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나는 강원도에 있는 군부대에 입대를 했다
20살의 12 너무나도 어릴 였다.

20 시절 재수 실패 군대였기에 가족과 친구 아무도 모르게 입대를 했다.

훈련소에서 형들이 각자 술먹은 이야기, 여자 따먹은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무엇도 말할 없었다.

나는 정말로 무엇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고, 대학에 가기위해 재수를 했다.

애써 가슴속을 파고드는 허무함을 뒤로하고, 전역 한다면 열심히 살아갈 이라는 맹세와 함께 입꼬리를 올렸다.

전역하면 동서울 터미널에서 만나자는 훈련소 동기들을 뒤로하고, 슬픔을 품은 자대에 입학했다.

옅게 퍼지는 흙냄새.
괴리감이 느껴지는 선임들의 표정.
익숙해하지 않았지만, 익숙해져야 했다.

전방은 시설이 좋을거라고 이야기 했던것과 다르게 우리 부대는 시설이 좋지 않았다.

침상 없는 관물대.
6.25 연상케 하는 푸세식 화장실.
녹슨 물이 나올 같은 수도꼭지.
마치 난민이 기분이 들었다.

군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인간관계의 범주와 군대라는 체계에서 갈등하는 선후임.
잘못된 체계 속에서 그저 고개를 숙일 밖에 없는 안위.
사회와는 다른 이질감에 흔한 사회조차 경험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도 엉성할 밖에 없었고, 그들은 나의 엉성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체계에 불만을 느끼며 병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간부.

선임이라는 이유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도덕이 사라진 선임.

군대입대 전에 나라는 존재를 지워야 했다.
부정하면 폐급이 되니까.

피해는 끼치기 싫으니까.

잘해야 했다.
그들에게 꼬리를 흔들어, 잘하는 개가 있도록.
폐급이라고, 입방아에 오르는게 두려워 더욱 노력하였다.
그럴수록 가슴 속에 없는 감정이 피어올라.
무언가 채워 오르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하면 안된다.

여기는 그런 이니까.

아침에는 일과를 하고, 정비시간에는 다음 일과를 위한 준비, 그리고 연등시간에는 자기공부를 했다.

자유 시간이 많다는 소리와는 다르게 군대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해소해야 했다.

재수의 패배감을 안고, 나는 미치도록 공부를 했다.
밤마다 열심히 하지 않은 나에대한 감정이 가슴을 찔렀지만 계속해서 펜을 적어내렸다.

몇번의 휴가, 몇번의 외박을 거치고
나는 어느새 일병이 되었다.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 진것일까?
후임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

훈련 도중 다리를 다쳤다.
머리에 검은 물이 들이 닥치는 듯한 고통.
다리를 보니, 기괴한 모양으로 꺽여있었다.

수술을 받았다.
군병원은 믿을 없어 민간병원을 받았다.
수능을 2 앞두고 나는 결국 수능을 포기할 밖에 없었다.

군병원에서 5급을 받았다.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다리가 이렇게 된것에 대한 아픔이 있었지만, 이제 전역을 한다는 생각에 문뜩 뭉클함이 몰려왔다.

의무조사 끝에 4급으로 강등되었다.
5급의 기준을 확인했지만, 군법상에는 mri 기준이였고, 당시 수술경 사진인 나는 서류부족으로 강등되었다.
다시 한번 도전하기에는 나와 부모님 둘다 지쳐있었고, 나는 그렇게 부대로 복귀했다.

부대로 복귀하고, 나는 주기적인 외부치료 끝에 휴가가 없었다.
다리를 움직일 없었던 나는 모든 훈련과 일과에서 제외를 받았고, 선임들에게 케어를 받았다.

선임과 후임 그리고 간부모두가 배려해주었지만, 계속되는 훈련과 나로 인해 그들에 표정에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감정을 애써 모른체 밖에 없었다.

나는 살고싶으니까.

계속해서, 다리는 지끈거린다.
병원을 가고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보는 간부들의 표정에서 나오는 귀찮음은 명확했고,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선후임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간부들은 그저 "너희가 알아서 " 라는 태도를 고수했고
끝내 그들은 나에게 화를 내고,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에 읽어나면 하늘에 붉게 보였다.
저녁에 잠에들면 새벽이 차갑게 느껴졌다.
끝나지 않은 시간은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죽을 없었다.
20 초반인 나는 죽음이 너무 무서웠고,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그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나는 그렇게 배척당했다.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결국 그들이 말하던

"폐급"

모습과 똑같았다.
아니, 나는 폐급이다.

수만개의 생각이 머리를 찌르기 시작했고
마치 감정이 사라진듯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안주가 찾아온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전역 날짜가 잡혔다.
신체부상으로 인한 사회복무요원 전환.
나는 그렇게 부대를 나왔다.

끝내 병원을 가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재수술을 있다고 하는 순간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공상 신청을 하려 했지만 입대 .
경위서에 러닝으로 인한 발목 부상이 있었다 라고 적은 문구.

"어디 불편한 없어?"

라는 질문에 가볍게 대답이였지만 이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평일에는 사회복무요원
주말에는 재활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알바를 했다.
집에서 돌아온 나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 잠에 들었다.

다리가 더욱 악화되어 병원 생활을 해야했다.
결국 조기에 추가 연가를 쓰고 소집해제 날짜는 멀어져갔다.

2021 11 나는 소집해제를 했다.
17 12 입대~21 11 소집해제

끝이다.

소집해제와 동시에 탄식처럼 입안에서 터져나왔다.
감격의 눈물도, 성취감도 없다.
나는 그저 차가운 겨울 바람을 뒤로하고 집을 향해 갔다.

문득 4년전의 나를 상상해 본다.

재수의 패배를 뒤로 하고 입대.
너무나 어렸던 자신.
전역 삶에 펼쳐진 다양한 것들을 채우겠다는 다짐.

망상에 불과했던 기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다리를 다치고, 전역한 이후로 어디를 놀러간 적도 없고, 친구를 만난 적도 없다.

그저 알바를하고, 일을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아무것도 없는 .
나이 먹을 동안 무엇했냐는 질문이 날라와도 무엇조차 답할 없는 .

....


소중한 시간.
젊음.
행복.

그런 단어를 들을 마다 머리가 쥐여뜯기는 것과 같은 아픔이 느껴진다.

나이 먹고 내가 한가지 사실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든게 흐려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