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모를 가꾸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모 관리는 독서, 운동, 게임, 등산, 패션, 음악 감상 같은 취미의 하나일 수 있다고 본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옷을 고르고, 피부를 관리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몸매를 만드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것이 극단적인 강박이나 자기파괴로 흐르지 않는 한, 외모를 가꾸는 행위 자체는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취미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외모 관리가 취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데 책을 안 읽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독서가 취미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책 안 읽는 사람은 수준 낮은 인간이다”라고 말한다면 한국에서는 나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 것은 당연히 좋지만 엄연히 그것은 취미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외모는 어느 순간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더 나아가 사람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기준이 되었다. 외모를 열심히 가꾸는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단순한 취미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외모를 별로 가꾸지 않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외모 관리가 취미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꼭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자기관리 안 하네.”

“저렇게 하고 다니면 안 부끄럽나?”

“살 좀 빼야겠다.”

“피부 관리 좀 하지.”

“옷을 왜 저렇게 입지?”

“관리 안 하는 사람은 게으른 거지.”


이런 식으로 외모에 대한 관심을 곧바로 인간 평가로 연결한다. 여기서부터 외모 관리는 취미가 아니라 서열질이 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좋다. 몸을 만들고 기록을 향상시키고 건강을 챙기는 것은 훌륭한 취미다. 그러나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자기관리 안 되는 인간”이라고 깔보기 시작하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우월감 놀이다.


외모도 똑같다. 외모를 가꾸는 것은 취미일 수 있다. 하지만 외모를 기준으로 남을 깔보는 순간,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계급질이 된다.


내가 한국에서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정적 선입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고, 몸을 가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외모 집착은 너무 자주 타인 평가권으로 이어진다.


자기가 꾸미는 만큼 남도 꾸며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다이어트를 하니 남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피부관리를 하니 남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옷에 신경 쓰니 남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급이 낮은 사람”, “게으른 사람”, “관리 안 되는 사람”으로 본다.


이것이 내가 싫어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