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2월7일, 잊을수 없는 날이다. 입대일이거든.

훈련소때는 진짜 거지같은 기억바키에 없다. 집에서 350km도 넘게 떨어진 팡주까지 가서 훈련받을줄도 몰랐고, 그 남쪽 전라공화국에 눈이 오는것도 처음 알았다. 막사에서는 전땅크 칙칙폭폭을 참기위해 필사적이었다.

인생이 훤히 보이는 이레즈미 떡칠 육수, 돈자랑 차자랑하는 중고 520d충, 폰팔이, 소 키우는 대지주 등등... 오만가지 인간군상을 처음 맞이한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학원 차려놓고 원장노릇하다가 29살씩이나 되서야 군대에 기어들어온 나는 생활관에서 형님 대접을 받았다.

개 좆같았다.

와꾸가 암만봐도 다들 30씩은 되게 생겨갖고 나한테 형 하는데 너네같은 동생 둔적 없다 새끼들아를 매일매일 읊조렸다.

훈련소는 그렇게 유야무야 넘겼다. 내 성격이 거절 쉽게 못하고 수동적이라 그런지 훈련 열외도 거의 없었고, 딱히 잔머리를 부리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화생방만 천식+폐쇄공포증으로 열외를 했더랬다.

자대배치를 받았다. 군수사?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훈련소에서 대부분 끌려갈 예정인 해안부대에 내 이름은 없었거든.

근데 그 뒤에 붙은 말은 탄약창이라는, 생소한 말이었다. 여단 사단이나 들어봤지, 창? 그게 뭔데 시발창년새끼들아...

그렇게 이른 새벽에 끌려갔던 탄약창이라는 곳은 개씹좆시골깡촌 그 자체였다. 택시로 20분이면 역까지 갈수 있다며 주임원사는 나와 함께온 10명을 위로했다. 지랄염병ㅅㅂ

뜬금없이 창장(부대장, 대령)이라는 아저씨가 안부를 묻고 갔다. 진짜 잘 지내냐며 안부를 물었다. 미친놈.

어쩌겠나. 내가 남자 후장이라도 후비지 않는 한 자대가 바뀔 일은 없을테니 참고 살아야지. 의류대를 매고 행정반에 들어간 날 반긴건 당직근무를 뛰고있던 대머리 사복 아저씨와 행정병 2명, 그리고 생활관 선임들이었다.

충 성!

칼같은 경례를 박았고, 그런거 안해도 된다며 건성으로 인사를 받은 나는 자잘한 조사를 받았다. 몇살이야? 스물아홉임다! 뭐하다 왔어? 자영업 했슴다! 치킨집? 학원임다!

그러고 나서 나에겐 정작병이라는 직업이 부여되었다. 뭔가 쎄한 가라의 냄새가 났다. 분명 난 소총수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굳이 되묻지 않았다. 선임이 까라면 까라던 주변 친구들의 조언을 따랐다.

짐을 풀었고,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난다. 취침시간에 냉동이랑 라면을 얻어먹으며 신상조사와 더불어 선임들 소개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신병대기 2주가 끝나고, 정작병의 진짜 정체를 깨달았다.

이름은 정보작전병.

현실은 비편제. 노예. 급할땐 상황병. 더 급할땐 당직병. 아쉬울땐 위병조장. 훈련때는 화학탐지조와 작전계. 상황때는 정작장교 백업. 주1회 암호병. 가끔 통신병. 주말엔 시설관리병. 작업은 랜덤

대가는 주말 작업 상점 1점. 24점이 하루니까 개 씨발 창렬이다.

고대다닌다는 사수의 똘똘한 척을 받아주며 6주동안 인수인계를 받았다. 지는 4주만에 했다며 날 갈구고 억까를 존나 해댔는데, 그새끼 전역후에 간부한테 들어보니 4주는 개뿔 내가 더 빨랐다고 한다.

병신. 그새끼랑 다른 선임 한명이 날 어지간히 띠껍게 봤는지 뒤에서 소문을 존나 냈고, 난 한적도 없는 일들로 갈굼당했다. 해명을 해봤지만 귓등으로도 안들어서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다.

간부한테 오만가지 짬 처맞고, 흡연장에서 닦이고, 전입 100일 이하 취침외 눕기 금지를 당하며 일과시간과 일과외시간을 업무로 보내길 3개월. 첫휴가를 갔다왔다.

번개처럼 휴가를 보내고, 번개처럼 군생활 볶아먹기를 200여일. 일꺾을 코앞에 둔 나는 초반에 나락간 이미지때문에 개처럼 굴렀다.

1주일간 수면시간 15시간 미만을 찍고, 오침때 비자발적으로 상하차 작업도 나가보고, 내 폰보다 군용폰을 더 붙들고 살았다.

의무실에서 포도당 정제랑 두통약으로 스팀팩을 맞은 대가는 몰론 있었다. 창 방어훈련계획, 동원예비군 명부 최신화, 전지검, 사령관 방문 준비의 4가지를 1트에 성공한 대가로 대령포상, 중대포상을 같이받았다.

그리고 난 부사수가 없어서 휴가를 나갈수 없게 되버렸다. 내 백업이 이쯤에 부조리로 날아갔거든.

정신을 차려보니 미출타 180일차를 넘겼다. 상병 계급장 물이 다 빠진 아저씨는 100일휴가가 마지막 휴가였다고 합니다. 시발새끼들아.

이쯤부터는 간부들이 내 눈치를 봤고, 내가 하사나 초임 군무원 정도의 간부들을 가르치고 부리기 시작했다. 위성통신 교육도 하고, 수송반 초임 운전관들 운전 교육도 하고(군면허가 없어서 항상 조수석이었지만.), 작전반 초임 하사 갈궈도 보고, 사령부급의 큰 훈련때는 정작과장 등 뒤에 세워놓고 소대장들도 닦아봤다.

초급간부 상대로 휘두르던 무소불위의 권력 뒤에는 미출타 200일을 넘어가는 미친 병사+정작과장, 주임원사, 창장이랑 같이 회의 들어가는 병사+나이나 태도때문에 쉽게 터치하기 힘들다는 삼신기가 붙어있었다. 나름 간부들이랑 선은 잘 지켰거든.

글 초반에서 보면 우리부대는 경례를 ㅈ까라고 할 정도의 가라부대다. 군기따위는 없고, 스물하나 둘 애새끼들은 지휘관이나 간부를 지들 담임쌤 내지는 친구같이 대했다. 그러다보니 사회인 멘트를 쓰고있던 나는 비교적 나은 이미지도 있었다.

암튼, 여러 일들을 쥐고있다보니 이게 영 ㅈ같았다. 행정병이 비편제 계원이라서 비밀리에 1명만 넣고 여기저기 돌린다는 명분이었는데, 애초에 지휘관들이 다 아는걸 비밀리라고 하는게 군대식인걸까. 이해가 힘들었다.

그래서 창장한테 계원 만들어달라, 안들어주셔도 상관은 없는데 이미 이번달에 휴가 15일 박았으니 나가겠다를 선언했다. 사실상의 하극상이었다(실제 대화에서는 말이 좀 세게 나갔다). 나도 선 넘은걸 알았고 15일 박은 휴가가 포상휴가였던지라 빠꾸를먹고 3일을 잘렸다.

지금생각해도 ㅈ같은 경험이다.

이때가 미출타 230일. 남은 휴가는 40여일이었다.(연가 17일+상점이랑 포상 12일+위로 보상 뭐 등등)

갑자기 속에서 뭔가 불꽃같은게 장기를 뒤집어가며 올라왔다.

다 그만두고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한테는 거의 매일마다 카톡이 왔다. 폰을 볼수있는게 평일은 하루 한시간이나 되면 감사한 수준이었어서 답장이나 전화는 힘들었다.

나 대신 학원 맡아주던 강사쌤은 휴가 언제나오냐, 학원한번 와서 봐주셔야겠다며 주마다 연락을했다.

주말마다 몰아서 전화를 돌리고, 학원 문제들을 해결하면 내 개인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230일을 있다보니 정신이 멀쩡할 리 없었다. 중대장이나 행보관은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줄 아는게 없었다. 동기나 선임들은 걱정은 해주었지만 너만 힘드냐를 시전했다. 전문 상담사도 그랬구낭ㅜㅜ많이 힘드럿구낭ㅜㅜ만 뱉는 반응 자판기였다.

딱 그정도였다. 군대에서 개같이 구른 결과는 12일 남짓의 포상휴가, 징계, 외로움이 고작이었다.

미출타 250일쯤. 보다못한 중대장과 행보관님은 당직 뛰고 있던 내게 외출증을 줬고, 나는 가장 친했던 중대 행정병 후임과 외출을 나갔다. 당직은 다른 후임이 대타를 잡아줬다.

고깃집에서 숯불을 보고 있다가 눈물이 나왔다. 입대 1주일 전에 부모님과 갔던 갈비집이 생각나서? 중대 단합대회때 호송을 나가느라 먹지 못한 삼겹살과 맥주가 생각나서? 아니면 연기가 매워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쌈과 고기를 흡입했다. 그냥 그게 너무 좋았고, 서러웠다. 별 생각없이 눈에 스치는 풍경들 하나하나가 좋았고, 또 슬펐다.

그리고 외출이 끝난 다음날, 당직근무를 마친 나는 생활관으로 올라갔고, 주저없이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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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만하면 2부 쓰러감. MSG 0%의 기적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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