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칼럼-鬼馬少女 위즈잉 이야기. 귀신의 수를 둔다는 소녀. 2014-03-26

+ 중국 여자1위 위즈잉(17)은 어릴 때부터 당찬 여걸풍모를 지녔다.


얼마 전 중국 신인왕전에서 여자선수 위즈잉(17)이 '95후'의 대표 리친청(16)을 물리치고 

사상 첫 여자 신인왕에 올랐다고 한다.

여자 신인왕은 한국 일본 중국에서도 일찍이 전례가 없던 일. 


2011년 한국여자바둑계는 십수 년간 철옹성을 쌓았던 루이나이웨이가 느닷없이 중국으로 돌아가자, 

여자바둑계는 갑자기 공동화현상이 생길 줄 알았다. 

절정고수 루이만 없으면 힘을 더 쓸 줄 알았던

박지은, 조혜연, 이민진 등 '언니트로이카' 중에서 득세할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15세 '연승소녀' 최정이 기대주로 떠올랐다.


필자가 최정보다 한살이 어린 위즈잉을 처음 본 것은 2012년 1월 한중교류전 때였다. 

당시만 해도 15세 최정보다 더 어린 여자기사가 중국 국가대표로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중국 측에 꼭 위즈잉과 최정을 한판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 대국을 구경했는데, 결과는 최정의 패배했다. 

당시 최정은 위즈잉을 제외하곤 중국 여자국가대표에게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다. 


그날 밤 한국 팀은 회식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위즈잉을 비롯해

렌샤오, 당이페이, 랴오싱원 등 4명의 중국기사도 초청해 같이 식사를 했다. 

당시 무명에 가깝던 당이페이(이후 BC카드배 준우승)가 술자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한국 40명에 중국 4명으로 10:1의 술싸움인데, 얼추 비슷한 형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거기엔 당이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술꾼이 혼자 맥주 30병에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으니,

순진한 한국선수들의 기가 질려 버렸다. 


그런데 당이페이보다도 더 히트 친 안주가 있었다. 그게 바로 14세 소녀 위즈잉이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맥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맨 끝에서 조용히 밥 먹고 있는 막내 이동훈에게 다가가 잔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속칭 '러브 샷'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13세 이동훈은 그게 뭔 뜻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리는 상황.

위즈잉이 당돌하다는 얘기는 이때부터 돌기 시작했다. 


예전에 흑마(黑馬 헤이마)라는 말이 궁금했는데 '다크호스'를 뜻한다고 했다. 

같은 의미로 귀마소녀(鬼馬少女)라는 단어는 홍콩과 대만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영민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바로 97년생 중국 최초의 여자신인왕 위즈잉에게 주어진 딱 어울리는 닉네임이었다.


2014년 농심배에선 첫 우승을 박정환이 중국의 스웨에게 넘겨주었다. 

중국의 많은 기자들은 상하이를 떠나지 않았다. 

더 큰 뉴스거리가 있었기 때문인데, 농심배 이튿날 바로 상하이에서 

제21회 건교배 신인왕전 결승3번기가 있었던 것.


결승전 주인공은 양딩신, 셰얼하오와 함께 98년생 중국 3대천재라 불리는 

리친청과 '귀마소녀' 97년생 여자국가대표 에이스 위즈잉.


1국은 리친청이 중반 이후 난조를 보이며 위즈잉 승리. 2국은 리친청의 완승. 

3국 최종국은 위즈잉의 믿을 수 없는 역전극으로 끝났다. 


남녀가 공히 같은 무대에서 겨루는 종목은 바둑이 유일하다. 

그러나 남자에 비해 약간 여자선수가 약하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일 통 털어서 남녀 공히 출전한 타이틀전에서 정상에 오른 기사는 

루이나이웨이가 한국의 국수에 오른 이후 위즈잉이 처음이다. 



그 오랜 시간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위즈잉의 꾸준함에 놀라고

그 기재에 다시 탄복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최 정이 있다!


+ 2012년 황룡사쌍등배에서 만난 최정(승)-위즈잉. 

위즈잉은 패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초창기~2021년 이전: 위즈잉 8단이 초반에 '최정 천적'으로 불릴 만큼 앞서 나갔다. 

2021년 오청원배: 결승 3번기에서 최정 9단이 역전 우승을 거두며 19승 19패 동률을 만들었습니다.



둘다 각국의 대표하는 여기사로서 오랜 세월을 비껴냈다. 

노익장을 어느 쪽이 과시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