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병도 두정갑 다 입었다 vs ㄴㄴ 안입음
아니면
찰갑이 주력이다 vs 두정갑이 주력이다
이거더라.
근데 두정갑 다 입었다는 증거자료가 있는데. 아니라는 쪽은 없고.
두정갑이 주력이란 쪽은 증거가 있는데 찰갑이란 쪽은 증거자료가 없음.
그리고 증거자료 가지고 찰갑이 주력이라거나 병사는 두정갑 안 입었다는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고 했는데.
대뜸 욕박음.ㅡㅡㅋ
그냥 객관적으로 드러난 증거로 판단하면 병사도 다 두정갑 입었고 두정갑이 주력임.
반박시 증거좀
두정갑 다 입었다는 증거자료가 있다고? - dc App
당장 일반병들 입을 엄심갑도 부족해서 땜빵하기 쉽지 않았던 조선이 전군 두정갑? - dc App
일본이 그린 조선군은 모든 병사가 두정갑인데? 왜란 직후그림인 울산성전투도 보면 그냥 나옴.
그리고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라고 조선이 여진 쳐들어간거 왜란 2년전에 그려진것도 전원 두정갑임.
공통점은 병사 전원이 갑옷이 입었다는 것,그리고 그 갑옷은 두정갑인 것.
이거 말고도 다른 조선기록 보면 엄심갑은 1프로도 안됨.대부분 갑이라고만 적혀있지만 당시 보편화된 조선 두정갑을 그냥 갑이라고 표현했으니 대다수는 두정갑이라고밖에 생각안됨.
1. 전근대 회화자료의 그것도 타국 복식을 묘사함에 있어 정확성에 대한 검토는? 2. 조선 전기에 두정갑이 보편화되었다는 증거는? - dc App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시전부락 토벌 당시에 전투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그린게 아니라 이일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라 갑옷 고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참고하기에는 부적절한 그림일 거임
그럼 몽골이 일본 쳐들어갔을때 그려진거 생각해보셈.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하게 그렸음. 결국 울산성도도 마찬가지. 보편화에 대한 증거는 그냥 간단하게 남은 유물 보면 압도적으로 절대다수가 두정갑임. 기록도 두정갑이라고 하던거 그냥 갑이라고 바꿨고.결국 이게 보편화 증거.
이일의 손자라고 하더라도 결국 두정갑 전원임은 부정못하는 사실임. 결국 두정갑 다 입었다라는거로밖에 판단안됨.
니가 말하는 그 보편화는 조선 중후기에 들어서서 나타난 변화임. 근데 지금 말하는 임란 이전 시기는 조선 전기고. 조선 전기에 두정갑이 보편화되어서 조선군 전체가 착용했다는 과격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는 한참 모자라. - dc App
? 일본이 그린 그림이랑 여진토벌도는 무시하는 이유는? 근거는? 그럼 두정갑이 주류가 아니라면 반박을 증거 대면서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