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다른 무출갤러가 쓴 글을 봤다. 한국여자 스스로도 본인들이 하는 짓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거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해야겠으니 너무 ‘알파남’ 같은 남자보단 좀 가정적일것 같고, 성실하면서도 좀 만만한 사람을 찾고, 잘 보이는 연기를 하고 결혼하니 편해서 풀어지면서 잘생긴 헬트랑 눈도 맞고 본성이 나오는게 ‘이 사람을 등쳐먹어야지. 이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려야지.’하고 결심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스탑럴커 중 상위 일부는 결혼할 때에는 ‘이제 맘잡고 이 사람이랑 잘 살아봐야지. 우리 남편 아침밥도 해주고 같이 출근하고 주말엔 같이 데이트도 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결혼해 보니 일하는게 너무 고생스럽다. 그래도 남편 혼자 벌어도 아껴살면 둘이서도 충분히 사는데 그냥 퇴사하자. 집에 주부가 있어야 밥도 챙겨주고 청소도 하고…. 그렇게 퇴사를 하고, 한달 정도는 너무 행복하다. 다음달부턴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퇴사했다고 놀기만 하면 쓰나. 그런데 일주일 동안 풀어진 습관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덧 가정주부면서도 남편 아침밥 같은건 없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엔 힘들어서 쉰다. 꾸준한 운동이나 몸매관리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 회식이나 야근으로 살은 찌고, 체력은 떨어진다. ’아저씨‘가 된다. 그래도 여자는 시간이 남으니 동네 헬스장을 등록하고 피티를 신청한다. ’건강관리는 중요하니까‘. 피티 선생님은 30 초반의 우락부락한 트레이너다. 전신의 근육은 단단하고, 남성 호르몬이 넘친다. ’이 사람과 바람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트레이너가 스쿼트 자세를 잡아주며 살짝살짝 터치를 해주면 왠지 부끄럽다. 피티가 끝나면 스트레칭도 중요하다며, 마사지도 해준다. 마음이 설렌다. 그렇게 피티 10회차를 마치고, ’회원님 저희 피티 끝난 기념으로 밥이나 한번 할까요?‘ 라고 트레이너는 말한다. 밥은 곧 술이 되고, 어느새 ’친구‘가 되어 종종 약속도 잡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단단한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남자는 없다. 지치고 쳐진 살을 가진 아저씨가 들어오고, ’그래도 남편이니까‘라는 마음에 저녁 차려주는것도 한두번. 솔직히 저녁 차리는게 뭐가 힘든가? 국 데우고, 반찬 몇개 데우고, 생선이든 고기든 메인 반찬 한개 정도 가끔 놓고. 오히려 그렇기에 그 정도는 남편이 직접 차려 먹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한다. 여자의 마음은 어느새 며칠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한 트레이너에게 가있다. 관계는 진전되고, 여자는 자연스럽게 어느 날인가 몸을 섞는다. 할때는 좋았는데 왠지 끝나니 죄책감이 든다. 그 날만큼은 남편한테 잘해준다. 오랫만에 삼겹살도 구워주고, 다음날엔 데이트도 해준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다. 금새 여자의 죄책감은 옅어진다. 남자는 변함없이 초라하다. 직장이 주는 부담감은 매년 늘어나고, 그의 몸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데 급급하다. 여자는 본인의 여유가 남편의 희생에서 온다는 것을 잊는다. 남편의 현재 수입뿐만 아니라, 미래의 수입에 대한 예상에서 오는 안정감이 자신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것인 줄 모른다. 여기서 피해의식이 발동된다. 자기는 낮 동안에 바쁘다. 운동하랴, 친구 만나랴. 그리고 정말 하기 귀찮은 집안일을 하느라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미적미적 하루 종일 미루느라 실제로 일한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바쁘다고 느낀다. 그런데 남편은 그냥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올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게임의 주말 이벤트로만 제공되는 기간제 특별 아이템처럼, 남편은 낮 동안엔 본디 존재하지 않다가 ’6시 이후부터 등장하는 특별 기간제 아이템‘으로 보인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에 열심히 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본인은 이유도 모르게 남편에게 화가 난다. 내가 집안일 다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당신은 이제 와서 양말은 대충 던지고 소파에 눕느냐. 남편은 이유를 모른다. 자기는 너무도 고생하고 와서 피곤한데, 아내는 자신에게 집안일은 왜 안하냐며 화를 낸다.
여자는 서운하다. 자기는 이렇게 힘든데 남편은 자기를 돕지 않는다. ‘집안일은 당신이 집에 있는 동안 좀 하면 안돼?’라는 서러운 소릴 한다. 어느새 본인이 결정했던 퇴사는, 남편을 위한 희생으로 둔갑된다. 여자는 본인이 ‘경단녀’라고 여긴다. 잘나가는 스타 샐러리우먼들과 스스로를 비교하지만, 그녀들의 능력, 경력, 고생 등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그녀들의 높은 직위, 잘 빠진 깔끔한 세미정장, 깔끔하고 네모반듯한 대기업 고층빌딩의 개인 사무실 뿐이다. 그렇게 서러움을 본인의 친구들, 남차 동창들, 예전에 알던 트레이너들에게 토로하고, 그들은 어느 날인가 한 술집에서 만나 회포를 푼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면 모텔도 가고, 마치 연인처럼 데이트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는 화밖에는 낼 것이 없다. 이런 관계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결국 이혼이다. 가성비의 5년, 약속의 10년은 이렇게 그 예언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여자는 남편을 착취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결말은 악한 마음을 가진 스탑럴커와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그 마음만큼은 ‘개념녀’와 동일했기에 결혼 전에는 절대로 걸러낼 수 없다. 어린아이가 진실된 믿음으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대!’라고 말할지라도, 동생을 골탕먹이기 위해 같은 말을 힌 아이와 같은 아침을 맞는다. 진실된 마음에서 나오는 그릇된 행동은, 때론 그릇된 마음에서 나오는 그릇된 행동보다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한녀는 스탑럴커다. 한 명도 좋은 한녀는 없다.
이전에 유명한 짤이 있지 않던가-, 지하철을 타면 앞으로만 가는것 같지만 사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온 것이라고.
한국여자와의 결혼도 이와 같다. 여자는 스스로 직진한다고 여기고 스탑럴커론을 비웃겠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스스로 지나온 길은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구부러진 길이다.
성인이 되어도 쾌락 하나 절제 못하는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이 갑자기 결혼한다 해서 바뀔 리는 없지. 그런데 그것이 한녀이기에 나거한은 망하는 것이다. 그 책임없는 욕망 추구에 자녀는 포함되지 않거든.
그러니깐 한녀들은 요즘 자기 망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곧바로 애새끼 죽이고 현실도피하기 바쁜 것이다. 그리고 보지들 측성 상, 그러한 자기 암시가 곧 현실이므로,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저 연약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한녀다.
인정.. 누구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게 한녀라고 생각함
동의한다.
내가 그런식의 자기합리화를 지난 세월동안 수많은 여자들에게서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