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삶은 운이 전부다, 노력은 무의미 하다에 대한 도움이 될 듯 하여 글을 씁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스토아적 삶의 권유(마르코스 바스케스 저자)'라는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모든 것은 크게는 통제하냐, 못하냐 2가지, 세세하게는 부분적 통제까지 3가지에 분류에 의거합니다.
1. 본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
자기 자신의 인식과 행동이 이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몇시에 일어날지,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가 이에 속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대표적인 1번으로 요약하자면 자기 자신의 인식(어떠한 것에 대한 생각)과 행동(어떠한 것에 대한 행동)은 자기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 입이다.
2. 본인이 부분적으로 통제 할 수 있는 것
자기 자신의 인식과 행동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이 이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타인의 의견, 평가, 기대 등이 이에 속하며 타인은 나의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은 완벽하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으며 이는 노력해보아도 결과적으로 효율이 떨어지거나 무용함을 의미합니다.
3. 본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
자신의 인식과 행동에 따라 통제가 가능하나 결과마저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죽을 때까지 건강할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는 노력을 통해 바꿀 수는 있으나 결과는 책임지지 못한다 따라서 중립적인 요소로써 통제하나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따른 사고의 결과에 의하면 인생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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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꽤 인간, 가족 관계로 꽤 고생했다. 초등학교 즈음 손목을 칼로 그었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정신병자였다. 근데 어떤 호구 같은 착한 친구가 말 한마디도 안 하는 내 곁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전화 걸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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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글을 보내주어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 삶을 올린 개시물이 개념글에 간 것과 별개입니다.
인생은 100% 운이 아닙니다. 물론 운이 엄청나게 크며 그에 따른 경험이 중요합니다. 다만 노력함을 통해 바뀔 수 있습니다. 인생이 무조건 바뀐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인식과 행동 뿐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음을 부정해도 결국 한국인인 당신은 한국인으로서 단점도 이점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행동과 인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인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빌어먹을 한국어, 즉 고립어인가요? 오, 축하드려요. 일본어를 배우기 매우 쉽겠군요. 또한 어순이 똑같은 미얀마어나 같은 한자권인 중국어를 좀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라고요? 최근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고 인식이 나쁘지 않고 심지어 여권없이 여행갈 수 있는 나라가 매우 많군요! 물론 미래는 보장 못하지만 지금 당장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군요.
부모가 싫다고요? 오. 그것도 일본에 개호가 문제인 것을 생각해보면 부모와 아무 상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은 축복 일 수도 있군요.
공부를 못했다고요?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는 당신이라면 특정기능 비자를 받기엔 충분하군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것이 천만 다행입니다.
그리고 행동도 바꿀 수 있죠.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2023년 3월에 일본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1달간 외었습니다. 그건 그냥 매일 퇴근하고 1~2시간씩 글을 쓰면서 유튜브를 보면서 발음을 익히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봤습니다. 귀찮아도 일본어로 일기를 썼으며 슬플땐 마음이라는 어플을 이용해서 일본인과 전화를 연결해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일본어로 모든 것을 하자라는 나의 삶을 바꾼 것은 지금에 와서 일본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고 면접을 볼때마다 굉장하네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래도 당신을 바꾸는건 당신밖에 못하지 않겠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던지 일어나서 푸쉬업 10개를 한다던지 그건 개인의 의지에 달린 일이며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의지와 시간이 필요할 뿐 그건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 즉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건 운과 관계없이 당신의 가지는 가능성 입니다.
운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하여 모든 것을 놓아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운은 실제로 모든 것을 지배하나 당신의 의지와 행동마저 지배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렇기에 나온 말이 운명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선택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등의 말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희망은 이런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운은 희망을 만들어주지도 불행을 만들어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 자에게 그건 심판이요 삶의 억까에 불과할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 죽을려고 생각해서 다행이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에게 기대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항상 곁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에 실패해서 다행이다. 그렇기에 나는 해외에 나가서 결혼을 준비할 생각을 했으며 그로인해 일본어를 준비했고 여자친구도 사귀었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주식과 부동산을 포기해서 다행이다. 그때 공부했던 지식이 지금의 나에겐 일본의 영업사원 면접의 기회가 되었고 한국에서 그것으로 성공했다면 짧은 성공을 만끽하고 한국과 함께 침몰했을터니까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실패라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인식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식을 바꾸면 삶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스토아 철학에서 제가 배운 삶의 지혜이고 살아가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삶은 운이 지배합니다. 실제로 나의 의지와 행동을 제외한 모든 어마어마한 것들은 운 이외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교통사고가 나던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욕을 하던 억까를 당하던 그건 나의 의지와 행동에 의한 결과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건 내가 어찌할 바 없는 그냥 사고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지 의지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도 이는 동일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그 새의 세계와 같은 알을 부수기 위해 분투하고 기어코 알을 부수고 나와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일종의 알이며 우리는 이를 부수기 위해 분투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위한 분투는 결국 우리의 의지와 행동일 뿐입니다. 새는 단지 알로써 태어났으며 알이 새에게 있어 세계가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며 새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타락시아가 되기 위한 한 마리의 새이며 삶일 뿐입니다. 세상에 던져진 새는 자기가 선택한 삶은 아니였으나 자기가 선택하여 알을 부수고 나와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개념글 가면 스토아 철학에 대해 좀더 정리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공유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가 많다
맞다. 인생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운이 왔을때 잡을수 있느냐는 평소에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얼마나 준비를 했느냐다. 글쓴이처럼 일본문화를 좋아해서 일본어를 일상생활에서 끈질기게 공부해서 활용한것도 훌륭한 준비지. 나거한의 매트릭스인 '노오력' 과 비슷해 보이겠지만 다르다. 나거한은 노오력을 해서 좆같은 시스템에 들어가 노예처럼 굴리려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체력을 기르고 외국어를 공부한건 본인의 꿈과 목표를 위해 준비하는거다.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남아있으니,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인생사 새옹지마이고 지금의 불행이 오히려 자신을 더 좋은 미래로 이끌어줄지도 모르는데도, 희망을 잃은 사람은 그 미래를 생각치 못한다. 다 잃어도 희망을 지키는 사람에겐 반드시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스토아철학을 알다니..역시 무탈갤은 한국의 유일한 철학갤이야 무탈갤러들에게 로마 오현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철학 황제의 명상록을 들고다니며 자주 읽기를 추천함 특히 종교가 없는 분들에게 큰 지지점이 되 줄 것이라고 생각됨 재능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자신이 수사학이나 시학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신께 감사하고 철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