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daehee/27


나는 방과 후 수업을 두 개를 듣게 됐다. 

월수금은 바둑, 화목은 컴퓨터.

그렇게 2학년부터 5학년, 전학 가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바둑을 배웠다.     


늘 몇 명 안 남는 교실, 나무 냄새가 배어 있는 바둑판, 그리고 60은 넘으셨던 선생님.

나는 혼자 남아서 바둑책을 들여다보고 선생님과 접바둑을 뒀다.  

선생님은 늘 사활 문제를 내주셨다 .나는 그게 좋았다.


사활.

돌의 삶과 죽음.

이 돌이 살 수 있는지, 아니면 결국 죽는지. 

그걸 끝까지 따지는 문제.


나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집에 가서

공책에 다시 바둑판을 그려놓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렇게도 둬보고, 저렇게도 둬보고.

한 수만 달라져도 살던 돌이 죽고,

죽은 줄 알았던 돌이 살아났다.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부터 이미 연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가 막다른 길인지, 어디가 살아나는 길인지.    


몇 수가 지나자 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가 이어지고, 어디가 끊기고, 어디를 건드리면 판 전체가 숨을 못 쉬는지.         


사활을 오래 본 사람은 판을 읽는 감각이 몸에 남는다.

어디를 살려야 하는지, 어디를 버려야 전체가 사는지.

그 판단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건물주는 “너 임마, 나중에 다시 한 판 붙자.” 하면서 현금 5억을 가져왔다.


“잃을 것도 없는 놈인데 한번 해보는 거죠.”         

그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3년 동안 대표님이 꺼려하던 현장은 거의 다 내 몫이 됐다.         

남들이 피하는 현장.

골조 정밀도가 민감한 곳, 기초 오차 하나가 위로 다 올라가는 곳,

철물 하나 틀어지면 뒤 공정이 줄줄이 무너지는 곳.         

건축은 실수가 곧 돈이다.         


‘지금 그냥 가면 편하다.’ ‘근데 이거 위에서 틀어지면 그때는 더 크게 깨진다.’         

그날 결국 다시 확인하고, 다시 수정하고, 다시 맞췄다.         

시간도 더 들고, 사람도 더 들어가고, 괜히 예민하다는 말도 들었다.         

근데 판은 살았다.    


생각해 보면 그건 바둑이랑 똑같았다.         

한 수 잘못 두면 판이 죽는다.        

근데 지금 한 수 바로잡으면 전체가 살아난다.         

나는 점점 사활 같은 인생에서 활로를 찾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