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한국의 영어 시험이 철저히 독해와 문법 위주이고 말하기, 쓰기를 전혀 교육하지 않으며 듣기의 비중이 작다는 것에 대해서 밑의 사진과 같이 변명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고등학교에서 하는 영어 교육은 논문을 읽기 위한 교육이기 때문에 듣기 말하기 쓰기를 교육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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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외국어를 그리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외국어를 나보다도 더 공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읽기만 공부한다고 실력이 정비례해서 늘지는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운동에 비유하면 이렇다. 축구 선수의 경우에도 축구를 위해서 축구 기술만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상체 웨이트 트레이닝도 한다. 어느 정도 몸의 다른 부위도 단련이 되어야 축구 기술도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어느 정도의 말하기, 듣기, 쓰기의 공부를 같이 해주는 것이 읽기만 주구장창 하는 것보다 더 읽기 실력을 늘리는 데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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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사람들은 뭔가 부당한 전제를 깔고 있다. 당연한 듯이 고등학교의 영어공부 목적이 영어논문인 것과 같이 이야기하는데, 언제부터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목적이 '대학에서 영어 논문을 읽기 위한 것'이 되었나? 내가 알기로는 그런 공적인 지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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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영어 교육이 철저히 읽기 객관식 찍기시험인 이유는 무엇일까? 항상 이유는 간단한 곳에 있다. 바로 교사들의 철저한 편의와 보신주의에 의한 것이다. 외국의 어학원이나 한국의 대학에서 언어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4개를 동시에 교육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지나치게 많아서는 안되고 교사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 한명 한명의 작문을 첨삭하고 그들의 말하기를 교정하면서 수업을 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점수를 평가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한국과 같은 곳에서 구술 시험으로 점수를 매겼다가는 평가 시비가 엄청나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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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교사들이 그냥 평가하기 귀찮고, 책임지기 싫고, 능력은 안되니까 지금과 같은 시험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학생의 숫자가 너무 많고 교사의 역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그나마 이해를 하는데, 현재까지 그런 평가를 하는 것은 한국의 교육이 좋지 않고, 교사들의 보신주의가 심각하다는 증거밖에 안된다. 해외 어학원에서도 한 반에 최대 20명까지 수업을 하는데 한 명의 강사가 20명의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교육을 책임진다. 이제는 한국도 저출산으로 인해 한 반의 규모가 20명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교육도 못한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책임을 '아랫것'들이나 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바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근대교육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영어역시 마찬가지임.. 전설의 영문법교재 성문 영문법의 저자 송성문도 일본서적 참고했다고 말함.. 학교교육 자체가 수능을 통한 학생서열화라서 평가하기 좋은 텍스트 위주의 교육으로 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