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한 이유 : 두정 철갑은 기병만이 입고 피갑은 보병만이 입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므로 삭제.'
만기요람에도 훈련도감 보병은 피갑을 보급하고 기병은 철갑을 보급한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기 갑옷 유물에서도 두정갑이 대부분인 점을 들어 주력으로 보인다.'
임진왜란기 두정갑 유물이란게 정공청, 정충신 장군 유물 아님?
정공청 장군이야 임진왜란때 입은 갑옷이 맞다고 쳐도
(근데 또 정공청 장군은 임진왜란 이후에 무과 붙어서 그때 새로 만든 갑옷일 수도 있음)
정충신 장군 갑주는 '갑옷 1착은 1630년(인조 8) 5월 1일 수군부원수로서 가도(가島)의 병란을 토벌하고자 출정할 때 인조가 궁시 및 검과 더불어 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라고 카니 임진왜란 이후 갑옷임
임란기 갑옷 유물은 동래성 찰갑, 류성룡 찰갑, 정공청 두정갑 정돈데 그럼 유물도 찰갑이 하나 더 많은거임 정충신 갑옷을 포함해도 당시에 찰갑이랑 둘다 쓴거겠지 두정갑이 주력인건 좀 아닌 듯
- dc official App
그 새끼 짓인가보지 롤백 시켜버려
정공청유물도 내가 직접 박물관 방문해서 물어보니 안에 갑찰없는 식양갑이라더라...결국 실제 전투에서는 입지 않았다는거고 고려나 조선초는 찰갑을 더 많이 쓴듯
식양갑도 안에 내갑의 입으면 입을 수는 있어서.. 그래도 결론적으론 안에 갑찰있는 임란기 두정갑 유물은 없는게 맞는 듯 기록상으론 초기 두정갑류에 가죽, 철판이 안에 있다해도 유물이 없으니 - dc App
식양갑 이라는 것도 결국 일단 안에 갑찰이 있는 두정갑이 있었고, 거기서 내부 갑찰이 제거된 형태인 거니깐 그게 있다고 실제 전투에서 안쓰였다 보긴 좀 어려울듯. 물론 내 생각도 임란 당시엔 찰갑이 더 쓰였을 거 같긴 함.
2점 2점이었는데 그마저도 하난 식양갑 ㅠㅠ - dc App
애초에 고려는 두정갑 기록자체가 없다고
일단 신립이 하사받은 것도 찰갑(수은갑)임 - dc App
저게 다중이질로 나무위키 훼손하는데, 누가 신고 제대로 해서 교정 좀 해주라.
징집 보병 모두 갑옷을 입긴 했겠지. 그게 직업군인이나 입을 본격적인 갑옷인 두정갑,찰갑,경번갑 같은건 아니고, 엄심갑이나 두터운 솜옷, 면갑, 흉갑 같은 부류였을거구. 당대 그림도 아닌걸 가지고 벅벅 어거지로 우기는것도 웃프지만, 몽고습래회사에서 묘사하는건 당연히 몽골군이지. 대충 구글링 눈팅만 해도 우리나라 갑옷과 확실히 구분되는구만....
인조 때에도 유엽갑(찰갑)을 만드네마네 하는 기록 나옴 난 솔까 두정갑은 걍 호란 이후에나 완전히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