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가 어둡다.
점차 많은 이들이 소속되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웃음 혹은 미소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미소가 사라지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여유의 소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없으니 모두가 "악"하며 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를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에 불과하며 자신에게 여유가 없어지면 동물적인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는 당연하게도 개인의 소속된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보인다.
가장 웃음이 많던 아이들은 사라지고 있고 그런 아이들이 성장한 어른들은 미소를 잃어가고 있다
암울한 미래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을 보고 있으면 나타나는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많은 이들은 체념아닌 체념을 하고 있다.
체념은 곧 여유의 상실로 나타나며 여유의 상실은 미소의 상실로 나타난다.
미소가 없는 이들은 서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으며 한 편의 가면극을 펼쳐댄다.
본래 가면극은 한 편의 시나리오가 끝을 맺으면 완전히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끝없이 가면을 착용하고 살아가게 강요한다.
그러니 모두가 긴장을 한 상태로 "5분 대기조"의 형태로 살아간다.
이 나라에는 여유가 없었기에 인적자원을 갈아마셨고 그에 대한 여파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스스로 배워온 것이 인적자원을 사용하고 찍어내는 것 밖에 없었던 이 사회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불투명한 미래속에서는 조금의 여유, 조금의 미소가 있으면 그래도 서로 바라보면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칼날의 시대를 요구한다.
칼날처럼 살아가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는 미소가 없기에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미소라는 빛이 있어야만 잘 달련된 칼날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지금의 시대는 오히려 어두운 가면속의 세상이다.
이 사회와 현실이 너무나 어둡다.
개소리가 길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빛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미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늙은 사회에서는 어떠한 자정작용도 미소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고통만이 가득한 곳이기에 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중위연령이 갈 때까지 와버린 이 고통으로 가득찬 사회는 희망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니 개인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지켜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여유를 '효율'이라는 단어 아래 모조리 말살해 버리고 나이별로 해야하는 '목표'라는 말장난을 해버리고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달려나간 결과의 말로가 이 나라의 현재 상태이자 앞으로 결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효율이라는 것은 기계한테 적용해야 하는 단어이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게 좋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감정이 있는 살아있는 인간이며 또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벽을 갈망하나 그 끝에는 결국 불완전한 존재로써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여깁니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칼은 손잡이를 잡아야 하지 칼날을 잡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봅니다. 칼날은 원래 잡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전부터 손잡이를 만들어왔는데 이 나라는 칼날이 무섭다고 잡지 않는 이들을 겁박하고 협박하고 있지요. 그 칼날이 무엇인지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승부하라고 말하는 게 모순이지요. 참으로 답답한 곳입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미소를 잃고 눕고 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모순의 한계가 왔지요. 이제 그 모순의 붕괴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는 그 누구도 못막을 겁니다. 이 나라의 운명은 당랑거철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