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거짓말 개념은 일반적인 선진국 국민들과 다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정직’이라는 말이 항상 사실에 대한 정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선진국 국민에게 정직이란,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사실을 가능한 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이라도 사실이면 사실로 인정하고, 자기 편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도 현실이면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반면 한국인들에게 정직이란, 종종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외부 현실에 대한 정직보다, 자기 마음속 바람에 대한 정직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많은 발언은 그 뒤에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붙이면 오히려 더 정확해진다.
예를 들어 이런 명제가 있다고 하자.
한국은 앞으로 인구구조가 무너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 진단이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지방 소멸, 가구 구조 변화 등을 고려했을 때,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지금과 같은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온다.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냐?”
“나라가 그렇게 쉽게 안 망한다.”
“너는 한국이 망하길 바라는 거 아니냐?”
이 반응은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이 인구구조 때문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한국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구조가 위험하다”는 말은 “한국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말도 “부동산이 폭락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식 논쟁에서는 사실 판단이 곧바로 소망 판단으로 바뀐다. 상대가 말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바라느냐를 먼저 의심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좋지 못한 버릇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사실을 제시해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사실을 지적받으면 그것을 상대주의의 이름으로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태도다.
스티브 유 씨의 사례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여러 차례, 자신은 한국에 완전히 입국이 금지되어 있어서 어떠한 형태로도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여행비자로 한국에 오면 되는데, 일부러 경제활동을 위한 비자를 노리는 것 아니냐?”
“한국에 못 오는 게 아니라 돈 벌려고 특정 비자를 받으려는 것 아니냐?”
물론 스티브 유 씨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를 비판할 수도 있고, 그의 입국을 반대할 수도 있다. 병역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가 실제로 어떤 입국 제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여행비자로 입국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는 사실 확인의 영역이다. 이것은 호감이나 비호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 사실 확인조차 감정과 욕망으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가 한국에 못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는 계속 나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니 그는 사실상 들어올 수 있는데 돈 벌려고 비자를 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욕망이 사실을 대체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을 지적하면 다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너는 그렇게 믿어라.”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겠다.”
“그것도 네 의견일 뿐이다.”
“남의 의견을 강요하지 마라.”
그러나 검증 가능한 사실은 의견이 아니다. 사실은 취향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의견의 영역이다. 어떤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도 토론의 영역이다. 하지만 어떤 제도적 상태가 존재하는지, 어떤 통계가 말하는지, 어떤 현실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단순한 의견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출산율이 장기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의견이 아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의견이 아니다. 특정 인물이 입국 제한이나 비자 문제를 겪고 있는지 여부도 의견이 아니다. 이것들은 사실 확인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사실들이 너무 쉽게 “너의 의견”으로 격하된다. 그리고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태도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로 포장된다.
하지만 이것은 의견의 다양성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을 인정해야 할 책임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들의 거짓말 개념이 다른 이유는, 그들이 반드시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에 대한 정직보다 욕망에 대한 정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에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많은 발언 뒤에는 이 말을 붙이면 더 정확해진다.
“그랬으면 좋겠다.”
한국은 인구구조 문제를 겪지 않을 것이다.
→ 한국이 인구구조 문제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동산 가격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 부동산 가격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티브 유는 여행비자로 오면 되는데 돈 벌려고 비자를 노리는 것이다.
→ 스티브 유가 그런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들의 많은 발언은 단순한 거짓말이라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사실처럼 말하는 방식에 가깝다.
문제는 욕망을 갖는 것 자체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있고, 보고 싶은 현실이 있다. 문제는 그 욕망을 사실이라고 우기고, 사실을 말하는 사람을 악의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는 태도다.
사회가 성숙하려면 “그랬으면 좋겠다”와 “그렇다”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바라는 것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 소망과 사실은 다르다.
한국 사회의 많은 논쟁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 구분이 자주 무너지기 때문이다.
Sein과 sollen을 혼용하는 태도, 그리고 1984 식 이중사고(doublethink)가 거한인의 본질이지
공과사 구분 못하는 머저리 촌놈떼들이라 그럼. 정신수준은 수백년전과 동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