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갑주관련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전부 검색하다가 


단장취의 하는 꼬라지가 뭔지 이 기사를 통해 봤다.




한국고전종합DB (itkc.or.kr)


요약

인조 27년 기축(1649) 3월 19일(무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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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戰船)의 군졸들은 모두 갑옷을 착용하도록 하였는데, 배 1척에 90인을 싣는 것이 규례이니 철갑(鐵甲) 90령(領)을 만들어야 합니다만, 비록 해마다 더 보태어 만들게 하더라도 한 고을의 공역(工役)으로는 마련해 낼 리가 만무합니다. 선상(船上)에서 장령(將領)이라 불리는 자들에게만 갑옷을 입게 한다면, 마련해 내기 어려운 데 대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한 말 또한 식견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 1척에 원래 정해진 사수(射手)와 포수(砲手)는 40명에 불과한즉 90인이라는 말은 잘못 들은 것 같으며, 장령에게만 갑옷을 입게 하자는 것 또한 온당치 못할 듯합니다. 각 고을의 물력에 따라 편의대로 마련하면 될 뿐이고, 기한을 정해 독촉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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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벌 만들기도 힘들고 사수, 포수 40명인데 90인 잘못들은거 아니냐?


대충 이 기록으로 인터넷상에서 조선수군은 갑주 모두 착용 하지 않았다 논고로 끌고 가는데


며칠 뒤 기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인조 27년 기축(1649) 3월 26일(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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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舟師)가 있는 각 고을들을 지나가다가 그 수령이 하는 말을 들으니, ‘배 1척에 90인을 싣는데 모두 갑옷을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혀 마련해 낼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걱정입니다.’라고 하기에, 신은 들은 바에 따라 계달하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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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조가(朝家)의 분부에 갑옷을 착용하도록 한 자는 단지 사수와 포수 40명뿐이었는데, 아마도 각 고을에서 문서를 잘못 보아 한 배 내에서는 사수나 포수, 격군을 막론하고 모두 갑옷을 착용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 이렇게 운운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각 고을에서 착오를 일으켰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신 또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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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은 각 고을에서 배에 90명 타니까 일괄쳐서 90벌 필요하다고 얘기한 듯? 으로 정리.




그런데 가장 중요한 18일의 상세한 기록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27년 기축 >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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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통제사의 장계로 인하여 전선(戰船)의 군졸들은 모두 갑옷을 착용하도록 하였는데, 지금 또 거듭 밝혀 이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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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선의 군졸들은 모두 착용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고, 90벌이냐 마냐는 그 이후 소통이 잘못되어 발생한 착오를 일컫는 내용이었음.


전후과정 따지면 상기 기사는 절대 전선위의 수군 모두도 갑주를 입지 못했다로 삼을 수 없는 기사인 것임.





이왕 승정원 일기 켠 김에 갑주 내용을 좀 더 찾아봤는데 이시백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17년 기묘 > 7월 23일




이시백이 아뢰기를,

“갑옷 600벌을 만들려면 소용되는 소가죽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떻게 한꺼번에 하겠는가. 입어서 불편하다면 만들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하고, 상이 이르기를,

“중국의 갑옷이 좋은가?”

하니, 신경진은 아뢰기를,

“좋습니다.”

하고, 이시백은 아뢰기를,

“오랑캐의 갑옷이 매우 좋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 3, 4자 원문 빠짐 - 우선 오랑캐 갑옷으로 만들라.”



여기서 오랑캐의 갑옷은 두정갑을 얘기하는데 이 이후의 기사를 보면 유엽갑(찰갑)이 만들기는 어려워도 기름칠 해두면 오래가니


찰갑 더 만들어라 하는 내용 있는거 보면 병자호란 이후 상당기간 이후에도 갑자기 두정갑 다 쓰고 그렇지도 않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