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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군 강응건의 보병이 조선군과 합세하여 부차 들판에 진을 쳤는데, 이를 보고서 두이치 버이러가 주둔하고 이어 여러 버이러들이 잇달아 마침내 포진하여 앞으로 나아가 싸웠다.'

'강은건의 병사들은 모두 낭선죽간장창을 잡고서 등갑 가죽 갑옷을 입었으며, 조선군은 모두 종이 갑옷과 버드나무가지 투구를 입었는데 조총을 층층이 겹쳐 포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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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입고 있던디...???

위는 이후 청나라 모든 실록의 원류가 되는 [태조무황제실록]의 기록으로 사르후 전투 당시 조선군의 모습을 본 팔기의 감상이다.

대충 전 병력이 짱짱한 철제중갑을 갖춘 모습은 아니라 하더라도(어차피 중갑 착용비율은 명, 청, 조선군 다 일부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상대했던 적군이 바라보기에도 전장에 투입된 병력 전체가 섬유재질 갑주라도 다 챙겨입고 있는 모습이다.

위의 묘사대로면 결국 명군이나 조선군이나 가죽제 및 천제 갑주를 대부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등갑이나 종이 갑주나 피갑이나 그게 그거고 재질의 차이지 디자인이 뭐 어떤 건 나무덩굴 얽기섥기 엮고 어떤 건 종이 나풀거리고 그런 게 아니란 얘기.

특히나 조선군이 착용했다는 지갑의 경우에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명나라 양식의 영향도 일정부분 있었기에 디자인 면에서는 더더욱 유사했을 것이다.

암튼 적군이 그랬다는데 뭔 말이 더 필요하겠나?

비싸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고급 갑주는 아니더라도 일단 전장에 나서는 병사들에게는 최대한 방호구를 챙겨서 몰아줬고 그걸로도 부족하면 아예 병사 개개인이 직접 구비하기도 했다는 얘기다.

다른 글에서 기록을 들었지만 조선 전기 일반병들이 선호했던 '엄십갑'의 경우 개별적으로 제조해서 입는 사례도 비교적 흔했던지 지나가는 병졸한테서도 물어보니 상세한 갑주 제작법이 술술 흘러나왔다. 오히려 물어본 중앙관리가 '옹야? 우리 이 방식대로 중앙에서 대량 제조해서 전방에 뿌리져?'하고 임금에게 건의 때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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