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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화로운 중국의 일상 - 항공전 갤러리

폭우속 중국녀 선택은?? 오늘도 평화로운 중국의 일상 [HGTV]https://youtu.be/NkOkexiVF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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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지원군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안개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어 계곡에 매복하였다가 어둠 속에서 피리를 불었다. 그들은 중국의 전통악기인 샤오(簫, 피리의 일종)나 디즈(笛子, 피리의 일종)를 사용했다. 멀리 어둠 속에서 들리는 피리소리는 적군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심리전에 걸려든 적군이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 중국인민지원군은 사방에서 나팔을 불고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매복전, 기습전, 포위전, 유인전, 우회전 같은 다양한 전술로 공격했다. 인해전술(人海戰術)은 중국인민지원군이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상공격 앞에서 공포에 질린 한국군과 미국군이 만들어낸 말이다. 

 

한국 국방부가 1987년에 펴낸 전사자료에 따르면, 한국군은 중국인민지원군의 공격을 받으면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까지 팽개치고 달아났다”고 한다. 미국 육군전사에는 “한국군은 중국의 피리소리 또는 중국인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고 서술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1950년 11월 24일 청천강 작전지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한국군 제2군단을 궤멸시켰다. 한국군 연대장 3명이 생포되었고, 연대장 1명은 전사했으며, 전사자, 실종자, 포로를 합한 인명손실은 전체 병력의 60%에 이르렀다. 

 

1951년 5월 16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벌어진 현리전투에서 중국인민지원군 전투원 100여 명은 한국군이 방어하던 오미재를 점령했다. 곧이어 조선인민군 제5군단, 중국인민지원군 제12군단과 제27군단은 한국군 제3군단 25,000명을 포위했다. 기겁한 한국군 제3군단 군단장은 부군단장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혼자 연락기를 타고 후방으로 도주했다. 한국군 제9사단 사단장도 휘하장병들을 포위망 속에 버리고 도주했다.

 

한국군 군단이 거듭하여 궤멸되는 참상을 보고 경악한 당시 미8군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는 자기 상관 맥아더에게 오합지졸군대의 작전지휘권을 빼앗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 건의를 받아들인 맥아더는 이승만에게 연락하여 한국군이 궤멸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므로 작전지휘권을 자기에게 넘기라고 강박했고, 이승만은 “장군이 요구하신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쓴 치욕의 이양각서를 맥아더에게 보냈다. 그렇게 넘어간 한국군 작전지휘권은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틀어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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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454]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항공전 갤러리

<차례>1. 젤로나야 로샤에서 진행된 비밀회담2. 아직 끝나지 않은 중국의 인민전쟁3. 중국공산당 정치국의 조선출병결정4. 제1기병사단 궤멸시킨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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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25일 양수동, 풍하동 일대에서 한국군 6사단 제2연대 제3대대의 수백 명이 소멸되고 미군 고문도 1명 격살, 1명 사로잡혔는데 그 전투를 치른 중국인민지원군 부대가 바로 118사였다. 지원군 대부대가 압록강을 넘은 건 10월 19일이지만 참전기념일은 양수동전투진행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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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장위화 노병이 시사하는 중국군의 힘 - 항공전 갤러리

9월에 들어와 중국은 백 살 노병 2명을 잃었다. 9월 2일에 별세한 원 난징(南京, 남경)군구 사령원 샹서우쯔(向守志, 향수지, 1917—2017, 사진)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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