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두 범죄를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1. 한 남성이 치정관계로 상대 여자를 칼로 찔러죽였다.
2. 유명한 고위 정치인 아들이 음주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사용하여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무죄 방면되었다. 음주운전에 인명이나 재산 피해는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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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범죄 중에서 더 심각한 범죄는 무엇이며, 사회적으로 어느 범죄가 영향력이 클까?
당연히 심각하다는 것의 기준을 형량으로 보면 1번이다.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없는 음주운전을 살인보다 더 크게 처벌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후자가 훨씬 더 큰 일에 해당한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며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누구에게보다 큰일이 되기 때문에 말을 조심스럽게 하겠지만, 1번과 같은 형태의 범죄는 지구상 어떤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사회 시스템이 그것을 완전히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오해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설명한다. 분명히 살인은 큰 죄이고 그런 일은 없어져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모두 벌어지고 방지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별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당사자와 개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살인은 무겁게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으로 보자면 분명히 2번 범죄보다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번은 사회의 사법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성원 전체에게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가 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벼운 범죄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사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주는 것은 범죄 그 자체로는 가벼울지 몰라도 그것이 미치는 파장은 굉장하다. 한번 신뢰가 깨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요즘에 툭하면 치정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사건, 혹은 묻지마 살인사건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이슈화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련병, 채상병이 '징집병'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죽음이 민간인의 죽음보다는 가벼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치정 살인이나 묻지마 살인보다(물론 희생자를 모욕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음) 훈련병, 채상병 사망 사건이 훨씬 큰 사건이며, 그 사건의 핵심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과정에 있다.
만약 채상병이나 훈련병이 죽은 것에 대해서 한국군 간부가 제대로 책임을 지고 처벌 프로세스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정말로 의도적인 살인 사건보다는 가벼운 '사고사'로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건에 대한 한국군의 행정 처리로 인해서 한국군의 시스템에 대해서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 살인 사건 이상의 큰 일이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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