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조선군은 기병이 주력이라서. 조선 초엔 기병이 99프로 보병이 1프로임.
조선 후기나 말기를 가도 기병 비율이 최소 6~70프로임.
당연하게도 기병에 갑옷 안 입히는건 정신나간짓이고.
기병인 만큼 더더욱 중장갑을 입었을거임.
그래서 생각하는게 철판 두꺼운 두정갑이 일반적이고 주력이였을거다, 기병이 주력이니까.
댓글들이 못 믿는사람이 많아서 링크 추가함
https://sillok.history.go.kr/popup/print.do?id=kga_10702028_001&gubun=kor
앞서 관원을 파견하여경기(京畿)개성부(開城府)·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의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여러 도의 군사를 살곶이[箭串] 들에 모으니, 기병(騎兵)이 모두 8천 8백 40이요, 보병(步兵)이 8백이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적은걸보면 갑옷 전체가 그런거같습니다.무게는 안 나와있고요.
애초에 해당 논문에 인용된 화살과 탄환에 대한 갑옷 강판의 방호력 실험 결과 표는 영국에서 실험한걸 인용한거라 조선에서 4mm 두깨 갑찰을 썼다는 근거가 될 수 없음.
조선에 적용못할 이유도 없고 실록기록에 버젓이 두정갑이 조총을 50보에서 막았다고 기록됨. 실록 반박 가능?
논문 저자도 설령 두께가 1mm인 두정철갑의 경우 두께만 보면 조총을 막아내기 어렵지만 미늘의 정확한 재질, 미늘의 곡률과 중첩, 표의의 재질 같은 다른 요소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무조건 조총을 못 막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적었는데 다른 변수 죄다 버리고 무조건 조총 막았으니 갑찰이 두껍다는 결론으로 가냐?
다른변수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실록기록엔 조총 방호능력을 확인한게 나와있는데 이거 반박가능하냐고 했더니 왜 딴소리함? 논점은 돌리고 반박은 못하고. 뭐하자는거임?
그리고 말한대로 생각하면 1mm 가지고 조총 막는 시험을 니가 해서 가져와야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소고기는 중첩 이란 단어 뜻 모르나봄
중첩이라고 해봐야 2미리인데 그럼 2미리 조총 쏴서 안뜷리는걸 인증도 못하면서 그따구로 댓글 싸대는걸보면 안봐도 뻔하네
논문의 실험 인용하면서 정작 그 논문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시하는 건 어디서 배운 체리 피킹 법이냐?ㅋㅋㅋ - dc App
아 논쟁할거면 다른데서 해여 알람 계속뜨네 댓글삭제함
기병이 주력이었던건 들었는데 비율이 그 정도임? 전군에서 그 비율은 오버 같은데 중앙군 비율 이야기지?
옛날 고려사 병지 읽었을 때 보기 비율이 10:1인가 9:1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앞서 관원을 파견하여 경기(京畿) 개성부(開城府)·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의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여러 도의 군사를 살곶이[箭串] 들에 모으니, 기병(騎兵)이 모두 8천 8백 40이요, 보병(步兵)이 8백이었다.
조선도 그랬고 그냥 전체적으로 다 그랬음 중앙군이 아니라
기병이 99퍼라니 조선군이 무슨 유목민족이여 ㅋㅋㅋ 기병 비중이 높았다는 거야 맞지만 그건 좀
앞서 관원을 파견하여 경기(京畿) 개성부(開城府)·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의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여러 도의 군사를 살곶이[箭串] 들에 모으니, 기병(騎兵)이 모두 8천 8백 40이요, 보병(步兵)이 8백이었다.
하지만 진짜죠
이 기록 하나 가지고 조선 '전기'에 기병이 99퍼라고 침소봉대하면 어카냐;;;; 이게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기병만 한가득 뽑혔는지도 없고 조선 전기 내내 이랬다는 보장도 없는데
경의 장계에 이르기를, ‘기병 2천 5백 명과 보병 5백 명이라.’ 했는데, 내 생각에는, 기병은 족하지만 험한 길에는 보병이 제일이고, 또 적을 막아내는 데는 화포와 방패만한 것이 없으니, 보병 5백 명은 적은 것 같다. 경이 이 뜻을 알고 적당히 보졸(步卒)을 더할 것이다. - 세종 19년 7월 18일 병오 7번째기사
"마병(馬兵)과 보병(步兵)의 수를 얼마나 써야 마땅할까." 하니, 조뇌는 마병 1천, 보병 2천을 말하고, 하경복·이순몽·정흠지·최해산·정연·황보인 등의 논의에는 마병 1천, 보병 1천이 좋겠다고 하였다. 권진은, "마병·보병 합해서 3천으로 함이 가하나, 마병의 수와 보병의 수는 주장(主將)으로 하여금 시기(時機)에 임하여 적당히 처리하여 정하게 하옵소서." 하였다. - 세종 15년 2월 21일 을사 3번째기사
똑같은 조선 전기 군사 관련 실록 내용에서도 내용마다 보병 기병의 비율이 바뀌는데 너무 극단적인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한 거 같음
조선 역사가 500년인데 병종 비율이 고정이었겠냐 으이구
일단 님이 근거로 든 사례랑 내 근거가 다름. 내 근거는 8도에서 모집한 군사고.님 사료는 특정 임무라 다름. 8도에서 모았을때 9할이 기병이다 이건 반박불가능한 역사적 사실임.그리고 밑 갑갤러 말처럼 후대가면 이런 90~99프로 기병이 6~70까지 내려감. 근데 그건 이미 글에 적음.중요한 사실은 기병이 대다수이며 기병은 갑옷을 충실히 그리고 두껍게 입었을거라는거
원래 저럼ㅋㅋㅋ 원사료 볼줄도 모르면서 실록 대목 하나 봤다고 그걸로 다 아는양 함 ㅋㅋ
아니 후대 가면 변한다면서 뭔 고정 데미지 마냥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냐고요?? 누가 실록을 그따구로 인용하냐 진짜 ㅋㅋㅋㅋ
댓글달은 둘은 실록 볼 줄도 모르고 한글도 모르는듯.
니 전 댓글 어디에 60-70 이야기가 있니???
지적 받으니 그제사 스리슬쩍 발 빼면서 혓바닥만 기네 ㅋㅋㅋㅋ
https://m.cafe.daum.net/alhc/7l/1022
거칠게 계산해도 조선 후반가면 1만명 겨우 유지나 할까말까였고, 고종 때 즈음 가면 군마 숫자가 5천 따리인데 뭔 수로 말 없이 기병을 유지하냐?? 보병 위주의 훈련도감 병력만 대충 8천-1만 따리였는데 잘 봐줘야 50%고 다른 부대까지 다 치면 내려가면 내려갔지 절대 올라갈 수가 없는데? ㅋㅋㅋ
고종 1년 자료를 보면 전국 각지의 말 숫자가 23,100마리였는데 10년 뒤인 고종 11년에 보면 4,980마리로 줄어 있다는데, 이게 뭐 10년만에 말이 씨몰살 했겠냐 아님 가라 장부 걸러내서 나온 숫자겠냐??
그나마 흥선대원군이 뭐라도 해봤을 때 5천 따리면 순조/철종 때엔 잘봐줘야 비등비등이고 더 줄면 줄었는데 누구 맘대로 60-70% 가 나옴??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6/article_no/3253/ac/magazine
조선군 숫자가 가장 컸던 성종 때에도 이미 군마 문제는 심각해졌는데 퍽이나 유지했겠네.
이보다 먼저 강무(講武)를 하려고 전라도·경상도·황해도에 군사를 징집하였었다. 이에 이르러 살곶이 들에 모였는데 기병(騎兵)이 모두 7천 8백여 명, 보병(步兵)이 모두 2천 4백여 명이었고, 경중(京中)은 기병 2천 4백여 명, 보병 3천 6백여 명이었다. - 세조 8년 9월 27일 무오 1번째기사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205/123402140/1
목장
사업은 번창해서 성종 대에는 무려 4만 마리를 사육했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더니 고종 때가 되면 5600필 정도로 줄어들었다. 진짜 문제는 군마로 쓸 좋은 말은 지극히 적었다는 것이다. 좋은 말은 비쌌다. 상등마의 가격은 쌀 30석 정도였다.
전투에 투입하는 말은 수송용으로 쓰는 말, 전장에서 타는 말, 장수가 타고 싸우는 최고급 전마로 구분할 수 있다. 전국에 수만 마리 말이 있어도 군마로 쓸 수 있는 말은 적었다. 1492년 성종은 여진 정벌을 하면서 전국 목장에서 좋은 말을 골라 병사들에게 지급했는데, 군마로 뽑은 말이 800필, 전마는 겨우 40필이었다.
가장 말 많이 키운 성종 때에도 저 꼬라지였는데 뭘 근거로 넌 기병 비율이 99% 까지 갔다고 하는 건데 대체? 실록에도 말 없다고 써있는데 뭐 똥말 타고 기병이라고 하게???
네가 언급한 기록이랑 똑같은 세조 때 기록이고, 똑같이 강무를 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에서 군사를 징발해 왔을 때 기록임. 이건 네가 처음 가지고 온 기록보다 보병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네가 가지고 온 기록이랑 동원한 인원 수도 별 차이 안 남. 전기 조선군이 기병 위주였다는 점 자체는 당연히 사실이지만 기병 99퍼 보병 1퍼라는 극단적인 비율로 간 적은 거의 없다니깐.
13고을의 갑사는 1천, 기병은 3천 2백 88, 보병은 9백 36명으로 보인까지 아울러 계산하면 원액이 1만 6천 7백 36인인데...- 중종 4년 기사만 봐도 60-70%가 간당간당해지는데 중종이 뭐 조선 후대임???
글고 나는 기병이 갑옷을 충실히 그리고 두껍게 입지 않았다고는 이야기 한 적이 없으니까 굳이 그 내용을 나한테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직업군인으로만 이루어지지도 않고 기병을 굴리기 좋은 지형의 국가도 절대 아니고 수성전 중심의 군대가 몽골이나 여진의 군대도 아니고 기병이 저런 비율이라는데에는 전혀 동의를 못하겠는데
앞서 관원을 파견하여 경기(京畿) 개성부(開城府)·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경상도(慶尙道)의 군사를 징발하게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여러 도의 군사를 살곶이[箭串] 들에 모으니, 기병(騎兵)이 모두 8천 8백 40이요, 보병(步兵)이 8백이었다.
실록에 버젓이 적혀있는 사실임.
ㄴ상한 소고기 쳐먹고 뇌가 상했나 펨코까지 가서 그 지랄이냐 얜
얘는 아직도 정신못차렸나 ㅋㅋㅋ
정신없는건 너같음
조선이 기병 많이 운용하긴 했는데 99%는 기록에 대한 오해가 있는 듯 애초에 상식적으로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차분히 생각해보셈
병부 기록도 있는데 시대 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내가 봤던 기록에서 보병, 기병 비율은 대충 8:1 이었음 그것만으로도 조선이 정주 국가치곤 기병 비율이 높은거
장애인새끼
아직도 이러고 사냐
뒤져 병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