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의 척박한 환경(외세의 위협, 국토의 70%가 산지인 척박한땅)이 질서, 안정(생존)을 중요시하게 이끌었다(단군이 부동산 사기를 쳤다)


서열이 높은 것들은 저 상황에서 질서와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비효율적인 상황(*도덕쟁탈전으로 감정 통제 및 대항하는 상대 무기력화, 서열성역화 및 정당화등)을 만들어내며 자기 이득을 챙기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생존하기 바빠서 잘못됬다고 생각해도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잔 생각으로 잘못된 질서에도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정당화해버리며 구조를 더욱 강화했다.

몇몇 서열이 그나마 높았던 위인들이 바꾸려고 시도를 했지만 이미 구조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가만두지 않았고 그것을 이겨내어 바뀌더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개같이 다시 본연의 상태로 복귀했다.

그 결과는 비효율성으로 인해 외세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것, 서열질로 인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제거되고 순응하는 사람들 위주로 살아남는것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같은 것들이 계속 누적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풍족한 현대사회에 와서도 시스템으로 내면화되어 계속 적용되고 있다. (집단적 기억 및 문화적 학습은 구조적 관성이 있어 최초원인인 환경이 바뀐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또한 경제상황은 풍족해졌다고 볼 수는 있으나 여전히 사람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아주 빡센 경쟁을 해야된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척박한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서열에 기반한 기득권 이득과 서열 의식 정당화로 인한 결과, 예로는 '내가 서열이 낮을때도(라때도) 힘들었으니까 너도 힘든게 당연한거다'를 들 수 있다. 이번엔 반대로 내면화된 시스템이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이다. ) 그래서 과거에서 이어진 문제가 현재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대사회는 예전과 같이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 점은 비록 한국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외국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며 후에 진실을 알게 되는 자들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 한국이 완전 제멋대로 굴면 국제 사회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나는 이 사실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어울리는 최소한의 척을 할 뿐 한국은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또 비효율성이 생기고 또 역사를 반복할 것이 높은 확률로 확실하다. 이들이 바뀔려면 한 번 확 망한 뒤 교훈을 얻을 때까지 무너져있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취하는 태도가 이득이 안된다는 것을 깨우쳐야 그들은 확실히 바뀔 것이다. ( 몇천년의 역사로 각인된 것을 바꾸기 쉽지 않다)

여기서 무갤러들이 취해야할 스텐스는 첫쨰론 탈조선이 best이이고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처음에는 소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점차 강한 힘( 여론 및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발전한 뒤 지금의 한국을 먹어버리거나 (다만 진짜 쉽지 않을것이다) 자기 신념을 지키면서 최대한 조선게들과의 접촉

을 줄이는 것(탕핑)이다.

나는 그 중 첫째 방법인 탈조선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할 것이다.


본인의 관점을 요약하자면 결국 현재 거의 모든 한국의 문제는 서열질로부터 발생한 비효율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 대한 문제를 분석했고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니 조선게들이 뭐라하던 내가 맞다는 생각이 들고 더 이상 심적으로 크게 고통받을 일이 없다.

갤러들도 이해를 통해 심적으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을 올린다.



번외)


*도덕쟁탈전


일단 이것은 내가 경험했던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최악이다.

한국사회는 도덕의 나라라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나...

그러나 이 도덕은 더 이상 인간 내면의 성찰이나 공동체의 조화를 위한 윤리가 아니다.

지금 무갤러들이 느끼는 한국의 도덕은 누가 더 '도덕적인 척'을 잘하느냐의 싸움이다.

도덕쟁탈전은 서열 사회의 산물로 비판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위계를 지키는 시스템 위에 세워진 일종의 심리적 권력 다툼이다. 이 구조 속에서 도덕은 윤리가 아니라 무기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들이 느끼는 서열에 맞지 않게 튄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을 향해 '도덕적 문제'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 딱지는 서열구조를 어겼다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무력화해버린다.

사람들 또한 그것에 익숙해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동조해버리고 만다. (진짜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없애려고 한다)

이런 구조는 조선 유교의 왜곡된 계승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유교는 인간의 내면수양과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를 서열의 정당화 도구로 삼았다. 예의와 효, 충성은 하위자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복종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현대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 결과, 이 사회에서 착한 사람은 오히려 서열에 관련된 것을 건드리는 순간 도덕딱지로 나락을 가게 되고 그들의 이상한 기준에 맞게 착한 척을 잘하는 사람은 살아남았다. (이국종 같은 case는 그들의 억눌린 무의식이 만든 사회적 투사일뿐, 그들은 아직 진정으로 착한 것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 이국종 또한 결국에 현실에서는 서열에 패배했다)

비판보다는 리액션이, 진심보다는 태도가 중요시된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 없는 도덕 감시체계는 더 촘촘해지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함에 따라 진정한 감정은 억눌린다. 그 억눌림은 첫째,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을 무표정한 분노덩어리로 만들어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는 약자에게 전가하게 한다. 둘째,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감정과 욕망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서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로서 활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셋째, 내 감정조차 이해를 못하는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오직 조선식 이상한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게 된다. 넷째, 사회 전체가 가짜로 포장되어 진짜 문제를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생각의 연료이며 감정이 죽는다면 그 사회에서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이러한 구조는 윗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시스템이 되어 다음세대에게도 고스란히 주입되며 계속되고 있다.


문제를 알아봤으면 어떤식으로 해결이 가능한지도 생각해보아야한다.

위 구조에서 벗어나는 첫번째 방법은, 도덕을 더 이상 경쟁하거나 비교할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언어로 되찾는 것이다. 남보다 도덕적이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 어떤 기준을 가질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결정을 해야한다.

두번째 필요한 것은, 비슷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 간의 느슨한 연대이다. 이 사회에서 진심을 가진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소수는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연결된 이들이 만드는 작은 질서가 기존 구조 밖의 새로운 공간을 열 수 있다. 그 작은 공간이 도덕쟁탈전 및 서열질의 회로를 끊는 첫 걸음이다.


힘들겠지만 언젠간 작은 신념들이 모여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또한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질서를 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