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제고 방군수포제고 하는게 왜 생겼겠냐??ㅋㅋ
조선군이 갑옷 전부 빠방하게
입았을거라는 주장은 조선 군제가 이상적으로 돌아갔을때 이야기지 ㅋ
보병들은 “오늘날 이른바 보병이라고 하는 자들은 병사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 병사가 아니다.…왕래할 때 무릇 4, 5개월이 걸리고 番下하여 집에 있는 날이 없다”240)라는 형편이었다. 농민의 피역 저항 속에서 정상적인 보인의 지급도 되지 않는 터에 이러한 군역의 부담은 농민들의 정상적인 영농을 저해하였고 농업생산력을 감퇴시켰다.
중략
서울에서 원거리에 있는 보병이 번상근무를 하기 위해 왕래하는 데 엄청난 고통이 따랐고, 또 물가고 등에 의해 서울에서 복무하는 것보다 대립을 하는 것이 경비가 절감될 수도 있었다. 번상근무는 전국 각처에서 행해졌다. 極邊지방의 경우 번상에 걸리는 시일만 무려 8∼9일이 되기도 하였다. 보병들이 번상을 하기 위해 高山峻嶺을 넘고 강을 건너 서울로 올라올 때 다치거나 빠져 죽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였다. 한편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올라온 보병들은 보인에게서 보포를 받아와 생활해야 했는데 서울은 ‘穀貴貨賤’이라 하여 면포 1필이 쌀 한 말밖에 안되는 경우도 있어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244)
-우리역사넷
보인들의 경제적 지원의 실상이 뭐다??
먹을 쌀도 없는데 갑옷이요??ㅋㅋ
조선군이 갑옷 전부 빠방하게
입았을거라는 주장은 조선 군제가 이상적으로 돌아갔을때 이야기지 ㅋ
보병들은 “오늘날 이른바 보병이라고 하는 자들은 병사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 병사가 아니다.…왕래할 때 무릇 4, 5개월이 걸리고 番下하여 집에 있는 날이 없다”240)라는 형편이었다. 농민의 피역 저항 속에서 정상적인 보인의 지급도 되지 않는 터에 이러한 군역의 부담은 농민들의 정상적인 영농을 저해하였고 농업생산력을 감퇴시켰다.
중략
서울에서 원거리에 있는 보병이 번상근무를 하기 위해 왕래하는 데 엄청난 고통이 따랐고, 또 물가고 등에 의해 서울에서 복무하는 것보다 대립을 하는 것이 경비가 절감될 수도 있었다. 번상근무는 전국 각처에서 행해졌다. 極邊지방의 경우 번상에 걸리는 시일만 무려 8∼9일이 되기도 하였다. 보병들이 번상을 하기 위해 高山峻嶺을 넘고 강을 건너 서울로 올라올 때 다치거나 빠져 죽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였다. 한편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올라온 보병들은 보인에게서 보포를 받아와 생활해야 했는데 서울은 ‘穀貴貨賤’이라 하여 면포 1필이 쌀 한 말밖에 안되는 경우도 있어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244)
-우리역사넷
보인들의 경제적 지원의 실상이 뭐다??
먹을 쌀도 없는데 갑옷이요??ㅋㅋ
저 기록 어디가 갑옷을 안 입었다는 증거가 됨? 설명좀. 당장 남겨진 일본이 그린 그림은 병사 전원 두정갑인데. 저 기록이 이 증거에 대한 반박이 됨?
아따 증거갖고 오라그래서 기록 갖고오면 저게 왜 증거가 되냐고 털어대니 천하무적 승리법이네 ㅋㅋㅋ 대단하다
실록에 적힌것도 아니고 링크도 없고 그냥 써놓으면 근거가 됨?
선생님이 조선 전기 군인들이 갑옷 잘 갖춰입었을거라면서 한 말이 봉족이든 보법이든 군역지는 사람을 지원한다면서요 ㅋㅋ 근대 실상은 먹을 쌀도 없을 지경이라는데 어쩔??
그럼 그 실록 적힌 링크 가져오면 해결됨.근데 안하니까 그러지.실록에 봉족제는 정확하게 적혀있고.
면포 한필에 쌀 한말 기록은 연산군8년 9월기록이니까 찾아봐라 ㅋㅋㅋ
아니 그걸 주장하는 니가 가져와야지.여기 베글은 반박하면서 다 실록기록 링크 박아가면서 반박했는데?
너 애초에 우리역사넷이 어디서 운영하능데인지도 모르지??ㅋㅋ
말돌리지말고. 그렇게 주장하려면 마땅한 증거와 근거로 삼을만한 그곳의 링크를 걸라는데 왜 못하는지?
애초에 처음엔 저 기록 어디가 증거가 되냐고 따지던 양반이 갑자기 실록기록은 왜 찾으시는지?? 국사편찬위원회는 증거 안된다 못믿는다는 양반이 조선왕조 실록 긁어오면 믿는다고 하는 건 웃기 않음??ㅋㅋ 국사편찬위는 실록 안보고 소설책 보고 저거 쓰기라도 했니??
그런듯.글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