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회 기록은 신진서의 17연승

승리와 패배가 반복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5할 안팎의 승률에 머물러선 중간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리가 거듭돼야 1류 대열에 합류한다. 연승은 그래서 모든 승부사들에게 꿈이고 희망이며 목표다. 승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 초일류들의 연승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그들의 엄청난 저력, 찰고무 같은 집념, 지칠 줄 모르는 승부욕에 감탄하며 머리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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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진서(오른쪽)는 세계대회 17연승만에 박정환(왼쪽)에 패해 기록이 중단됐다. 지난 11월 3일 벌어진 삼성화재배 결승 3국 광경이다. '한국기원'




최근 신진서의 세계대회 연승행진이 중단됐다. 지난 11월 2일 열린 2021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 2국서 그때까지 17연승을 질주 중이던 신진서가 박정환에게 패했다. 이 대국은 박정환이 2대1로 역전 우승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비록 마침표는 쩍었지만 17연승은 역대 국제 메이저급 바둑대회서 기록된 최장 연승기록이다.

신진서의 17연승은 2020년 11월 24일 열렸던 제22회 농심배 탕웨이싱(중국)과의 본선 9국이 출발점이었다. 대회별로 정리하면 농심배 및 삼성화재배서 각 5승을 올렸고 춘란배 4승, 잉씨배 2승, LG배 1승 순이다. 이 중 농심배는 한국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과정이었고, 춘란배서 우승했으며, 삼성화재배 및 잉씨배는 결승까지 진출했다. LG배에선 16강전 한 판을 소화한 채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다.

이창호-이세돌은 세계대회서 14연승 마크

국제대회 연승 부문 2위는 14연승으로 이창호와 이세돌이 공동 보유 중이다. 먼저 이창호. 2002년 1월부터 6월까지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14연승을 내달렸다. 그 기간에 한국의 제3회 농심배 우승을 이끌었고, 제1회 CSK배 및 TV아시아 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창호의 연승을 14에 묶은 기사는 중국 창하오였다. 이창호는 14연승 외에도 12연승 한 번(96년 5월~10월), 11연승 두 번(95년 7월~96년 2월, 97년 5월~98년 1월)을 기록했다. 이창호가 세계 메이저 대회 최다우승(17회)이란 금자탑을 쌓기까지는 이런 기록들이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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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훈현(왼쪽)과 이창호는 사제지간이면서도 라이벌이었다. 사진은 2002년 5월 제14회 TV아시아선수권 결승전. 이 판은 2002년 이창호가 기록한 14연승 중 11연승째 판이다.
/한국기원




이세돌의 최장 연승 기록인 14연승은 2005년 1월 제2회 도요타덴소배 우승이 결정된 결승 3국에서 출발했다. 창하오와 1대1에서 맞이했던 판이다. 그 해 8월 제2회 중환배 준결승까지 14연승을 기록한 그는 최철한과의 결승서 패하면서 연승이 멈췄다. 이세돌 역시 2012년 상반기에 국제대회 12연승 기록을 추가, 메이저 14회 우승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밖에 박정환은 12연승(2013.12~2014.2), 조훈현은 11연승(2001.6~2001.7)이 각각 개인 최고 기록이다. 현역 세계 최강자 중 1명으로 꼽히는 중국 커제는 12연승이 국제무대 최장기 연승기록(2015.6~2016.9)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 기록한 12연승 중 삼성화재배서 따낸 승리가 일곱 판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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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 27일 열린 제2회 비씨카드배 결승 3번기 최종 3국. 이세돌(오른쪽)이 중국 창하오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 판은 이세돌이 그해 기록한 12연승의 12번째 승리였다. /한국기원




세계대회로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전체 공식전으로 넓히면 연승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한국 최장 기록은 김인의 40연승이다. 1인자 조남철의 아성을 허물고 새로운 주역으로 탄생하던 1968년(1월~9월) 작성한 기록이다. 그 뒤를 이세돌의 32연승(2000년), 조훈현 30연승(77년)이 잇고 있다. 임선근(84년), 이창호(88년), 신진서(2019년)은 25연승으로 공동 4위에 랭크돼 있다. 박정환의 개인 최장 연승기록은 21연승(2017년)이다.

규정 소급 적용으로 이창호 41연승 삭제

원래 한국 최다 연승기록은 이창호의 41연승(90.2~8)이었다. 하지만 한국기원은 국제대회 초창기 일본서 열린 세계대회를 비공식전으로 분류했었다. 한국기원은 2000년대 들어 방침을 변경, 국제기전도 공식 전적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이를 소급 적용했다. 이창호의 41연승 기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사연이다.

타이틀 결승(도전기 포함)전만 뽑은 기록도 있다. 이 부문 국내 기록 보유자는 조훈현이다. 1975년 6월 제15기 롯데배 최고위전서 우승하면서 시작된 연승 행진은 79년 3월 제14기 패왕전 방어까지 4년 간 23연승으로 이어졌다.

특정 기전의 연승만 계산해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창호는 국제 연승 단체전인 농심배(99년 1회~2005년 6회)에서 30연승을 달리다가 7회 대회 최종국에서 일본 요다 노리모토에게 발목을 잡혔다. 조훈현의 박카스배 22연승(87년 5기~91년 8기)와 이창호의 제왕전 22연승(90년 9기~93년 11기) 대기록은 각각 이창호, 유창혁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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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성진(왼쪽)은 바둑리그에서 두 시즌 합해 21연승을 질주, 신진서의 이 부문 최장기록(22연승)을 위협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동윤 9단으로 원성진의 19연승째에 해당한다. /한국기원




국가연승전 최다 기록은 진로배 서봉수의 9연승

한 중 일 3국서 각 5명씩이 나와 겨루는 농심배는 국가대항 연승전으로 인기가 높다. 과거 SBS 창사기념 대회가 효시였고, 진로배와 정관장배(여자) 등을 거쳐 이어져왔다. 이 방식에서 발생 가능한 한 대회 최대 연승 수는 10승이다. 첫 타자로 나와 양 팀 5명, 총 10명을 쓸어버리고 팀 우승을 확정 시켰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숫자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출현하지 않았다.

이 ‘농심배 방식’ 연승전의 역대 최장 기록은 9연승이다. 제5회 진로배 때 서봉수가 한국팀 2번 주자로 등판, 일본과 중국 기사 9명을 모두 따돌리고 마지막 진로배를 장식했다. 그 뒤로 7연승 기사가 3번 나왔다. 판팅위가 2016년 제18회 대회와 2018년 20회 대회 때 2번 기록했고, 2019년 21회 때 양딩신이 또 한 번 7연승을 질주했다. 2개 팀 간 연승방식 대회 중엔 여성 대 남성 시니어 대결장인 지지옥션배가 대표적이다. 이 대회에선 제10회(2016년 8월 8일) 때 서봉수가 거둔 9연승이 최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에 오유진에게 덜미를 잡혔다.

‘여제’ 최정, 여자기사 상대 57연승 대기록

팀 리그인 한국바둑리그 최장 연승 기록은 누구의 몇 승일까. 신진서가 2019년 9월 27일부터 2020년 3월 7일 사이 작성한 22연승이다. 시즌 동안 이어오던 연승이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서 신민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2위는 원성진. 2020~2021 시즌 17전 전승을 마크, 전년도 막판 성적까지 합쳐 21연승을 기록했다. 원성진의 연승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어서, 신진서의 22연승을 뛰어넘는 새 기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정환의 바둑리그 최장 연승 기록은 21연승(2014년~20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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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기사들을 상대로 57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정(왼쪽). 그러나 2020 여자바둑리그 김채영(오른쪽)과의 대국서 패해 기록을 더 이상 연장하지는 못했다. /한국기원




끝으로 여자바둑계의 ‘군계일학’으로 불리는 최정의 연승을 알아보자. 25세의 이 여전사는 여자 기사들만을 상대로 57연승이란 대기록을 지니고 있다. 2018년 10월 11일 이슬아에게 이긴 판(23회 여자국수전 결승 3번기 2국)을 신호탄으로 2020년 7월 30일 여자바둑리그서 김채영에게 패하기까지 2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작성한 기록이다. 당초 56연승으로 발표됐으나 아마추어와의 대국도 공식 대국으로 인정키로 규정이 바뀌면서 1승이 늘었다(2018년 11월 2회 여자기성전 4강전 이루비에 승리).

바둑은 ‘기록의 경기’로 일컬어지는 프로야구 등과 비교하면 너무도 기록 자료가 부족한 게임이다. 숫자와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닌 종목 같은데 막상 기록 부문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연승은 다승, 승률과 함께 바둑계의 소중한 기록 자산이다. 프로기사에 대한 평가 자료로, 더 흥미로운 바둑게임을 위한 기초 데이터로 연승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더 흥미롭고 의미 깊은 연승 관련 통계가 계속 쏟아졌으면 좋겠다




한줄요약 : 최정, 여자기사 상대
57연승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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