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력이 좋고 생산이 쉽고 유지 관리도 가장 편한 갑옷이 두정갑.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몽골 이후부터는 사실상 주력갑옷이 됨.
근데 이걸 부정하고 절대 그럴리 없다 개거품 무는 병신들은 두정갑이 맟춤제작 풀 플레이트급으로 비싸서 못함 이지랄 하던데.
장식 없이+겉감과 안감을 비단이 아닌 마,베,면포로 함+방호재를 어떤것을 쓰느냐(당장 유물중에 가죽찰이나 종이찰 같은 재료를 쓴 두정갑도 있고말임.)
로 하면 일반병도 무난하게 구할수 있는 갑옷이 두정갑이라는걸 생각도 못하나?
지휘관용 두정갑이야 장식넣고 비단쓰고 자수도 넣고 별거 다 하느라 개 비쌀수 있지 일반병 갑옷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건 뭔 병신임?
당장 증거로 남아있는게 몽골이 일본 쳐들어갔을때 그림 병사들 갑옷 대다수가 두정갑이고 울산성 공성도도 모든 병사가 두정갑인데.
그냥 좆병신들이라고밖에 생각 안됨.
두정갑을 일반병까지 애용했다. X / 어찌됐든 일정 양식의 다양한 재질의 갑주를 일반병까지도 구비하려 애썼다. O - dc App
비교적 군비가 충실했던 조선 초기에도 엄심갑이나마 구비하는 게 일반병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조선의 갑주 비축 방식은 기본적으로는 동원되는 병사 개개인이 사비로 마련하고 그 외 별도로 일정분량 각도의 군기시에서 제조 및 비축해놓은 물량을 불출하는 방식이었음. - dc App
보인제 무시하는 수준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인제는 징발된 병사가 임지로 떠난 이후로 남은 정군의 가족의 생계를 보인 보조해주는 거지 보인이 무슨 경제력을 모아서 정군을 무장시켜주는 그런 게 아님. - dc App
병신인가 5가구가 돈모아서 갑옷 장만하게 한 실록기록이 버젓이 남아있는데.
물어보자 병신아 어느 기록에 조선이 병사 개개인이 갑옷사고 무장했다디? 병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패 갑사(步牌甲士)들이 착용한 갑주(甲冑)가 그 체제가 균일하지 않고 칠한 빛깔이 광채가 없어, 행행(行幸)하실 때나 사신(使臣)을 영접할 때 보기에 부끄럽사오니, 청하옵건대, 갑사 2백 명이 착용한 두모(兜牟)를 군기감(軍器監)의 첨(詹)이 있는 두모를 택하여 황단(黃丹)으로 이를 칠하고, 쇄아갑(鎖兒甲)의 아래 선[緣]과 소매는 홍염피(紅染皮)로 이를 장식하고, 사람마다 칼을 차고 바른편에 골타자(骨朶子)를 메게 하여, 보는 자로 하여금 엄숙한 느낌을 갖도록 하소서." 세종 7년 3월 7일 기사. 갑사들의 갑주가 형식이 제각각이니 군기감에서 통일시키자는 건의. 군비를 각자 갖추었다는 걸 볼 수 있음. - dc App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709001_004
+兵曹啓:
"近因凶荒, 諸道民生可慮。 今考雜色軍丁甲冑兵仗, 一時盡點, 非徒騷擾, 盡賣田産, 必致失業, 姑令每一戶備冑一、甲一、劍一, 其弓箭及槍, 不必皆備。 每一牌內五分之三備弓箭, 五分之二備槍, 以爲定數, 漸次而備。 每隔一年, 加備一物, 隨備隨點, 勿令監司都節制使差使員巡, 行點考, 只使其官守令點考, 以待都巡檢使下界。" 從之。
지금 잡색 군정(雜色軍丁)의 갑주(甲胄)와 병장기(兵仗器)를 상고하되, 한꺼번에 다 점검(點檢)한다면 소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토지와 재산을 다 팔아서 반드시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니, 잠정적으로 매 1호(戶)마다 투구 한 개, 갑옷 한 벌, 칼 한 자루만 준비하도록 하고, 그 활·화살과 창은 반드시 다 준비하지 아니하여도 되며, 매 1패(牌)내에 5분의 3은 활과 화살을 준비하고 5분의 2는 창을 준비하게 하여 정수(定數)로 삼아 점차 준비하도록 하되, 매양 1년씩 걸러 한 가지 물건을 더 준비하게 하고 준비하면 곧 점검하도록 하되" 세종 17년 9월 1일 기사. 일반병들이 자력으로 병기를 구비하는데 점검할 때마다 미처 동원 기준에 맞추지 못한 민중이 소란을 일으키거나 원망해서 - dc App
실록이 아니라는데 병신아?
동원 기준 자체를 좀 낮추어 자력으로 천천히 병기를 갖출 유예기간을 주자는 취지의 건의. - dc App
1호(3~5가구)한테 갑옷 구비하라고 하는데 씹는수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가 예를 든 저 기록이 조선 전기 병기 구비를 병사 사적으로 했다는 대표적인 기록임. - dc App
5가구가 돈모아서 병사 1명 무장시키는게 개개인이라고? 지랄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1호는 말 그대로 1가정이다. 1패가 한 패로 묶인 다섯 가구고. 기본적인 건 알고 가자. - dc App
저 기사는 1호. 즉 한 가정에서 징발되는 한 병사는 각각 - dc App
기본적인 갑주와 도검 정도는 필수로 갖추도록 하고, 1패로 묶인 5가구에서는 거기서 나아가 각자 활로 무장한 궁수 3명과 창수 2명으로 무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임. 1호로 봐도 병사 개인이 기본적인 갑주와 도검은 갖추어야하는 게 맞고 1패 기준으로도 어떻게든 다섯 가구 안에서 찌그락째그락 돈을 모아서 활 5장과 창 2자루는 갖춰야 한다는 얘기임. 뭐로 해석해도 병사들이 직접 동원기준에 맞추어 자비로 무장했다는 소리. - dc App
https://ko.wikipedia.org/wiki/%EB%B4%89%EC%A1%B1
1호=5가정 좆병신 수준.ㅋㅋㅋㅋㅋㅋㅋ
병신아 5가정이 칼 갑옷 투구는 필수구비 활 창 화살은 흉년이니 봐줌이 어떻게 개개인이 갑옷을 샀다가 돼냐 장애년아
호(戶)로써 이런 일을 부담시킬 때에는 봉족호(奉足戶) 또는 조호(助戶)라고 하였다. 이 호(戶)란 부호(富戶)는 1정(丁)이 단독으로 호를 구성하였으나, 빈호(貧戶)인 경우에는 5정을 1호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3정을 1호로 삼는 것이 통례(通例)였다. 야 이걸 그렇게 해석하는 게 어딨냐. - dc App
니가 병신이지 장애년아 버젓이 1호=3~5가정이라고 적혀있는데 개개인이라며
저기서 1호란 정군 1가정을 보조할 보인 가정을 규정하는 건데, 보인이 부유할 경우 기본적으로 보인 1가정이 정군 1가정을 책임지는 1호가 된다는 것이고 보인들이 좀 빈한하면 서로 힘을 합쳐 정군 1가정을 보조하는 다섯 가정이 1호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소리임. 기본적으로는 보인 3가정이 정군 1호를 보조하는 게 평균이었다는 소리고. - dc App
무엇보다 보인이 있건 없건 조선 전기 일반병들이 병장기를 자기구비했다는 사실과는 관려 없음. 당장 정군-보인 체제가 조선 중기는 가야 제대로 자리잡는 체제라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말여. - dc App
지------랄 개개인 아닌거 팩폭당하니까 우기는 수준ㅋㅋㅋㅋㅋㅋㅋ
글쓴이도 실록 기록을 잘 살펴보는 것 같으니 실록에 점고로 검색해봐라. 조선 전기에 나라에서 병장기와 병력 숫자를 점검할 때마다 각 도가 다 난장판임. 미처 기준에 맞는 무장수준을 갖추지 못한 동원대상 민초들이 급하게 병장기 갖추려고 난장판을 일으키거든. - dc App
논점 돌리고 튀는 수준ㅋㅋㅋㅋㅋㅋㅋㅋ병신아 다음부턴 개소리 씨부리기 전에 배워라
"외방(外方)의 군사가 모두 군장(軍裝)을 갖추지 않고 이웃 고을에서 빌려다 점검과 사열에 응한다고 하니, 그러한가?"하니, 황수신이 말하기를,"그렇습니다."하였다. 노숙동이 말하기를,"연호군(煙戶軍)1596) 이 군장(軍裝)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타의 선군(船軍)과 시위군(侍衛軍)·영진군(營鎭軍)1597) 은 모두 갖추어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만 견고하고 날카롭지 못할 뿐입니다. 갑사(甲士)나 별시위(別侍衛)에도 간혹 갖추지 못한 자가 있으며, 내금위(內禁衛)·충순위(忠順衛)·충의위(忠義衛)·방패(防牌)·육십(六十)1598) ·별군(別軍)·총통위(銃筒衛)도 모두 갖추지 못하였습니다."문종 1년 11월 25일 기사. - dc App
마찬가지로 외방각처의 군사들 중 병장기를 완전히 갖 추지 못한 자가 많이 조정이 근심하는 기사. - dc App
그리고 병신아 니가 맨 처음 가져온 실록기록도 병사 개개인이 갑옷산단 이야기가 아니란다 병신아
"그렇다면 지금 법을 세워서 외방 군사의 군장(軍裝)을 점고(點考)1599) 하면 죄(罪)를 받을 자가 반드시 많을 것이니, 갑자기 시행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 그러나, 임신년1600) 9월 16일에 이르러 시행한다면 그 이전에 준비하는 자도 또한 많을 것이며, 비록 혹시 갖추지 못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죄는 주지 않는 것이 가(可)하다." 하였다. 임금이 또 묻기를, "병조(兵曹)에 임무가 많은 것은 나도 또한 알고 있으나, 아직 어떻게 하여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이에 급하게 점검하면 또 미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소란할까 미리 준비할 유예기간을 주자는 문종. 관료들 중 일부는 1년 4교대의 번상제가 병사들에게 부담이 크니 1년 5교대로 늘리자는 건의. - dc App
링크도 없고 검색해도 안나오는 개소리를 해봤자.ㅋㅋㅋㅋㅋㅋㅋㅋ실록사이트 있는데 뒤져도 안나오네? 그리고 병신아 결국에 나온 근무서는 애들은 갑옷입고왔다는거잖아 장애야 상번군이 갑옷입고 하번군이 집 가면서 벗고갔다는게 무슨 문제라도? 장애년
뭐라노 병신아 시대불문하고 '갑사'는 무조건 병장기 자기구비인데 이거 기본적인 것도 모르노??? - dc App
https://sillok.history.go.kr/id/kea_10111025_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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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가' 에서 무과쳐서 돼는 갑사가 일반병 돼는 수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노 지랄거리는 베충이 수준 잘 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병신이지만 실록 링크 건 건 잘했다 다음부턴 늘 그래라 병신아
갑사가 '양반가', '무과'란다ㅋㅋㅋ 갑사취재하고 무과 구분도 안되나ㅋㅋㅋㅋ - dc App
그게 '일반 병' 돼는 근거라도? 병신년 수준.
가만 보니까 그냥 기본적인 조선 전기 군체제 지식하고 사료 해석이 안되는데 걍 좀 더 이것저것 보고 익혀라. 기본적으로 조선전기에서 중기까지도 조선군의 갑주 보유량이 대중들의 통념 이상으로 충실했다는 니 지적에는 동의하는데, 여러 사료로 봐도 그렇다고 사변시에도 전 병력이 두정갑을 갖출 수준은 아니었다. - dc App
지랄에 끝까지 정신승리 우기기.ㅋㅋㅋㅋㅋㅋㅋ추하다.병신아 사료가 증명하는데 아니라고 우기는거보면 정병새끼네
고로 일반적인 동원일 경우에는 갑주를 구비하지 못한 인원에게 1차적으로는 정부가 비축한 물량을 풀어 무장시키고, 2차적으로는 병사들 개개인이 병장기를 서로서로 빌려줘서 어떻게든 동원 인원들의 갑주와 무장상태를 동원기준에 맞추는 게 가능했음. - dc App
문제는 그 일반적인 수준의 동원을 뛰어넘는 급변사태 때인데. 가령 임진왜란 같이 온 동리 장정은 다 뛰쳐나가야 하는 전면적인 침공사태 같을 때에는 전 병력이 다 갑주를 갖추지 못했을 거임. - dc App
사료 남은게 아니라는데 어디서 개가짖나 우겨봤자 개소리뿐
두정갑 빌런은 이때도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