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특성만 보아도 한반도는 폐쇄적이고 닫힌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지. 3면이 바다이고 북쪽 지역만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조차도 평지가 아니라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전체적인 지형 또한 탁 트인 평지가 적고 산악 지형임.
이 말은 즉, 구조적으로 마을과 마을, 지역과 지역 사이에 교류가 적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지역과 지역간 교류가 적다보니 자연히 폐쇄적인 성향을 띌 수밖에 없고, 앞서 말했듯 한반도 자체 또한 반도 + 산이 많은 특성상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도 적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에 언어도 고립어일 수밖에 없고 예로부터 이루어져 왔던 자국민 착취 및 자국민 노예화 등 한국의 많은 비정상적 현상들이 설명이 됨. 이는 다시 말해, 역설적으로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릴수 밖에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른 민족을 직접 지배할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된 환경이라는 것이니..
그럼 일본은 한반도와는 달리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데 어떻게 이렇게 한국과는 성향이 정반대이고 오히려 서양인의 특성을 띄는 것일까?
이것 또한 일본의 지리적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일본은 열도, 즉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는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면 '각 섬에 위치한 서로 다른 국가들이 병합되어 형성'되었기에, 여건 상 전쟁이 매우 잦은 곳이었지. 이것은 마치 유럽의 역사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반면 한국은 일본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같은 민족간의 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곳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역사를 보면 신기할 정도로 통치 제도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봉건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주가 성을 만들어 농민들을 보호하는 이런 통치 체계가 중세 일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전쟁이 잦은 지역에서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통치 시스템으로 보여지는데, 전쟁이 자주 있다 보니 농민들은 왕, 즉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직접 보호해 주는 지방 호족(유럽의 경우에는 영주가 되겠고, 일본의 경우에는 다이묘 정도)에 의존하게 되어 나타난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바로 바로 이러한 환경속에서 사유재산을 비롯한 개인주의가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농민들이 중앙정부, 즉 국가에 소속되었던 한국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음.
이러한 지리적, 환경적 특성이 일본 및 서양인들이 대체로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되고 한국인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된 것에 한몫했다고 봄.
중국이 수천 년 간 이곳을 직접 점령하지 않고 조공국으로 둔 것이나 18~19세기 서양 열강들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지가 많아 농사를 짓기 좋은 것도 아니고 하니.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곳이 살기 좋은 땅 이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었다면 진작에 중국이나 외부 세력에 점령되어 동화되지 않았을까?
새벽에 문득 생각이 나서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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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도 여행다녀서 많이 개방적으로 바뀐듯
재미있는 글임. 부가해서 쓰자면 본문에서 언급한 산이 많은 지형 때문에 한국도 일단 시작은 유사하게 수많은 나라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반도에서 가장 지리적으로 유리한 지역이 바로 관서지방과 경기지방. 초창기에는 대륙의 선진문물을 흡수하기에 유리한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선두를 달리며 확장하고 있었는데 하필 전국시대가 끝나고 거대한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개털리고 그 자리에 딱 한사군이 설치됨. 그래서 장장 400년 동안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한 나라는 한반도에서 탄생할 수 없었고(일본과 비교되는 부분임. 일본은 큐슈에서 시작한 야마토가 동진하면서, 물론 나중에는 지방세력이 성장하며 분열되긴 하지만 결국 국가로서의 패권을 잃지는 않은 구도)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차선의 지형들에서 여러 나라들이
각각 발전한 삼국시대. 고구려는 춥고 험한 데서 시작해 불리했지만 지리상 중국의 선진문물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고 훨씬 유리한 지형에 위치한 라이벌이었던 부여가 모용선비에 개털리고 낙랑군과 대방군이 급격히 쇠락하면서 관서지방과 해서지방을 그대로 차지하는데 성공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됨. 백제는 위에서 언급한 가장 유리한 지형이었던 경기지방에서 시작했기에 삼국시대에서 가장 먼저 전성기를 열음. 신라는 한반도의 중심지는 아니지만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이고 기후가 온후해 나름 유리한 지형이었던 영남지방에서 안정적으로 확장해나감. 가야제국(諸國) 또한 비슷하게 유리한 지형이었고 특히 금관국(금관가야)의 경우 풍부한 철광석과 교역에 유리한 지형을 통해 강국이 되지만 경남지방의 그 오밀조밀한 산악지형에다 특히 인구가 많
은 지방이었기에 결국 금관국이든 후에 일어난 반파국(대가야)이든 가야통일에는 실패하고 본격 영역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에게 달달 털리다 망함(반면 비슷한 산악지대를 정복한 고구려는 그쪽 지역이 인구가 적었기에 동예나 옥저 같은 소국연맹체를 쉽게 흡수함). 호남권 또한 가야처럼 나름 침미다례를 중심으로 마한제국이 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나 가야와 달리 평탄한 지형 때문에 초창기부터 금방 백제에 싹 털려버리고 빠르게 흡수됨. 여튼 이렇게 한반도도 초창기에는 중원세력의 유입과 견제로 인해 여러 국가로 갈라져 성장하게 되었으나 역시 그 중원세력의 견제로 인해 고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막강한 통일제국 당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던 고구려, 백제는 순식간에 망하고 이후 고구려 잔당과 말갈의 연합체인 발해와
한순간에 왕실이 없어져 붕 뜨게 된 고구려, 백제 호족들의 지지를 받게 된 신라의 두 나라로 정립. 그러나 이 남북국시대까지도 아직 한국은 분열적이었음. 영남지방에 수도를 가진 국가가 한반도 전체를 완벽히 통제하기에는 조운이 원활하지 않다거나 거리가 멀다는 등의 지리적 이유가 장해물이었고(수도를 경기지방으로 옮기기엔 그저 반독립적으로 복속된 것에 불과한 그쪽 호족들을 믿을 수도 없었음) 발해 또한 오밀조밀한 산지에 위치한 여러 세력들을 통제해야 했기에 쇠락기에 접어들면 얘네가 마구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줌(고구려처럼 관서, 해서지방 같이 중앙에게 권력을 확실히 쥐어줄 인구밀집지가 없었음). 이후 또 자연지리적 장벽을 따라 후삼국시대로 다시 분열. 설명이 너무 길어졌는데 결국 경기지방(개성은 엄밀히는 해서지방이
긴 하지만 지리적으로 경기지방이나 다를 바 없)을 중심으로 성립된 고려가 탄생하자 마자 한반도를 통일하고(936년, 삼국시대와 달리 라이벌이 되었어야 할 관서지방도 이미 고려의 영역이라 더 거칠 게 없었음),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는 그냥 정부도 그대로 이어진 연속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한 정권이 한국을 무려 천 년도 넘게 꾸준히, 일관적으로 지배하게 됨. 이것이 한반도에서 중앙정부가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된 경위. 여기서 떠오를 의문점은 상기한 가장 유리한 지형 투 톱 중 하나인 관서지방은 왜 이후로도 경기지방에 대항하지 못했는가? 시도 자체는 있었음. 관서지방의 중심지인 평양은 고려-조선 내내 부수도급의 대우를 받았고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같은 격렬한 시도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강력한 대륙세력인 요, 금, 원, 명, 청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요동지방이라는 훌륭한 방패막이 없는 관서지방은 허구한 날 대륙세력에게 털리는 처지로 전락했고 개성의 지리가 너무 비좁아 각각 부수도였던 평양(서경)으로 천도할까 서울(남경)로 천도할까 간을 보던 고려-조선은 결국 서울로 후퇴하게 됨. 즉 경기지방은 최초로 한국이라는 국체가 갖춰진 936년 이래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잃은 적이 없고 강력한 중앙정부의 형성에 일조하게 됨. 그리고 이런 지리적 환경이 현재의 분단이 왜 하필 경기지방 vs 관서지방이라는 구도로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물론 시작은 외세의 개입이 크긴 했지만 일단 국가로서 꼴은 갖출 유리한 지형은 있어야 하니) 또한 나타내 주고 있음.
여담1. 고구려는 한때 만주의 요충지인 부여+요동+책성과 한반도 북부의 요충지인 관서+해서+함남은 물론이고 한반도 중부에서도 경기+충북+경북 일부까지도 차지하는 데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직후 강력한 대륙세력인 후연과 돌궐(및 후계세력들)의 엄청난 견제를 받았고 마침 오밀조밀한 산지투성이 지형에서 함께 우주방어를 펼친 백제-신라 동맹을 제압하는 데 실패하게 됨. 만약 대륙세력(특히 후연)이 아니었다면 서부전선에 투사될 수밖에 없었던 그 많은 병력을 한반도 남부에 투사할 수 있었을 테니(삼국시대에 유일하게 만 단위를 넘어선 10만 단위까지 동원 가능) 역사가 또 달라지게 되었을 거임.
여담2. 반파국은 전성기에는 호남지방 일부까지 접수하는 데 성공함. 그 세력을 유지하는 데만 성공했다면 한반도 남부의 최강국이 되어 더 복잡한 모습을 보이게 됐을 것이나 역시 양면전선은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백제가 정신차리자마자 다시 양쪽으로 달달 털림.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한반도 남부는 매우 오밀조밀한 산지에다(전남 일대의 경우는 복잡한 다도해 지형 때문에) 온후한 기후로 인한 많은 인구까지 더해져 가장 복잡한 양상을 보여줬음. 후삼국시대에도 예외가 아니라 가장 많은 호족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됨.
여담3. 산지로 가득한 한반도에서도 특히 소백산맥이라는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데다 온후한 기후까지 더해져 관서, 경기에 이어 나름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영남지방은 그 위상을 인정받아 고려시대에도 부수도인 동경이 두어졌고 중앙에 대항한 반란도 꽤 많이 일으켰음(신라부흥운동, 동경민란).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중앙집권화가 더욱 강해지게 되자 그런 저항시도는 사라지게 됨. 그래도 조선시대에도 서인-노론세력이 주류였던 기호(경기+호서)지방과는 달리 독자적인 남인세력이 형성되어 끝까지 지역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등 나름 할 건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