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란 기업, 쿠팡이 물류에서 남성을 차별한 건에 대한 호오나 의견은 존중한다. 이 글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갤러 개개인을 겨냥하고 쓴 글이 아니다.


내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쿠팡 사태 전반에서 반복해서 보이는, 자본주의를 대하는 나거한의 태도다.


난 경제를 잘 모른다. 그저 이 시점의 내 생각을 쓸 뿐이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그 추구는 해당 공동체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제한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이다. 제 1 목적은 이익 추구지만, 해당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이익 추구에 반하므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의 목적에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명시한다. 해당 사회에서 사업을 벌이며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건 제로섬 구도에서 공동체에 대한 기업의 일방적인 착취일 수 없다. 일방적인 건 기업보다 정부다. 세금이든 복무든 강제성과 일방성이 기본이다. 기업에 대한 소비는 선택이므로 반독점법 아래 강제성이 없으며, 소비자에게 일방적인 착취를 일삼는다면 당연히 법적 리스크나 여론 악화가 발생하며 경쟁 기업이 비교 우위를 가지므로 퇴출이다. 이익 추구가 제 1 목적인 기업에서, 그걸 정면으로 방해하는 짓을 의도적으로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점이 아니고, 강제성도 없는 상황(다르게 표현하면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가 장착된 경우)에서 소비자를 향한 기업의 일방적인 착취나 이윤 추구가 발생할 수 없다.





그런데 쿠팡 사태에서 보이는 나거한 정치권과 언론을 보면 이상하다. 그들은 쿠팡이 한국에서 일방적이고 착취적인 이익을 얻고, 보상은 미국에 했다는 식으로 '피해'를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한국 물류 기업과 비교하면 가장 노동 강도가 약하며, 노동법과 안전을 지키는 곳이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이다. 애초 쿠팡이 일자리로 뜬 이유가 이것이며, 여성이 몰려든 이유기도 하다. 진짜 절박해서 상하차 일용직 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물류센터에 여성은 무슨, 건장한 외노자나 운동선수도 죽음의 공포에 도망치는 곳이 기존 상하차다. 안전이고 뭐고 그냥 환경이나 시스템이 21세기가 아니었다. 행동으로 그런 인식을 개선한 기업이 쿠팡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미국에 상장했고, 한국 쿠팡의 지분과 의사 결정권을 미국 쿠팡이 쥔 형태다. 상장 시기 미국 투자자에게 한국 특유의 감정적 개입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안내했고, 한국에 상장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일관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고 멍석말이로 기업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 관점은 최근 쿠팡 사태로 증명되었다. 경영진 수준의 판단과 실행도 뛰어난 기업인 셈이다.



쿠팡은 그 규모에서 자연적으로 발생 가능한 '실수'조차 적게 발생했다.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거나 일방적 착취를 자행한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한국에서 돈을 빌려 인프라 깔고 투자한 것은 합법적으로 빌린 것이며, 이자를 포함해서 갚아야 할 돈이다. 당연히 쿠팡 코리아는 한국에 세금을 내고 있다. 돈이 돌지 않아 망해가는 나거한에서 일자리 창출하고 세금 내고 좋은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개발자나 경영진에 중국인이나 인도인 쓴다며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같은 비용에 같은 능력을 내는 한국인이 있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 그건 기업의 책임이 아니다. 애초 한국 법과 제도로 그것이 가능하게 풀어주지 않았나? 그래서 젊은 남성을 외국인 노동자와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그 법을 만든 인간들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 역겹다. 상하 서열의식이 강한 한국인 관점에서는 쿠팡 관리직이나 개발자를 비 한국인으로 채웠다는 것에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한국인이 그 돈을 받고 같은 퍼포먼스 보이면 되는데 그 수준이면 벌써 외국으로 나가서 없다. 전체 고용과 금액을 따지면 관리직이나 개발자는 극소수고, 오히려 한국에 일자리 창출하고 기여한 부분이 많다.



사람 갈아서 얻은 빠른 배송 시스템? 쿠팡은 다른 물류처럼 사람을 갈아서 한 게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얻은 것이다. 오히려 다른 한국 물류와 다르게 장난질 치지 않고 돈을 잘 줘서 쿠팡으로 이직한 경우가 많다. 다른 물류 기업과 비교하면 배송 기사 당사자들이 더 일하고 싶어서 난리인 경향이 뚜렷하다. 일을 할수록 돈이 되거든.



쿠팡에 입점한 판매자 상대로 고리대금 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그게 하면 안되는 일이라면 왜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는가? 법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성인지 법만 찍어내느라 신경 쓰지 못했나? 누워서 침 뱉기다. 애초 신용이 높아 은행권 대출이 가능한 사업자라면 쿠팡에게 빌리지 않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 대출이 불가능한 절박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쿠팡이 도움을 준 셈이다.






나거한이 보이는 쿠팡에 대한 태도는 배은망덕이요, 사실과 다른 거짓이고, 피해의식에 기반한 여론으로 몰매, 이후 강도처럼 부당하게 내놓으라 하는 것이다. 논리적 비판이 아닌 감정적 비난이요, 그조차 방향이 잘못된 나거한 풍습이다.




결국 독점이 아니고, 강제성도 없는 상황(다르게 표현하면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가 장착된 경우)에서는 소비자를 향한 기업의 일방적인 착취나 이윤 추구가 발생할 수 없다. 미국에 상장한 기업이라면, 나거한과 비교해서 더욱 신뢰할 수 있다.







물론 정의나 이론이 그렇다고 항상 지켜지는 건 아니다. 악덕 기업은 존재하며, 시대와 환경에 따라 악하다는 것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가 결합된 체계에서는 시장 원리에 따라 그런 기업이 알아서 사라지고 체계가 잡힌다. '다른 모든 체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질서와 조화를 찾으며,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 단계에서 제거한다. 최악의 최악을 상정하더라도, 결국 군사력을 정부가 독점하고 통제하므로 폭주할 수 없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문제는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오히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작동 조건은 이렇다.


1) 이름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이루는 핵심 원리인 언론의 자유와 구성원의 교육 수준, 투표 권력의 균형이 잡힌 상태에서

2)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법치까지 더하면

3) 시장 원리가 건강하게 작동하며 다른 어떤 체계보다 빠르게 균형에 접근하고 효율이 발생한다.


나거한에서 체감하는, 나거한에서 문제라 지목하는 자본주의에서 위 조건이 하나라도 지켜지는가? 제대로 자본주의를 실행한 적도 없으면서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나 부작용이라 말한다면 이상하다는 것이다.



젊은 남성에게는 살벌한 고용 자율화를 적용하며 비정규직, 하청, 파견까지 일삼고 노동법도 어긴다. 거기에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을 돌린다.

하지만 86세대와 여성에게는 같은 기준을 두지 않으며, 온화한 태도로 철밥통, 공공일자리와 복지까지 제공한다.


이런 일관성 없는 태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공정성과 일관성이 없으므로 법치에 어긋나며, 그걸 추구하고 실행한 힘이 인구 피라미드로 인한 특정 세대의 투표권 말살과 멍석말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에도 어긋난다. 선택권도 자율성도 없으므로 자유주의도 아니다.


자본주의를 돌리기 위한 전제 조건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 발생했으므로, 이건 자본주의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돌리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거기에 더해, 나거한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 비판에서 자주 빠지는 부분이 있다. 자본주의를 제외한 다른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시하더라도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이며,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까지 다 나온 주장이다.

정작 나거한이 말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른 체계에 적용할 시, 다른 체계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손해로 돌아온다.


결국 나거한에서 나오는 자본주의 비판은 자본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나온다 판단하게 된다. 학술이나 원리, 균형에 대해 감정을 씌우는 건 부적절하다. 이해의 대상인데, 감정은 이해를 막으니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다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현대 문명에서 대안이 없는 그나마 가장 나은 시스템이며, 그것에 대한 비판은 순기능이 아닌 한계라는 것.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이렇다.


가치는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달라지며, 수요나 공급, 인식 등 다양한 팩터에 영향을 받아 동적으로 변화한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가치(혹은 시장)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한다는 건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

그렇다고 예측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온갖 불합리와 부작용이 튀어나오므로, 공동체 수준에서 최소한의 규칙(법치)과 시스템(민주주의), 방향성(자유주의)을 정해 호환성(대표적으로 중앙 화폐나 법적으로 인정되는 자산)을 갖춘 뒤, 나머지 균형과 조화는 시장에 맡긴다.

다양한 팩터에 영향을 받으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동적 가치, 그것과 엮인 자산이란 개념부터 정적이거나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부터 늘 변화하고 오차가 생기는 성질이니까. 다수 인간의 욕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사실관계는 인정하되, 지나친 변동성은 인간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므로 지속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최소한 개입만 추구한다.



자본주의는 최소한 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에 기반하며, 개인의 가치 설정과 욕망을 인정하므로 자유주의가 필요하고,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조절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그것을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 전제하는 모든 시스템은 조화와 균형을 향한다.


권한과 책임의 비례를 말하는 민주주의가 개인과 집단의 욕망 균형을 찾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주의가 나와 타인의 자유 균형을 찾고, 법치주의가 일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여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유지를 위한 균형을 찾는다.

자본주의도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지속 가능성 사이 균형을 찾을 뿐이다.



자본주의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보다 나은 체계도 없다. 자본주의를 대신 하자며 제시된 체계는 전부 현실에서 재앙을 부르거나, 자본주의와 비교하여 더 처참한 결과를 보였다.

이미 80년대 확실히 결론 나서 일반인까지 받아들인 당연한 상식임에도, 요즘 상식적인 말이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