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 평점 1점테러 날리는 여러분들이 ‘이 뭔 개소리노’ 할만한 토픽.
아, 안다. 선하게 사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거라는 코멘트들, 이 나라에서 선하게 살아서 누가 좋냐는 코멘트, 조선에서 선하게 살면 조선인들만 득본다는 코멘트.
다 알고 하는 소리니 잠깐만 진정하길 바란다. 나도 여기 갤질 원투데이 한건 아니라.
대충 전제, 아니 결론부터 깔고 가자. ’선한 이는 스스로의 행복을 창조해낼 줄 아는 이이고, 악한 이는 타인의 행복에 기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이다‘.
어차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대충 뭔 소린지 알것이다.
그렇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미 선한 이의 그것을 띄고 있지 않은가? 조선게들처럼 집게질하면서 행복한 건 아니잖는가.
결국 타인의 행복에 기생하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행동에서 독성이 사라지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왜 선(善)을 권장하느냐고?
그야.. 재밌으니까.
어어 ‘그분 어록’이 아니다, 내 결론이다.
뭐 도덕 교과서마냥 뿌듯함 이딴 걸 말하려는 게 아니라.
악인들이 타인의 행복에 기생하려 드는 같잖음을 보는 게 재밌다고.
이미 여러분들이 여기서 조선인들 보며 동물원 동물 취급하듯이.
‘그 악인들’의 스펙트럼은 엄청 넓다.
어느 초강대국의 과학 엘리트일수도 있고, 여러분 옆의 누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바라보면, 그들이 미개해 보인다.
즉, 세상을 ‘남들이 정해준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것이다.
남들이 정해준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자기 주관’이 생긴다.
‘자기 주관’이 생기니 ‘자기 생각’이 생긴다.
‘자기 생각’이 생기니 ‘자신만의 시야’가 생긴다.
‘자신만의 시야’가 생기니 쓸데없는 비교를 멈춘다.
쓸데없는 비교질이 멈춰지니 열등감은 사라지고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니 행복해진다. 악인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이 모든 과정을 겪으니 악인들이 미개해 보이며 우월감이 충족된다.
우월감이 충족되니 악인들에게 사소한 선의 정도는 괜찮아 보인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먹이주듯이 악인들에게 선의를 사소한 베푸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모든 과정이 계속 반복되니 행복은 본인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악인들을 더 멸시할 수 있다. ‘멍청이 새끼들’ 하고 몰래 비웃는다.
정상적인 공동체에 속해있다 여겨지면 조금 더 선심써서 공동체에 득이 되는 행위도 해볼 만 하다.
정상적인 공동체라면 그런 행위는 피드백되고, 그대의 선행과 선순환이 이어진다.
정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얻는 것은 크다.
목줄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행복’으로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조련해왔다.
그 ‘세상’을 직접 움직이는 사람들부터, 그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모든 사람들까지.
‘이거’를 하면 행복에 가까워진다는 내용의 암시들로 사람의 자유의지를 조작해왔다.
그 ‘이거’에는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
출산, 가정을 꾸림, 권력자들에게 순응함 등등….
악한 이들은 저 암시에 내성이 없다. 그러니 목줄이 잡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한 이들은 저 암시에 따를지 말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이미 스스로가 행복하니, ‘권장사항’ 정도로 격하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간에서는 이를 대충 ‘자유의지’라 부른다.
직장에서 본인을 과하게 구박하던 상사가 세상의 목줄에 잡혀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기쁜 듯 웃으며 하는 꼴을 보니 샤덴프로이데가 충족된다.
상사가 악의로써 부당하게 구박한 것이니 자업자득이고, 본인이 그에게 해 끼치지도 않았으니 양심에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러니 재밌다. 저 머저리들이 걸어서 도축장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잘 죽어라’고 속으로 외쳐가는 게.
또 다시 샤덴프로이데가 충족된다. 아주 기분 좋게. 재미가 충족된다. 인생이 충만해진다.
그런 가축들에게 엘레베이터 버튼 잡아주는 것과 같은 사소한 먹이만 던져줘도 그들은 그대를 다루기 쉬운 듯 여긴다. 멍청하니까.
이미 남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그대의 목에 목줄이 없는 것 자체를 못 보는 것이다. 가축이니까.
보다보면 웃기고 재밌다. 난 착하게 사니까.
이런 연유로 본인은 여러분들에게 선(善)을 권장한다. 재밌으니까.
스스로의 행복을 창조해 나갑시다들.
그렇지만 가끔은 너무 호구같단 생각이 든 적도 있지
호구같은 무갤럼 vs 안 호구같은 퐁퐁이 ->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 나오지 않겠노
결국 그 ‘호구같다’는 것 역시 타인의 시선일 뿐이라 봄
‘내재화’란 개념이 있는거로 아는데, 그거라 생각함.
@글쓴 무갤러(116.255) 그 말도 맞지 갠적으로는 나도 타인의 시선을 좀 많이 신경 쓰는 편이라..
지향 과 선택 같은 개념의 접근이라면 뭐 - dc App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의 행복을 직접 만들어가냐’의 여부로 놓고보니까 저렇게 나뉘더라
돼지의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지 않듯 선의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 선을 배푸는 우를 범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선악 법규도덕규칙 다 자연과학적 원칙이나 기준없이 꼴리는데로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둘러대며 가져다 붙이는거 아니겠노
저것들 들춰보면 결국 스스로가 행복하냐 마냐의 여부인거같아서 글 썼음 누군가한테 집게질하며 좆같게 굴어서 좆같은 반응이 돌아왔는데 거기서 희열을 느낀다면 여기 갤에서 다뤘듯 사도마조히즘인데, 저 상태가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의 그거라곤 여길 수 없어 보임. 그러니 악이라 볼 수 있음. 대충 요런 내용의 근거없이 주관 가득한 글일 뿐임.
동의함. 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선한 행실을 갖추는 것이 탕핑에도 도움이 됨. 악을 이루려면 타인에 의존해야 하고, 구조에 묶여있게 되지만, 선을 이루기 위해서 타인에 얽매일 필요는 없음. 아닌 것 같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니 선으로부터 자유를 잃을 염려는 적음. 무엇보다 선은 속이지 않아서, 악과 선이 같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악(나거한)의 악함이 부각됨
탈조에는 더더욱 도움이 될거라 여김.
선이 더 다양하고 재미있고, 악은 단조롭고 지루한 경향이 있지
스스로의 행복조차 스스로 못 창조하는 자들이 하는 상상들이 재밌을리가
ㅇㅇ 선하게 보이는 것은 중요치 않음.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중요함. 악인에게 선해보이는게 무슨 보람이 있겟음.ㅋㅋㅋ 물론 스스로 정하면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그것조차 스스로가 즐길 과정이지 남이 뭐라 할 부분은 아님.
지쟈스도 대충 그런 소리 했던거같네.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쓰지 말라는 그런 소리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이네. 니체는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으로 도덕을 구분했음. 물론 그렇게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용어는 아니고 선악 개념을 넣으면 스펙트럼이 더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타인의 나쁨으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찾는 노예 도덕과는 달리 주인 도덕은 자기 자신 그 자체만으로 가치관을 갖는 도덕임. 그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음. '타인을 나와 같이 사랑하되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주인 도덕과 선함의 지향이 합쳐지면 스스로 행복을 찾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나는 애니를 보면서 이런 여캐가 마음에 들었는데 철학을 공부하다 이게 딱 언어화 되어있는걸 보고 신기함을 느낌. 역시 뭐든 알고보면 더 재밌는거 같음.
최근에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말에 대해 화두로써 몰두하고 있었는데 뭔가 큰 힌트를 받은 거 같다. 고맙다.
읽어볼만한 글이 하나 작성되었으니 링크 올려봄
https://m.dcinside.com/board/asdf12/24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