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있는것을 싫어한다.


일정 개월 수 이상 있는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만큼 싫어함.




거의 처음으로 고백하듯이 약 20줄의 분량으로 간략히 씀.




1. 3살때에 집안은 이혼. 엄마는 도망가고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2. 원인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증세. 상당히 여러번의 폭력과 자학과 욕설 자살 시도 행위.


3. 초등학교~고등학교 떄 내내 엄청난 밤 시간마다의 욕설. 자살협박. 사실상의 정신병자를 아버지로 두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4. 같은 이유로 받은 스트레스를 5살 터울 위에 친 형이 받았고 그 친 형은 나한테 무참하게 폭력 폭언으로 풀었음.


5. 나는 그래서 집안의 설거지나 빨래 청소 밥차리기를 도맡아 했다. 안하면 맞기 때문에.


6. 친척도 그 누구도 보살펴주는 어른 없이 도와주지 않고 바로 잡아 주지 않았음. 개중에서는 어느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외면했다는걸 나는 알았음.

7. 알코올에 찌든 정신병자와 나에게 쌍욕하고 때리는 형 그리고 나 그렇게 세명의 가족이 지냈다.


8. 언제 한번은 너무 극심히 맞아 내 교복은 심하게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교복을 그대로 입고 학교에 걸어감.


9. 사람들은 지나치며 눈을 흘길 뿐 아무도 아무 말 없었다.


10. 성인이 되어 나는 MMA수업을 한달 정도 들었고 5살 터울 형의 입가에 피가 날 정도로 때렸음. 그 때 눕히고 그 자리에서 때려서 죽이려고 했으나 그 장면에서 아버지가 오히려 뒤에서 나를 뜯어 말리고 쟁기를 들어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음.


11. 그 이후 성인기에 나는 모든것을 담아두고 잊어버리려고 했다. 내가 더 잘하려고 했다.

12. 엉망으로 참혹한 아버지의 집을 몇번이나 치우고 청소하고 여행도 다니고 도리어 아버지랑 형에게 돈을 주기도 했었음.


13. 그러나 그 부분은 내가 할 일정량의 역할과 도리에 있어서 그 바운더리 까지만을 하겠다는 천명일 뿐, 내가 착해서가 아니고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님. 그들과 똑같아 지지 않겠다라는 결심 속에서 한 행위를 뿐임.


14. 형은 백수였다. 어느날 엄마를 문득 찾겠다고 하여 형이 엄마를 찾았다.  형이 나더러 엄마를 보겠냐고 물었을때 나는 처음 한번 거절했고 두번째 물어봤을때 그러겠다고 했다.


15. 엄마는 다행히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질질짜며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나이든 엄마로부터 이혼의 뒷 배경을 알게 된 결과 그 당시 아빠는 잘나가는 방송사에서 프로듀서로 있었고, 같은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작가와 바람이 난 상태. 그래서 그 작가를 원망했다고 했다.


16. 자신의 부재동안 무슨일이 일어난지 모르는 엄마는 내가 잘 컸다고 칭찬을 한다. 그러나 이후 어느 일이 있었는지 알게되자 말끝을 흐리는 태도로 "나는 그 여자와 너의 아버지가 잘 보살펴줄줄 알고 그냥 떠났지...." 라고 내게 말을 함.

17. 형은 남들이 보기에도 무참히 또 명백히 망가져버린 30대 중반을 넘긴 중학생의 정신연령을 지닌 전형적인 망가진 사람임.

18. 그러나 자기를 직접 찾은 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 자기가 직접 버리고 그 업보를 직면할 자신이 없어 이제 와서 , 세살때 버린 나를 더러 애착하려고 함.

19. 나는 이 결론을 안다. 결국에는 나는 형과 두 부모를 연민으로 대해야 할 것이라는 강요를 받을것이라는 것을.  




아니. 전혀. 내가 맞은게 분노스러운게 아니다.


수십년의 시간을 주어진 삶에서 그토록 무책임하여서


결국에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심지어 그 무책임을 감당 못한 끝에서


그 짐을 자기 친 부모와, 자기의 친 자식에게 마저 떠넘겨 버리는 그 행태에서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요양원에 버리듯이 한 상태로 알코올에 정신을 못차렸다)



나는 지구가 끝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부모를 용서 할 수 없다.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 겁이 나고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그 용기와 짐을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떠밀기기 했다라는 그 비열함이


지금 내가 이 나이를 먹은 시점에서 훤히 두 눈으로 보고 깨달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는 정말로 짙은 살육이 붉은 색상으로 끈적 거리며 끓어오른다.








근데 그렇게 몇십년이 지난 후 나에게 하는 하소연이라는것이


눈물을 질질 흘리며 자기는 그렇게 될 줄 몰랐데.


알코올 중독에 질려 자기는 도망가 놓고서는.


나는 헛웃음 뿐이 나오지 않는다.




진짜 생각만 해도 둔기를 들고 찾아가서 뇌수가 흐를때까지 무참하게 친아버지 살해하고 싶은데


참고있다.



그래 사회적으로 잘나갔다 라는 그 말 속에서.


내 엄마는 첩으로 생각하고 나는 첩의 자식인 서얼의 집안 새끼들 그러니까 친조부모에게 내팽게치고.


방송사 안에서 만났던 작가는 명망있으니 본처로 삼겠다는 그런 개같은 씨발 심보였던걸까.



나는 숱하게,


머릿속으로


둔기를 들고서 친아버지를 찾아가서


두개골 조각이 깨져서 분홍빛 뇌 조각이 흩어질 때까지


수백번 수천번 머리를 매질 할 상상을 했다.







그들 눈에는 그저 나는 착하기만 한 아들이지.


웃긴건

나더러 주변 사람들이 효자랜다.




그 사람들 중에서 어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책임을 통감하면서 어떤 결심을 하고 행동을 했다라면


이런 생각까지 내가 하지 않았을텐데.




다들 그렇지 못했다.


다들 앞뒤가 안맞는 맥락을 잃어버린 곳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가 피해자인척 방면해볼까 라는 의도가 깔린 말이 아가리 속에서 튀어나올때.


나는 최대한 침착하지만 서도 도저히 감정을 유지 하기가 힘들다.




어떻게 생각하냐?


니들이 만약에 재판장에서 나같은 사람을 재판하는 재판장이라면.




하기사 나는 재판 받고 싶지도 정의를 실현 하거나 하소연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가장 적막한 비극 속에서 있었을때에


날 가장 보란듯이 사회의 돗자리인양 무시하고 만족했던건


어차피 타인이 아니었던가.


안에서 그 어떤 핍박과 방만과 방관이 있다 한들,


그저 겉에 간단한 포장을 지으면 간단하듯이. 테이프와 명칭 하나만 붙여놓으면 간단하듯이





사람들은 나더러.


잘도 미친놈이라고 했지. 미친놈이거나 패륜아거나. 개새끼거나. 아니면 나를 효자라고 했고 아니면 또 나를 똑똑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에 자기가 같이 나눠서 짐을 짊어지겠다는 이야기는


단 한번 조차도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하지 않았다.





옛날 어느 한 순간 내가 가장 무력하고 방관되었던 일방적인 피해자일수밖에 없었던 한 어린 아이었던 때,


그 누구도 못본척 지나치다가.


지금에야 와서 ,


나를 앞에 두고 짐을 떠넘기기 하고 싶었을 뿐


그 누구도 용기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것도 아니고


물질적이고 또 사회적인 실패가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지


새삼스러운척 모르는척 하는 사회를 무표정으로 대면하고 있을 뿐이다.  


더이상 이런식의 비열하고 비겁한 소꿉놀이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지고 싶은 욕구가 짙어진다.




또 언젠가 일이 터진다라면 나는 무언가의 간단할 뿐인 표식어로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겠지


난 당신들 모두가 싫다.


당신들이 나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함으로 연명하며 비겁함으로 서로를 부추기고 비겁함으로 종지부를 찍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