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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왕한년 “천원은 태극 자리 … 1착의 가치는 논할 수 없다”

중앙선데이 2014.09.05 23:15


바둑이란 무엇일까? 고래(古來)로부터의 질문이다. 

만약 바둑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어떻게 두어야 할지도 알 것이다. 


19세기 말 ‘기국해(碁局解)’

무슨 내용일까. 절기(節氣)와 마방진 같은 숫자, 주역, 간지(干支), 병법 … 이런저런 것들이 뒤섞였다. 

여러 가지 다른 체계를 잡다하게 섞어서 바둑의 절대적인 답을 찾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체계는 쉽게 하나로 모아질 수 없다. 모으면 오류가 도처에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도 해석 못했다. 정신도 초점도 없는 글이다.


명말 청초 왕한년(汪漢年)은 국수(國手)였다. 그는 첫 수를 천원에 즐겨 두었다. 
“천원은 태극(太極)의 자리. 태극은 출발점이니 천원 1착은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문학의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원(元)은 시작”이라 했다.

18세기 일본 최초의 역인 정향력(貞享曆)을 만든
천문학자 야스이 산테쓰(安井算哲·1639~1715)는 바둑에도 일류였다. 
그는 천문(天文)의 이치가 반상에도 살아 있으리라 가정했다. 
1670년 본인방 도사쿠(道策·1645~1702)에게 천원 1착으로 도전했다.(기보)

당시 많은 기사들이 천원에 첫 수를 두곤 했다. 
모두가 천문의 이치를 기대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실험 정신이 왕성했다. 
천문은 매혹적인 관념이었다. 바둑의 기원설(起源說) 중 하나가 천문설(天文說)이다. 
천문 관측 도구로부터 바둑이 왔다는 것이다. 

195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왕두현(望都懸) 유(劉)장군의 묘(墓)에서 출토된 석제(石製) 바둑판. 
밤하늘 닮은 중국 출토 석제 바둑판. 현대와 달리 17줄 바둑판이다.
늦어도 당나라(618~907) 때엔 바둑판이 19줄이 됐다.


1929년 여름 중국의 천재 우칭위안(吳淸源·1914~)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75) 5단과의 대국에서 
천원에 1착을 두었다. 역사상 첫 번째 흉내 바둑이었다.
천원 1착 이후 63수까지 기타니를 따라 두었다. 

중국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바둑엔 병법의 이치가 살아 있다고 보았다. 
왕한년의 ‘천원=태극’설은 바둑의 자유와 모순된 것이었다. 
만약 제1착을 천원으로 정해놓는다면 다른 자리는 따라서 종속될 수밖에 없다. 
1착 이후 모든 착수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력을 가진다. 사고를 제한한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천원 1착이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산테쓰는 ‘천원=북두’였다. 사고는 굳어지고 유연성은 사라진다. 당연히 실패한다. 
산테쓰의 실험은 실패했다. 그는 다시는 천원에 1착을 두지 않았으며 천문학자의 길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우칭위안의 천원 1착은 성공이었다.
(흉내바둑을 통해서) 덤이 없다면 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증거가 됐다. 
1940년대 덤의 채택에 논리적인 근거가 됐다. 

도가(道家) 철학에서 태극은 신화에서의 천지창조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우주적 질서를 상징한다. 
바둑 기사는 철학가가 아니다. 
실력 13단으로 불린 도사쿠가 남긴 글에서도 신비나 어려운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전부다. 
“상대의 세(勢)를 갈라 두어라.” “끊기면 문제 되나니 조심하라.”

왕한년과 산테쓰는 바둑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 Levi-Strauss·1908~2009)는
“인간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무질서는 참지 못한다”고 했다. 

질서를 찾는 방법으로 원시인들이 발견한 것은 토테미즘(totemism)이었다. 
동·식물 등 자연을 이용해서 세상을 분류하고 질서를 수립했다. 
오행설(五行說)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유사와 대응, 매개항을 이용한 분류법을 사용해 체계를 세운 것이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도 그런 것이다.
12간지도, MBTI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분류는 매혹적이다. 이미지 하나로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정치도 그렇다. ‘음모론’에 갇히면 세상 모든 것을 ‘음모’ 틀 속에서 설명한다. 
단순하지만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바둑은 태극으로 양과 음으로 되어 있고 양은 흑 음은 백인 것인가?
4귀는 4계절이며 중앙은 태양 자리인 것일까? 천자만이 첫수를 천원에 두는 것인가?

인생 유한한데, 대체 얼마나 생각해야 제대로 알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