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한 달의 값이 많아야 7∼8필(疋)에 불과하였습니다. 근래에 해마다 흉년이 들어 아무리 곡식이 귀하고 물화가 천하다 하여도 전의 수량에 배를 올리면 족할 것인데, 지난번에 10배로 올렸기 때문에 상번(上番)의 호수(戶首)172) 가 자기의 보인(保人)들에게 받아들이는 양곡 값의 물건도 전의 10배가 됩니다. 가난한 백성은 한말의 곡식과 한 자의 베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렇게 많은 포백을 준비할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전답과 재산을 모두 팔아서 수량을 보충하는 형편입니다. 이리하여 날로 더욱 피폐되어 가는데, 지금은 법을 만들어 수량을 정해서 각처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전대로 외람된 수량을 몰래 징수하는 일을 조정에서 일일이 살펴서 규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침탈과 포학이 날로 더해져 상번의 호수들도 지탱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 월리(月利)를 내어 수량을 채워서 밀린 납물(納物)을 내려보낸 다음 월리의 수량을 또 보인들에게 징수하고 있으니, 명목상으로는 감수(減數)하였다고 하지만 폐단을 받는 것은 여전합니다.

이리하여 지탱할 수 없어서 파산하고 부역을 도피하는 자가 잇따라 발생하게 되며 살아갈 방책이 없다보니 그대로 도둑의 무리가 되어 다음 차례 번(番)이 올라올 때에는 전호(全戶)가 빠지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본 고을에서는 공명(空名)으로 장부를 만들어 놓으면 궐립(闕立)을 올려보내라고 행이(行移)하여 독촉합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일족(一族)과 절린(切隣)에게 가포를 배로 징수하여 색리(色吏)를 시켜 여러 부처에 바치게 합니다. 일족과 절린들은 모두 신역(身役)이 있는데 그 신역 이외에 또 폐단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심한 경우 일족내에 2인의 호수가 도피하였으면 그 2인의 가포를 내야하고, 3인이 도피하였으면 3인의 가포를 내야 하므로 겹겹으로 폐단을 받습니다. 이리하여 이들도 지탱할 수 없어서 일족과 절린들이 도망하여 흩어지게 되므로 공명의 가포를 충당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또 일족의 일족과 절린의 절린에게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읍과 마을이 날로 텅 비게 됩니다.

신이 순행할 때에 관사의 뜰에 몰려와 울부짖으며 호소하였는데, 책상에 쌓인 소장(訴狀)은 모두가 군역을 빠진 자의 일족과 절린들이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곳은 곡성(谷城)이었습니다. 그곳은 본시 잔읍(殘邑)인데 보병의 원액(元額)이 1백 84호 내에, 현존의 호수에 대한 보인도 충정(充定)하지 못하여 호수가 단신으로 입역하는 자가 매우 많고 절호(絶戶)가 94호나 되어 원액의 반이 되는데, 이 절호의 가포를 궐호의 일족과 절린에게 내게 합니다. 나주(羅州)와 영광(靈光) 등 10여 고을에도 보인의 수를 충정하지 못한 곳이 많지만 절호는 없고, 여타의 각 고을에는 많고 적은 것은 같지 않으나 절호가 많으므로 폐단이 역시 같습니다. 전의 수교(受敎)에 따라 한정(閑丁)·승인(僧人)·고공(雇工)·반인(伴人)173) 등을 현재 쇄출(刷出)하여 충정시켰으나, 이 많지 않은 쇄출인으로 많은 궐호의 수를 충당할 수 없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구제할 방책이 없습니다.

지난번 병조의 수교에 ‘원액의 궐호는 여외병(旅外兵)을 없애고 이들로 보충하라.’고 하였으나, 지금 각 고을의 군액수를 조사해 보니, 여외병이 많고 궐호가 적은 데도 있으며 혹은 궐호가 많고 여외가 없는 데도 있어서 형편상 균일하게 충정시킬 수 없으나, 원군의 액수도 감소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여외가 없는 데도 있고 있는 데도 있으니, 수가 적은 각 고을의 궐군 액수에 여외의 수가 많은 다른 고을의 액수를 이전하여 충정시키고 상번 가포의 필수를 감면하되 선상(選上)174) 의 예에 따라서 본고을 수령이 감납(監納)·답인(踏印)하여 상번 호수에게 돌려주어 올려보내면, 각처의 관원을 파견하여 빙고(憑考)·감봉(監封)에서 부역하는 곳 및 차비(差備)175) 와 대립인(代立人)들에게 분급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도의 장관(掌官)이 직접 감봉을 조사하여 급여하게 하고 만일 과하게 받은 사람이 있으면 본인이 법사(法司)에 고소하게 해서 관원 및 대립인들도 중벌로 다스리면 군액이 감소되지 않아서 궐호를 보충할 수 있고, 가포가 많지 않아서 보인이 소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족과 절린이 병폐를 입고 도망갈 근심이 없어서 백성들이 돌아와 모여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와 상의해야 할 일입니다.

도내 각 고을의 수군 궐호가 보병의 배나 되는데 영암·영광 등의 고을이 더욱 심하여 완전 절호가 모두 1백여 호이고, 다른 고을의 궐호도 많고 적은 것은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같습니다. 각포(各浦)의 첨사와 만호 등도 대립했다는 것으로 수사(水使)에게 보고하고 본관에 행이하여 독촉하면 본관에서는 충립(充立)할 길이 없어 이 가포를 일족과 절린에게서 받아들이므로 그 병폐가 보병과 같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이 텅 비어 쓸쓸해집니다. 그러나 수군의 궐호 1분의 만호가 첨사들의 1분의 이득이 되고 10분의 궐호가 10분의 이득이 되어 원군의 액수는 날로 줄어들고 가포를 받아들이는 이득은 날마다 배로 늘어나 현존한 군호가 날로 흩어지게 되니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폐단을 구제할 방책을 양도(兩道)의 수사가 논의하여 보았으나 적당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원군 액수를 줄이면 군정이 허술해질 것이고, 예전 액수를 그대로 두어 현재의 군민까지 그 침해를 받게 되면 다른 색(色)의 군호도 아울러 폐해를 받게되어 점점 소모될 것이므로, 총 군액이 얼마라고 떠벌이기만 했지 실지로 안집시킬 수는 없을 것이니 매우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널리 조정의 의논을 들어보면 필시 온당한 대책이 나올 것입니다.

혹자가 ‘미조항(彌助項)에 방답(防踏)을 신설한 뒤로 경상도  평산포(平山浦)가 내지(內地)로 되어 적변(賊變)의 의심이 없는 곳인데도 아직 그전대로 놔둔 채 혁파하지 않아서, 본도의 순천(順天)·광양(光陽)·구례(求禮) 3읍의 수군이 많으면 1백여 호까지 방을 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평산포에 소속되어 있는 수군들을 혁파하여 본도 각포의 수군 절호에 충정시키면 편의할 듯합니다. 그러나 제도를 고치는 것은 중대한 일이고 또한 그곳의 안팎의 형세와 혁치(革置)의 당부에 대해 아직 직접 조사하지 못하였으므로 우선 들은 대로 아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