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세기
11세기는 기사들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임.
이 당시 기사들은 아직 노르만 스타일로 알려진 초기 서유럽 기사의 전형적인 무장형태를 띠고 있었음.
갬비슨이라 불린 보호복, 사슬후드인 코이프, 나살이라는 코가리개가 달린 투구, 밑자락 긴 반팔셔츠 모양의 사슬갑옷. 그리고 카이트쉴드.
이것들이 이 시기 기사들을 대표하는 특징적인 장비들임.
입는 방식은 이러함.
먼저 갬비슨을 입고 코이프를 뒤집어 씀.
그리고 코이프 위에는 투구를 쓰고, 갬비슨 위에는 사슬갑옷을 껴입음.
이당시 서유럽 스타일의 무장은 유연했음.
사슬로 만든 후드인 코이프를 먼저 쓰고 그 위에 투구를 뒤집어 쓰는 방식 덕에 더이상 거추장스러운 목가리개나 뺨가리개 등이 필요하지 않았음.
코이프에는 사슬로 된 탈부착식 마스크가 따로 달려있었기 때문에 입을 보호해 줄 수 있었음.
갑옷은 여러 종류가 쓰였지만 가장 인기있는 것은 호버크라고 부르던 사슬갑옷이었는데, 찰갑에 비해서 유연했고 비늘갑옷에 비해서는 가벼웠음.
호버크를 입을 때는 고대부터 그래왔듯 갑옷이 어깨에 가하는 하중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매서 무게를 분산시켰음.
이 호버크는 직물로 만든 두꺼운 보호복(다양하게 불리지만 편의상 갬비슨이라 지칭함) 위에 걸쳐입는 것이 보통이었음.
갬비슨과 함께 입었을 시에는 충격완화 효과는 물론이고, 실험에 따르면 사슬갑옷이 잘 뚫리지 않게 해주는 기능을 했다함.
이런 이유에서 기사들은 항상 호버크와 갬비슨을 함께 입었기 때문에 편견과 달리 화살공격에 아주 취약한 정도는 아니었음.
디라키움 전투에서 노르만 세력에게 패하고 도망치는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그리고 그 뒤는 추격하는 노르만 기사들의 모습임.
이 시기부터 동로마와 이슬람측의 기록에는 서유럽식 기사들의 강력한 전투력에 대한 묘사가 계속해서 등장하고는 했음.
이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더 큼.
11세기 서유럽 기사들이 지중해와 레반트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잘 훈련된 집단 돌격전술과 용맹함 덕분이었음.
이 시기 사슬갑옷은 팔과 다리가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리까지 가려줄 수 있는 길다란 카이트쉴드로 한쪽 측면과 정면을 보호했음.
- 12 세기
12세기에 들어서 서유럽 기사의 무장은 본격적으로 더욱 중장화되기 시작함.
이 시기 서유럽식 스타일의 무장은 이미 동유럽 일부와 동로마를 제외한 유럽 전 영역에서 보편화된 상태였음.
당시 레반트의 해안지대를 장악하고 여러 십자군 국가들은 세운 상태였던 십자군들 역시 서유럽 스타일로 더욱 중무장한 상태였고,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도 서서히 서유럽식 무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함.
다른 문화권과 비교하자면 이때부터 빈틈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짐.
사슬갑옷은 이제 팔을 완전히 가렸고(갬비슨도 마찬가지) 벙어리 장갑 형태의 사슬장갑으로 손까지 보호했음.
또한 쇼세 혹은 호즈라고 불리던 사슬 다리갑옷도 함께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카이트쉴드처럼 길다란 방패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
따라서 방패는 카이트쉴드는 보다 짧은 히터쉴드가 대세가됨.
호버크 역시 더이상 허벅지까지 가려줄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밑단이 다소 짧아지는 경향을 보임.
투구의 경우 단조기술의 발달로 인해 조립식이 아닌, 하나의 통짜 철판으로 만들어진 일체형 투구(위에서 첫번째 투구)가 사용되기 시작함.
내구도가 더 우수했지만 이전의 조립식 투구보다 훨씬 비싼 편이었음.
또한 이 시점부터 캐틀햇이 등장했는데, 그림에 보이는 둥근 챙달린 투구가 바로 그것임.
캐틀햇의 구조는 위에서 날아오는 날붙이와 화살을 막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특히 보병들에게 인기를 끌었음.
이런 형태의 투구는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동쪽으로는 고려에서 까지 애용되었음.
이때 등장한 또다른 형태의 투구는 바로 폐쇄형 투구임.
기사들은 빈틈없는 중무장을 추구하면서 기존에 노출된 부분을 전부 가리기 시작했고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음.
그리고 폐쇄형 투구는 얼마안가 그레이트 헬름으로 발전함.
그레이트 헬름은 아예 얼굴을 겨냥하는 랜스(기병창)까지 막아보기 위해 고안되었음.
오른손잡이끼리 격돌한다고 가정할 때 방패로 몸을 가리면 머리만 노출되기 때문임.
다른 투구와 마찬가지로 코이프 위에 올려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크레이트 헬름을 쓴 상대를 즉사시키는 건 쉽지 않았음.
다만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브루스가 잉글랜드 기사 헨리 드 보헌을 도끼로 후려쳐 일격사 시킨 사례 등은 존재함.
또한 서코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변화상이라 할만함.
서코트는 갑옷 위에 걸쳐입는 의복으로서 12세기 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함.
갑옷에 이물질이 뭍거나 햇볕에 달궈지는 걸 막는 등 다양한 용도가 있었지만 주로 신분, 지위, 전공을 나타내기 위한 용도였음.
기사 이상의 계층이라면 사실상 필수적인 물건이었는데,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단지 과시하려는 의도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음.
때로는 이게 격렬한 전투에서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음.
신분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이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임.
- 13세기
13세기부터는 다양한 추가보호 장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함.
코트 오브 플레이트, 금속제 건틀릿, 관절보호대, 어깨보호대 등이 그 예임.
먼저, 코트 오브 플레이트는 리벳(징)을 이용하여 철판을 가죽옷에 고정한 물건임.
보통은 사슬갑옷 위에 걸쳐입는 식이었는데 그레이트 헬름과 병용되면 비로서 핵심장기를 전부 철판으로 두를 수 있었음.
한편 그레이트 헬름은 슈가로프 헬름의 형태(위 그림의 기사가 들고 있는 투구)로 발전하게 됨.
조립식이었던 부분의 일부가 일체형으로 바뀌었고 구조적으로도 원추형 모양을 띠기 때문에 더욱 견고해졌음.
건틀릿의 경우 다양한 시도가 엿보이는데, 일단 벙어리 장갑 형태가 손가락을 모두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바뀌기 시작함.
그리고 손에 대한 보호수단도 사슬뿐만 아니라 비늘, 철판조각, 동물 뼈, 고래수염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됨.
뿐만아니라 최초의 판금갑옷 부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함.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관절보호대였고 후에 정강이받이와 건틀릿도 판금화되기 시작함.
하지만 아직 완전한 판금갑옷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다른 문화권에 비해 유난히 중무장화가 이루어진 상태였음.
그럼에도 기사들은 꾸준히 중무장화에 박차를 가하고 이는 초기형 판금갑옷의 도입으로 이어짐.
사족으로 기사들은 이 시점 이후부터 서서히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함.
13세기는 유럽에서 기사들이 보병에 대해 불변의 우위를 점하였던 마지막 시기였음.
이제 막 14세기에 접어든 무렵부터, 전술의 발달로 기사의 위치는 이미 위협받기 시작함.
1302년 7월, 코르트레이크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들은 플랑드르 상인 민병대 측에 대패했고,
1314년 6월에 벌어진 배녹번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은 창병대가 주력인 스코틀랜드군에게 야전에서 패배했음.
그리고 1315년 11월의 모르가르텐 전투에서는 오스트리아 기사들이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던 스위스 보병들의 기습에 패하는 상황까지 벌이짐.
좋은 정리추
저 갑옷입는영상 신기하더라 ㅋㅋ
이 글을 보고 회사 화장실에서 한 발 뽑았습니다...
캐틀햇이 동양에선 첨주형 투구임? - dc App
ㅇㅇ 사실상 그러함.
막짤 튜턴기사단 폭풍간지 ㅗㅜㅑ
14세기 갑옷도 다음에 써주셈
이거 공지에 올려도 됨?
ㅇㅇ
고맙다 많이 배워감
코트오브 플레이트랑 브리간딘이랑 차이가 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