라고 할수있냐? 창고에 비치물자로 박아두고 여러가지 이유대면서 안쓰는건 요즘 군대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인데?
갑갤러 1(110.9)2023-10-14 20:28
이 병신은 발언한 기록이 있다면서 어디 기록인지는 말을 안해주노 ㅅㅂㅋㅋ
갑갤러 2(182.211)2023-10-14 15:23
그건 허생전에서 말하는 소매 넓은 옷 이야기지
무령왕 호복이야기나
걍 품이 큰 옷 입고 다니는게 문제라는거지 비갑이야기는 아님
그런 카더라 단편적 발언 하나만 가지고 확신하면 좀 곤란함. 그러면 임란 때 우키타 히데이에가 "무기의 질이 형편없다. 소수는 열심히 응전하여 싸우지만 지휘관과 장수들은 공격이 시작되면 대부분 도망친다" 라고 했다는 레퍼 불명의 드립쳤는데 정작 우키타는 행주대첩 때 졸렬한 지휘하다 화차로 두들겨맞고 죽을 뻔하고 전쟁도 졌었음.
그리고 너풀거리는 소매를 정리하고 손목 보호도 할 수 있는 토시 유물은 오늘날에도 차고 넘침. 안에 털가죽 댄 것들도 있고.
마지막으로 소매 이야기는 명나라 초기에는 고려양이 유행이었고, 홍치제가 고려양 금지 때렸어도 지들 도포 같은 건 여전히 입고 다녔으니 자기들 소매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확률이 높음...
https://m.blog.naver.com/bottall/222138798916
본문하고 좆도 관계없는 레퍼만 줄줄이 사탕
명 복식 이야기인데 본문이랑 뭐가 관계가 없음? 소매 이야기도 있는데 - dc App
임란때 이야기에 명초의 패션의 한 갈래인 고려양을 언급하는게 무슨 상관인지? 왜장의 조선군 평가나 토시는 걍 논점일탈이라 상종할 가치도 없고
그럼 누가 말했는지 어디에 기록됐는지도 모른 카더라 하나만 가지고 확실한 증거 운운하는 건 맞고? 그리고 고려양 뿐만 아니라 명 복식 자체가 조선과 크게 차이가 나지않고 서로 교류가 있었기에 소매 운운은 말도 안된다는 게 이해가 안됨? - dc App
설령 조선 소매가 더 길었다고한들 그거 정리하는 토시, 습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건 유물도 회화도 다 존재하는데 대체 뭘 믿고 저 말에 신빙성을 느낌? - dc App
역시 주제랑 무관계한 헛소리 ㅂ2
소매이야기 본문에 버젓이 있는데다 레퍼 하나 없는 이야기 쳐믿는 능지 보소 - dc App
어느부분이 결정적인거야?
이런 문헌증거씩이니 필요없음 그림도 없고 기록상 보유수도 적고 유물도 거의 없는데 자주 썼다는게 씹국뽕이지
애초에 조선군이 비갑을 잘 썻으면 의장용 식양갑으로 전락했을때도 비갑을 형식화한 토수를 같이 썻을거임 그 예로 청나라를 들수가 있고 걔넨 아예 비갑을 소매처럼 연결해버리기 까지 했는데 조선은 그런 비갑을 형식화한 토수는 커녕 제대로 발견되는 유물도 거의 없이 여반장군 비갑이 꼴랑 다잖어 그니깐 사실상 안 쓴게 맞지
아니 조선왕조실록에 비갑 검색하면 버젓이 수량이 몇개가 있다고 나오는데 니 뇌피셜로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거냐?
??? 아니 씨 무슨 내가 조선군은 비갑을 아예 안썼다고 말한거냐 저게? 글 맥락을 이해를 못하냐? 비치물자로 창고에 장비가 얼마 얼마 있고 뭐뭐 수리하고 다시 제작해야되는지 의논한걸로 너는 그게 조선군이 비갑을 "아주 잘" 사용한 증거라고 할수있냐? 창고에 비치물자로 박아두고 여러가지 이유대면서 안쓰는건 요즘 군대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인데?
이 병신은 발언한 기록이 있다면서 어디 기록인지는 말을 안해주노 ㅅㅂㅋㅋ
그건 허생전에서 말하는 소매 넓은 옷 이야기지 무령왕 호복이야기나 걍 품이 큰 옷 입고 다니는게 문제라는거지 비갑이야기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