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사와 리나.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바둑 명문가의 손녀로서, 일본 여자 바둑을 대표하는 기사로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명국을 남겨줌에 감사함을 표한다.
후지사와 히데유키 藤沢秀行 | Hideyuki Fujisawa 등택수행(등나무 연못에서 빼어난 행보)
본명은 후지사와 타모츠(保)였으나 후에 秀行으로 개명. (1925~2009, 향년 83세)
'秀'자는 본인방(혼인보) 가문의 후계자만 쓰던 글자로, 그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특징: 일본 바둑계의 거목으로, 매우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바둑을 두어 '슈코 선생님'으로 존경받았습니다.
秀行(슈코/히데유키), 秀(빼어날 수)와 行(다닐 행)을 사용하여 '빼어난 행보'라는 뜻을 가지며,
바둑계에서는 그의 뛰어난 재능과 기풍을 상징합니다.
木谷(기타니)이 치훈에게 물었다. “화점의 약점이 무엇인가?”
“三三입니다.”
武宮(다께미야)에게 물었다. “화점의 약점이 무엇인가?”
“五五입니다.”
藤沢秀行 : 나는 1년에 네 판만 이기면 된다.
아들 후지사와 가즈나리
손녀 후지사와 리나
조카 후지사와 호사이
1977년 제1회 (대)기성전에서 하시모토 우타로를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가토 마사오, 이시다 요시오, 린하이펑, 오타케 히데오 등을 물리치고 6연패에 성공해
60세 이상 혹은 은퇴 후에 명예 기성(名誉棋聖) 칭호를 쓸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됐다
기성전은 현재 일본 서열 1위 기전으로, 일본의 바둑계는 기전 서열이 상금순에 따라 엄격하게 정리되어 있다.
2026년 현재 일본 7대 기전 중 우승 상금 1위 기전은 기성전(우승 상금 4300만엔)이고, 2위는 명인전(3000만 엔)이다.
1983년 제7회 기성전에서 조치훈에게 3연승 후 4연패하며 기성 타이틀을 잃었다.
1988년 제1회 응씨배에 출전해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섭위평과 겨뤄서 2판 모두 반집패했다.
당시 나이가 63세로 나이 제한 없는 세계 대회 4강 이상 진출자 중에서는 최고령이었고,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제40회 왕좌전에서 고바야시 고이치를 상대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면서 사상 최고령(67세) 타이틀 방어 기록을 세웠다.
두터운 바둑을 가장 잘 안다고 평가받았다. 두터움을 이용하여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이는 당시 일본 바둑의 주류 기풍하고 반대였으며 이러한 호쾌한 바둑으로 골수팬들이 많았다.
세부적인 그림보단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는데, 이처럼 무모하고 공격적인 기풍을 보며
후지사와의 스승은 "이놈의 바둑은 통나무를 휘두르는 것 같은데!"라고 평했다.
'초반 50수까지는 일본 제일' 이라고 부를 정도로 포석에 매우 강했으며,
조훈현의 스승 중의 한 명으로 알려졌다.
조훈현이 세고에 겐사쿠 밑에서 바둑을 수학하던 중 후지사와의 사무실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조훈현과의 대국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챈 것이 계기.
세고에 겐사쿠 휘하에서 바둑을 수학하면서도 틈틈이 후지사와의 연구회에 참가하는 등
가르침을 받았으며 세고에 겐사쿠를 정신적인 스승, 후지사와를 바둑판 위의 스승이라 표현했다.
어느날 "훈현이가 보고 싶다"며 위스키 한 병만 들고 불쑥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술을 못하는 조훈현은 물을, 후지사와 선생은 술을 달달하게 드셨다고 한다(...).
그러고서 "네 바둑이 썩었나 보러 왔는데 안 썩어서 다행이다. 돌아간다."라고 하고 갔다고 한다
세고에 겐사쿠가 고고하고 엄격한 성격이었다면, 후지사와는 상당히 호쾌하고 괴짜스러운 스타일.
엄청나게 술과 여자와 도박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그의 대국료와 우승 상금은 대부분 유흥비에 사용되었다.
"우리가 사나이라면 이런 구멍은 응당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xx가 아니라 00라면 마땅히 막아야지요!" 라고 했다고.(...)
덩샤오핑을 만났을 때도 술에 취해서 "보지를 중국어로 뭐라고 하느냐?" 라고 끈질기게 물어보다가 회견이 중지되었다.
=> 정답 屄(bī)라 한다.
제1회 응씨배 4강에 조훈현과 함께 올랐을 때는 "조훈현이 최강이다. 우승은 그의 몫이다.
아마도 나와 결승전에서 만나지 않을까 싶다."며 위트 있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이창호 九단이 제자의 제자 그러니까 손제자라는 이유로
1994년 후지쓰배에서 자신을 이긴 이후 친히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기기 위한 바둑에 앞서 자기 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둬야 한다."하고 덕담을 써준 이 편지가
이창호에게도 고맙고 인상 깊었는지 자서전 <부득탐승>에 전문을 실어 놓기도 했다.
편지 내용은 당시 이창호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념하는 월간바둑 6월호에도 실렸다.
후지사와는 기풍만큼이나 여성관계도 꽤나 화려했는데, 내연녀의 집에 들어가 3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조훈현 九단이 방송에서 밝히기로는, 슈코를 만나러 갔을 때 집에서 양 옆에 여자를 하나씩 끼고 앉아 맞이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다섯째 아들 후지사와 카즈나리도 프로 바둑 기사다. 바둑 기사로 활동하는 한편
신주쿠 어린이 바둑 교실과 프로 기사 지망생들을 위한 천풍도장(天豊道場)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조카 후지사와 호사이(1919~1992)도 프로 바둑 기사다. 일본 바둑 사상 최초의 九단으로 승단한 기사이다.
손녀 후지사와 리나는 2010년 4월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11세 6개월)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2010년대 후반에는 일본 여류 바둑계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여류 기사로 성장했다.
조치훈 九단이 보유하고 있었던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11세 9개월)을 경신했다.
그 후 2019년에 나카무라 스미레가 10세 0개월에 입단하며 후지사와 리나의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을 경신했다.
후지사와 리나의 기풍은 두터움을 중시하는 호쾌하고 화려한 기풍의 할아버지와 달리 실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리나는 할아버지와 한 판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할아버지의 두터운 기풍을 조금 배웠다면 대국이 더 팽팽하지 않았을까?
김은지의 대국은 명국이 많다.
치터를 찬양하는 그 열정으로 그녀의 수를 배워서 본인 대국에 써먹어야 할 것이다.
한국 바둑계에서도 후지사와 가문 같은 게 필요하다.
박하민 - 김채영의 자녀 중에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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