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기보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컴퓨터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음
고로 경험이 최고 중요한 시기임. (참고로 이런 얘기하면 틀딱이라고 할거지만 난 90년대생임. 머 이것도 틀딱이면 할말없고)
실제 어린애들이 바둑 한판 두려면 무조건 기원 가거나 동네 어른들하고 둬야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지
그래서 일본의 한 기성은 바둑은 무조건 40대는 되어야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까지 함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
그런데 난데없이 이창호가 10대때 휩쓸고 다닌거임.
그 당시 4~50대 기사가 많아서 빈집이라고들 하는데 일단 10대 20대는 아예 그 4~50대랑은 게임 자체가 되질 않았음
왜냐. 경험이 적으니까 도저히 잡을수가 없는 거임. 왜 경험이 적으냐 컴퓨터도 없고 바둑 둘때가 기원밖에 없는데 경험이 생길수가 없지 .
책도 일본어 책이 대다수였고 한국어 책으로 된 것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당연히 3~50대가 최전성기인 시절임.
그런데 그 페러다임을 바꾼게 이창호라는 이야기지. 페러다임 혁명이라고 볼수 있음
46살 조훈현한테 춘란배 번기 결승 탈탈 털린 24살 이창호 패러다임?
당시 바둑판 프로 기사들 모두가 인정한걸 왜 너만 부정함?
누가보면 20대에 전성기 찍은 사람이 없는줄? 세계대회 없던 시절에도 린하이펑 20대에 날라다녔는데??
이창호는 중학교때부터 날라다님. 나는 이창호 대변인 아닌데 그 시절 프로기사들이 인정한거라니까 이건.
당시 20대에 전성기인 사람 별로 없었어. 이건 김성룡도 한 말이야. 당시에는 3~40대가 주류였지 20대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음. 실제 프로기사가 한말임
아 그래서 아예 없었냐고? 린하이펑 있었다니까?? 그리고 패러다임 창시할거면 46살 조훈현 정도는 이겨줘야지 22살이나 차이나는데 결승에서 왜 번기로 털림??
여자가 세계대회 결승 진출하는 개빈집보단 그때가 더 세지 ㅋ
바둑수준이 낮음 어렵게 생각할게 없음 정보와 기회를 소수가 독점한 까닭
패러다임이란 말을 아무데나 갖다붙이네
이창호 페러다임 맞는데? 프로기사들 다 인정함
끝내기 메타 만들어낸게 이창호인데 이게 패러다임이 아님 뭐임?
그러면 조훈현은 88년(35세)부터 2002년(49세)까지 우승했고, 창호는 92년(17세)부터 2004년(29세)까지 우승했다. 무려 22살 차이나는 기사들과 경쟁했다. 지금으로 치면 진서와 현재의 창호하고 경쟁한다고하면 무슨 생각이 드냐.
그때의 조훈현 이창호 와 지금의 이창호 신진서는 다르지. 이걸 꼭 설명 해야 되냐? 설명 해줘? 존나 귀찮네. 걍 척하면 알아들어라. 당시엔 웬만한 집에 컴퓨터도 없을 시기라니까 그러네
그때의 조훈현도 대단한건 맞지. 근데 지금 시대랑은 비교를 하면 안된다는 거지/.
아니 조훈현집에서 바둑책 다 섭력했는데 뭔 정보의 부재를 논하냐.
기회와 인재의 부재
이게맞지 아예 내제자로 들어가서 공부했잖아
바둑수준이 낮음 어렵게 생각할게 없음 정보와 기회를 소수가 독점한 까닭으로 창호의 훌륭한 스승의 조기교육과 낮은 인프라로 독점가능
서봉수나 유창혁은 신문기보로 공부했다고 19세에 입단해서 세계대회6번 그랜드슬램한 유창혁이 창호보다 더 대단해보임
지랄한다 ㅋㅋㅋㅋ - dc App
한국책 구하기 힘들었다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