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일본군 보기에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ㅋㅋ
왜란 때 명나라, 일본 공히 지적하던데
저딴 걸 무기라고 들고 다니냐고
우리가 아는 대개의 조선 병장기는 죄 다 왜란 이후
명이랑 왜 영향 받아서 그대로 쓰이거나 개량된 건데
대체 그 이전엔 뭐 장난감 들고 싸웠으려나
왜란 때 명나라, 일본 공히 지적하던데
저딴 걸 무기라고 들고 다니냐고
우리가 아는 대개의 조선 병장기는 죄 다 왜란 이후
명이랑 왜 영향 받아서 그대로 쓰이거나 개량된 건데
대체 그 이전엔 뭐 장난감 들고 싸웠으려나
조선 건국 이래로 임진왜란까지 평화기가 얼마나 길었나 찾아보면 대충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아?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단순히 병장기가 짧은게 문제인건 아님 만주족 검도 환도마냥 짧음. 근데 중원 털어먹었잖아. 검 길어진건 왜란이후 왜검 교리 일부 받아들여서 그런거고
만주족 칼과 조선 칼이 다른 건 조선인이 기록 남겨놨단다.
ㄴ조선 칼 짧은데 조선군 할버드 잘 씀 이라고 서양인 선교사 프로이스가 기록 남긴 건 암?
또 조선 주력은 기병인데 칼이 필요 이상으로 길 필요가 없음
아 네, 세계 전쟁사에서 전근대에도 기본은 편제예요. 특히 정주민족 군대는 완편 안 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창은 나무가 부족해서 짧았다는데
활로 원거리서 쏴죽이면 끝이라서. - dc App
그래서 조센군이 그렇게 연전연승했구나!
여기서 제일 웃긴 건 임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군의 무장상태나 병기에 대해 낮잡아 보는 기록을 남긴 적 없음. - dc App
왜란 터지기 전에 조선에 사신으로 온 귤강광인가 뭔가 하여튼 금마가 창 짧다고 비웃었다는 이야기 그거 보고 하는 이야기 같은데... 근데 걔는 사신이고 정작 싸운 애들이 조선군이 무기 짧아서 약하다 뭐 이런 이야기 한 적은 없지 않나
그 사신이 창 어쩌고는 암만 찾아봐도 카더라 말고는 제대로 된 레퍼런스가 없더라. 비스무리한 건 프로이스 기록에서 조선군 칼 짧음. 조선군 투구 캐틀햇이랑 비슷함. 판옥선 탄 애들 할버드 잘 다룸. 이딴 기록만 있는데. - dc App
ㅈㄹ하고 앉았네 ㅋㅋ 지가 못 보면 기록이 없는 건가? 닭이 볏짚에 대가리 처박고 무사한줄 아는 거랑 뭐가 다르노 ㅋㅋ
왜란 때 일본군이 조선군 활더러 반궁, 창은 반창, 칼은 쓸모없다, 칼을 다루는 건 아이가 싸우는 것 같다라는 기록은 개별 단위로 숱하게 남겨서 하나하나 레퍼 남길 수도 없을 정도다.
개별 기록 ㅇㅈㄹ 개웃기네ㅋㅋㅋ 어디 함 들고 와봐라 - dc App
하히해 / 아 그거 쪽빠리들이 니 똥구녁에다가 쑤시박아놨다는데?
ㅋㅋㅋ 어디 열심히 뒤져서 갖고 와봐라 통빡 굴려서 뭐 갖고 올 건지 존나 궁금해지니까ㅋㅋㅋ - dc App
개별기록이 많은데 암튼 어디서 들은건진 말 못함?ㅋㅋㅋㅋㅋㅋ - dc App
창도 짧아, 칼도 짧아, 잘 쓰는 거라곤 활과 화포 밖에 없으니... 전쟁 초반 개털린 게 이해도 감
애초에 전쟁 초반에 털린 건 무기의 문제가 아닌 대비 자체를 과거 을묘왜변에 맞춰 1-2만 수준을 해놓은 걸 10만 단위를 때려박았으니 털리지. 거기다 삼남지방은 조선의 최전방이 아님. 조선의 최전방은 북쪽이었고, 북쪽은 전통적으로 정예들이 배치되어 있던 곳이었음.
ㄴ 2222
무슨 대비를 했어도 당시 조선은 전국시대 거친 일본군 절대 못 막음
무기체계도 개씹좆같았고 이게 원인에 포함 못 된다고? 니 임의로?
ㄴ그래서 그리 강한 일본군이 왜 조선 정복 못하고 평양에서 주저 앉으셨다냐? - dc App
ㄴ그리 잘났는데 왜 도리깨 하나 들고다닌 양반에게 털렸대? 무기가 길다고 무조건 유리하면 로마군은 어떻게 그리스 팔랑크스 깨부셨고? 얜 진짜 바본가? - dc App
루이스 프로이스가 조선군 할버드 잘 썼다 라고 기록 남긴 건 이악물고 모른척하고 암튼 조선군은 미개해서 무기 다 짧음!! ㅇㅈㄹ
함경도, 평안도 부대도 예외없이 탈탈 털렸는데 정예는 북방에 있었다 운운이 무슨 의미가 있음? 당시 조선군은 남이나 북이나 죄다 오합지졸들이였음. 평안도 부대는 임진강에서 깝치다 궤멸했고, 함경도 부대는 해정창에서부터 연전연패하더니 북병사는 간도로 빤스런해버렸구먼.
그럼 왜 조선 정복 못하고 북관대첩때 꼴랑 3500명도 못잡고 밀려남? 뭐 일말의 자비 그런거? - dc App
심지어 권율은 그 후방 전라도 근왕병들 데리고 이치, 행주에서 승전했는데 오합지졸에게 털린 일본은 뭐가 되냐?ㅋㅋㅋㅋ - dc App
당시 일본군이 조선군보다 상대적으로 정예가 맞는데 그렇다고 무슨 무적의 군대인냥 빨아제끼는 애들은 권율이 이긴 건 뭐 운빨인줄 암?ㅋㅋ - dc App
ㄴ북관대첩 날구라를 어디까지 믿는거야? 정문부가 전과를 올린 경성, 회령은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 무리들이 점거하던 곳이였다. 일본군 대부분은 흥남 일대의 함경도 남부에 주둔하고 있었고 두만강 인근의 국경지대는 국경인 무리들에게 맡겨놓은 상황이였다. 국경인이 장악했던 국경지대를 탈환하는데 성공한 정문부지만 그들도 일본군이 장악한 함경도 남부로 공세를 펴지 못했다. 험한 산지를 베이스로 삼아 소규모 기병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했지. 그러던 중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고 평안, 황해도 방면의 일본군이 한양으로 철수하며 전황이 급변하니, 계속 함경도에 머물면 고립당할 상황이 되어 일본군이 긴급 철수한거임.
ㄴ애시당초 함경도는 함흥평야 일대를 제외한 곳은 도로도 민가도 없는 오지라서 흥남쪽에 자리잡은 일본군이 두만강유역까지 직접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국경인 무리에게 그곳 통제를 맡겼던거지. 그랬는데 두만강 일대에 잇키(의병-일본군은 의병을 농민 반란으로 이해했음)가 벌어졌다고 하니 당장 일본군도 손을 쓰기 힘들었다. 거기다 이미 함경도는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고 온화한 큐슈 출신들로 구성된 가토의 군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함경도의 혹한에 제대로 싸우기도 힘들었다. 정문부도 무모하게 함흥으로 공격하지 않고 일본군 주둔지 중 가장 북단인 길주성 일대에서 기병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길주성내 일본군을 고립시키는 작전을 구사했던거지.
ㄴ그러던 중에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고, 평안, 황해의 일본군이 한양까지 철수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가토도 함경도에 더있다간 고립된다는 판단하에 전면철수를 결정함. 그리곤 길주성에 고립된 일본군을 구출하기 위해 길주성으로 병력을 보냈고, 길주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하던 정문부의 부대는 일본 지원군 부대의 선봉부대 일부를 기병으로 기습해 소기의 전과를 올렸지만 곧 본대가 밀고 올라오자 전의를 잃고 퇴각했다. 정문부의 부대가 퇴각하자, 일본군은 미련없이 길주성 포함 함경도 거점을 포기하고 한양으로 철수를 강행했다. 추위에 취약한 놈들이 조선에서 가장 추운 게절에 조선에서 가장 추운 곳을 행군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거지. 여기서 진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수천명이 얼어죽는 사고가 난거지.
그리 잘싸운다면서 게릴라도 제대로 못막고, 평양성은 왜 뺏겼냐고? 결국 그게 왜군 한계인거지 뭔 무기 길다고 잘싸우네 무적이네 이상한 결론내고 있어ㅋㅋ - dc App
그리고 행주는 뭐라할건데? 전라도 후방 병력에게 10배 병력으로 털린 건? 수성전 드립칠거면 평양성에서 이기시던지? - dc App
을묘왜변때도 기병 50명 따리에게 1000명이 털렸으면서 퍽이나 무기가 긴 게 장땡이겠다 - dc App
조선은 무기도 허접했고, 전술도 낙후해서 전쟁 초반에 개털린건 팩트인데 뭐가 못마땅해서 어거지 부리나? 그래서 임란 격으면서 조선은 기존 무기 체제 갈아엎어버리고 명나라, 일본의 무기와 전술을 도입했다. 당파, 월도, 협도, 장창, 편곤 같은 우리가 흔히 조선의 무기로 알고 있던 것들 대부분 임란 이후 도입된 무기들이다. 심지어 환도조차 일본도 모방하며 길어졌지. 조선의 무기가 일본에 비해 꿀릴게 없었으면 왜 이런 격변이 일어났겠어? 조총 뿐만 아니라 기존의 냉병기로도 일본군에 상대가 안되니까 싹 갈아엎은거다.
그리고 1-2만 올걸로 예상하고 준비한거 때문에 패했다고? 까놓고 말해 조선이 그 이상의 침략군에 대비할 여력이 있었나? 1-2만으로 침략군을 예측해서 그 꼴이 난게 아니라 사실은 그 당시 조선 사정으로는 1-2만 규모의 침략군에 대응하는게 한계였던거지. 그거 밖에 할 수 없으니 1-2만 정도 안오겠냐는 근거 희박한 예측을 믿어버린거지. 인간이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건 조선시대에도 예외가 아니였어.
그건 냉병기 한정이라고 말해줘도 대가리에 총통 맞았냐고. 반대로 대구경 총통에게 그리 털렸으면서 일본은 제대로 된 화포 굴릴 생각도 못하고 대조총 못잃어 했냐? 그리고 월도/협도 류는 세종실록 오례에 '장검' 이란 이름으로 똑같은 형태로 존재했는데 뭔 등신소리야 이건 또
그리고 조선이 1-2만으로 추정한 건 그 이전 을묘왜변 때와 다른 왜침들 사례에 비교해서 그런 거지, 10만 이상 병력을 바다 건너에 투사한 사례가 뭐 있는데??? 너라면 갑자기 임금이 밑도 끝도 없이 '야 왜군 10만명 건너올테니 대비하자' 라고 하면 네 그럽죠 하고 수긍함?? 병신임 진짜?
조선이 초반에 개털린 거 맞지. 근데 계속 개털리기만 했냐고? 이 글쓴놈은 단순히 무기 길이만 보고 왜군 짱짱 이지랄인데 그러면 왜 후방 병사인 전라도 근왕병에게 10배 전적으로 털렸냐고?? 무기 길이가 길면 장땡이라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게 나나 다른 애들 반박인데 뭔 계속 뻘소리를 하고 있어
일방적으로 조선이 개병신 군대였으면 을묘왜변 때엔 왜 50명 겨우 넘는 병력에게 1000명이 털려나갔고, 행주대첩 때엔 후방 병력+패잔병이었던 전라도 근왕병에게 10배 병력 꼴아박았다 총대장까지 벌집됐는데?? 뭐 걔넨 조선군이 아니고 딴 군대냐? 똑같은 조선군을 다뤄도 원균이 다루다 개털린 군대로 명량대첩 한 이순신이라는 전례도 있는데?
일본도 대포를 만들줄 몰랐던게 아님. 서양으로부터 매치락 머스킷을 만드는 놈들이 그보다 더 단순한 기술로 만들 수 있는 대포 만들 줄 몰랐을까? 실제로 임란전에 서양의 캘버린급 화포를 카피 생산도 했던 놈들임. 하지만 일본조차 무지막지한 화약 소모를 감당못해 안쓴거임. 대포 운용할 비용으로 조총 만드는게 낫다고 판단한거지. 이건 임란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음. 대형 총통이 큰 위력을 발휘한건 해전 한정이였고, 지상전에선 조총 선호가 옳았다는게 여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지. 지상전에서 대포가 제대로 활약하게 되는건 근대적 포거에 장착되어 직사 사격이 가능한 야포들이 나오면서 부터임.
조정 신료들이면 당시 조선에선 상위 1%안에 들어가는 엘리트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해적과 상인들이 일으키는 난과 국가 차원에서 일으킨 전면전을 구분하지 못하겠나? 고려말 왜구들이 수천에 달하는 병력으로 난리를 쳤는데 국가 차원의 전면전에 고작 1만을 동원할거다? 애시당초 침공군 1만을 예측한 권근의 주장에는 을묘왜변은 언급도 안되어있어. 그냥 일본의 배 한척에 최대한 인원 실어봐야 100명정도니, 100척 동원하면 1만정도 올 수 있지 않을까는 이야기만 했다. 설마 일본이 100척 이상의 선박을 동원하겠냐는 막연한 기대가 근거였다. 이런 근거 빈약한 이야기가 통한건 결국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벌어진 일이다. 그 이상의 병력에 대비하려면 국가 체제를 다 뜯어고쳐야할 판인데 그건 그거대로 불가능한 일이였으니까.
신료들이 엘리트 라면서 막연한 기대 라고 하는 건 또 무슨 자가당착이냐? 그리고 선조실록 133권, 선조 34년 1월 17일 병진 1번째기사에 선조가 지 입으로 직접 ' 을묘 왜변 후에는 전라도가 틀림없이 적의 침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임진년에는 적이 부산(釜山)으로부터 들어왔으니, 이것이 어찌 전례이겠는가.' 라고 말했는데 뭔 몰랐다 운운이야
그리고 여말선초 사람인 권근 이야기는 왜 함?? 병신임?? 니가 말하는 거 변협이겠지
그리고 뭐 떠들거면 실록 검색이라도 하고 떠들어라. 변협 검색하면 바로 나온 그 대목에서 선조가 을묘년 이야기 꺼내는데 병신이냐 진짜?
상이 이르기를,"그때 왜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배 70척에 군사가 약 6천 명쯤 되었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수만 명이 쳐들어올 기세는 보이지 않던가?"하니, 변협이 아뢰기를,"왜선(倭船)은 그다지 크지 아니하여 중국 배에 미치지 못하므로 한 척에 1백 명밖에 실을 수 없습니다. 1백 척이면 1만 명이니 1만 명밖에는 더 나오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선조실록 23권, 선조 22년 8월 1일 병자 2번째기사 바로 이전에 을묘왜변 병력부터 물어보는데 제발 좀 실록 검색이나 하고 떠들어라
그리고 자꾸 지적하는 거 스리슬쩍 뭉게지 말고 모르면 모른다고 똑바로 말하라고. 뭔 월도/협도가 임란 이전에 없었다 소린 반박당하니 바로 싸물고 모른척 하네. 그리고 조선이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면서 제대로 안썼던 것처럼 일본도 대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임란 때 일부 운용도 했지만 제대로 운용할 생각이나 능력이 안됐으니깐 임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못써먹은거지 뭔 혓바닥이 길어.
조선 총통이 해전 한정이라면 뭐 행주 대첩 애들은 수군이겠냐? 권율은 수군 장군이고? 선조실록 36권, 선조 26년 3월 26일 신사 2번째기사 에 대놓고 낙 참장이 말하기를 ‘전번에 화구(火具)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귀국의 천자총통(天字銃筒)을 썼는데, 성을 헐고 왜적을 죽이니 매우 통쾌하였다.’ 라고 써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라고 큰 대포 좋은 거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냐?
김시민 관련 실록 기록에서도 대놓고 대포를 썼다 라고 적혀있는데 뭔 조총 선호가 옳았다도르?? 그래서 그 조총 선호로 행주대첩 뚫었냐?? 조선이 그렇게 조총 선호해서 사르후에서 개털렸냐??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9월 1일 정사 9번째기사 에서도 박진이 경주 수복할 때 비격진천뢰로 수복했다 라고 박아넣었는데 비격진천뢰는 뭐 소구경 대포임?
마지막으로 고려 말 왜구는 일개 왜구가 아니라 기병까지 천 단위로 운영하던 애들인데 이게 무슨 왜구냐? 정규군이지.
그런 식의 비교를 하면 반대로 일본은 소구경 화포에만 몰빵해서 정작 제대로 된 화력 앞에서는 쪽도 못쓰고 털려나갔다, 혹은 수십년 지들끼리 치고박던 애들이 후방에서 밭갈던 조선군+약체화된 명군을 제대로 못이기고 7년 빌빌 거렸다고 까여도 할말 없는 거 아님?
그게 일본 한계지 일본이 모든 분야에서 우월하대?
ㄴ조선군은 뭔 짓을 해도 절대 못막는다면서 우월하도고 못박아놓고는 뭔 ㅋㅋㅋㅋ 그리 잘난 애들이 왜 행주에선 못 뚫었냐고?? 10 배 병력 꼴아박고도 못 뚫고 총사령관이 깝치다 총맞고 드러누웠는데. 심지어 그 때 권율의 조선군은 용인 전투 때 진 애들인데ㅋㅋㅋㅋ
게이말하는거 개꼴리노 - dc App
5미터 장창 들고 산 탈래?
팩트: 일본도 산 존나 많고 외려 조선 산보다 고도가 높다. 전국시대 대개의 공성전은 산성에서 이뤄졌다.
무기 크다고 장땡이면 짧은 칼로 무장한 검방보병으로 주변민족 쳐패고 다닌 로마는 뭐가 되는거냐 걍 교리따라 전술따라 환경따라 무기도 바뀌는 거지 무슨 냉병기라고 무작정 크고 길어야 좋은게 아님
아 네
말씀해주신 거 맞긴 한데 중요한 건 임란 땐 칼 긴 게 전장 환경에 맞았다는 거 아님. 로마는 로마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각함. 임란 때 조선도 칼 길이 키운 거 보면 확실히 칼 길이는 키우는 게 그 당시 전장 환경에 맞았던 거라고 생각함.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 검병한테 썰린 기억이 하도 강렬하다 보니 칼을 키웠던 건 맞는데 결국 조선은 원거리 투사무기 위주의 교리여서 그게 영영 이어지지는 않았음. 긴 칼이 '일본군을 상대하기에' 좋았다면 그건 일리가 있는데, 조선군 교리나 환경에 종합적으로 들어맞는 무기였느냐 하면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함. 이거는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도 마찬가지여서 윤관이 여진정벌할때 보면 보병 중에 창 든 새끼가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활이랑 쇠뇌를 완전 떡칠해놓음
글고 이거 원글 쓴 친구는 칼뿐만 아니라 창까지 다 짧다고 놀리던데 정작 조선 쪽 이야기 보면 일본군이 분명 조선군보다 훨씬 긴 창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장창 이야기는 안 나오고 일본도 이야기만 나오는거 보면 일본 장창은 조선군에게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던 거 같음 개인적으로는 조선이 성에서 방어하고 일본이 공격하는 입장이다 보니 창보다는 칼든놈 만날 일이 더 많아서 그랬던 거 같음(6m짜리 장창 들고 성벽 기어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겠음? 성벽 무너지거나 성문 뚫기 전에는 칼 들고 올라갔겠지)
20만 공익(그 중에 반은 서류상에 이름만 올려놨을 뿐)vs10만 현역 야쿠자 혹은 현역 소말리아 해적
그럼 일본은 남북조시대 타치에서 무로마치 ~ 전국시대에 우치카타나로 짧아졌으니 전투력 퇴화했냐?
기병들이 주로쓰니까 상관없지 않음? 애초에 중앙아시아 중기병들 칼도 장도는 별로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