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느끼는 '본말전도'


저는 이 공동체에서 무언가 거꾸로 되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참사로 이미 죽은 사람들에 대한 열정과 성의는 대단히 높은데, 정작 실시간으로 고통에 빠져 죽어가는 것이 명백하고, 충분히 반복되어 예견이 가능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냉소적입니다.

산업재해 사망자나 자살자, 군 사망 관련 통계를 보면 매 순간 고통에 빠져 죽어가는 것이 자명하며, 충분히 반복되고 많은 표본이 있어 예측도 가능합니다. 명백한 사실관계고,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며, 정보를 얻어도 공감하지 못합니다.

측은한 마음은 없고, 오히려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아직 살아있는 자, 그런데 고통과 위험에 빠져 목숨이 위험하고, 실제로 죽어가는 자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정작 이미 죽어버린 자, 돌이키지 못하는 자에 대한 열정과 성의는 가득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된 일입니다.


애초 죽음에 대해 공감하고 슬퍼하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삶이란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전제에서 그들이 모든 기회비용을 잃었다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잃은 것은 돌이키지 못하므로, 지금 잃어가고 있는 자들에 대한 관심과 걱정, 공감이 더 강해야 순리에 맞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지만 자명하게 고통을 받으며 죽어갈 것이 예견된 사람에 대해서는 무공감, 무관심하면서도,
이미 죽어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서만 과도한 공감과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나 연민, 측은지심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뽐내고 싶은 것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과시, 허세, 보여주기를 하는 이유는 보통 내면에 실제로 그러한 진실성이 없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당신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부를 과시하며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실제 부가 없는 사기꾼이 그렇게 보이기 위해 할 뿐입니다.


공감 능력이나 측은지심이 결핍된 사람만이 기회가 오면 과장해서 보여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공동체에서 공감이나 측은지심이 제대로 작동하는 자들은 이제 그런 죽음에 무감합니다. 워낙 많이 겪었고, 자기 스스로도 겪었기에 일부 마음의 문과 감정을 닫아 분리한 상태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리거나 죽어야만 하는 환경이니까요.



진정 공감하고 측은지심을 가진 이들은 같은 고통, 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문제를 직시하고 분석하며, 대안을 찾아 제시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과장하고 보여주기만 하던 사람들이 낙인 찍고 조롱합니다.



공감능력과 측은지심이 없는 자들은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척 과시하며,

그들이 진정 공감하고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에게 사이코패스나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이라 매도하는 모습입니다.



거꾸로 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