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질서란 기술 발전과 자유주의 기반 민주주의, 자본주의로 돌아가던 부분이다. 서구 사회가 이식해준, 누구나 최선의 공정이라 생각하여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질서다. 그것이 무너지니 저마다 자신이 질서라 말하며 다투고 싸운다. 원론적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나거한에서 작동한 적이 없다. 그저 이름만 차용해서 나거한 로컬라이징으로 돌렸지. 원래 시스템이라면 공정을 말했어야 했는데, 가짜 평등을 말하며 공산주의 독재 비슷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제 모순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라 생각한다.
희망이란 더 나아질 거란 기대다. 복잡한 정치 경제를 몰라도, 누구라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거리를 나서면 생기 넘치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생기 넘치는 어린 아이들이 감각적으로 사회에 희망을 보증하던 수표였는데, 이미 태어난 자도 죽는 판이니 새로 태어나는 이가 없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에는 늙은이와 노괴로 가득하다. 그 늙은이와 노괴는 화가 잔뜩 나서,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과 젊은 남성을 공격한다. 권한이 없었던 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이제 와서 질서와 희망을 되돌리라 윽박지른다.
그런데, 질서나 희망을 형성하는 힘은 신뢰다. 나거한은 이미 신뢰부터 망가졌으므로 회복하기 어렵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므로 구부득고다. 그러니 나거한의 우울증은 이제 시작이란 생각이다.
과연 나거한이 질서와 희망을 버리고 그 바닥에서 관념을 다시 쌓을수 있을까가 관건인데 그건 암만봐도 불가능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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