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세계를 제패했던 서봉수 9단은 이렇게 대답했다.
“바둑이란 나무 판에 바둑돌을 놓는 것이다.”
궤변 같지만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답변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바둑이 인류가 고안한 게임 중 가장 오랜 기간 살아남은 놀이(학문은 놀이에서 비롯됐다)라는 걸 아시는지.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고 도대체 어떠한 매력이 있기에 오늘날까지 당당히 살아남았을까.
바둑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사(正史)에 남아있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렇지만 기원전 24세기경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왕자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요순 창시설’을 대표적인 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래 기록이 바둑이 4,5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말할 때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근거다.
▶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그것을 잘 했다)’ - 『박물지(博物志)』
▶ ‘요순이교우자야(堯舜以敎愚子也, 요와 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을 가르쳤다)’ - 『중흥서(中興書)』
① 요순 창시설
예수님이 탄생하기 2400여년 전쯤에 살았다는 요와 순, 두 임금은 정치를 잘해 성군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두 임금의 시대는 중국의 고대왕조 창세기신화의 이야기다. 신뢰할만한 자료로써 이야기하는 역사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게 있으니 대신한다.
바둑을 만들었다고 주로 이야기 되는 인물은 중국 전설상의 성왕(聖王)인 요(堯)임금이다. 중국의 장화(張華, 232-300)가 쓴 『박물지(博物志)』에 나온다는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고, 단주가 그것을 잘 했다)”가 요임금 창제설의 근거이다.
그러나 『박물지』는 일종의 ‘지괴소설(志怪小說, 괴상한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초자연적이며 불가사의한 것을 다룬 글)’로서 그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3세기에 저술된 『박물지』가 모두 망실된 상황에서 현존하는 『박물지』의 판본 중 바둑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은 모두 청나라 말기나 중화민국 초기에 수집되고 출판된 것들이어서 문헌 자체의 신빙성도 매우 떨어진다. - 네이버캐스트
‘요순 창시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증명할 증거가 딱히 없다고는 해도 그렇지 않다고 딱부러지게 말할 반박자료 또한 없다. 요순 창시설을 바둑의 기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그런데 바둑이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역사적인 사실(史實)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보다 ‘왜?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에 주목하고 연구한 프로기사가 있다. 살아있을 때 이미 ‘기성(棋聖)’으로 존경받았던 우 칭위엔(吳淸源) 9단이다.
② 천체도구설
우 칭위엔 9단은 바둑의 기원을 요순시대보다 더 앞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요(堯)임금이 아들(왕자) 단주(丹朱)와 순(舜)임금이 왕자 상균(商均)의 어리석음을 바둑으로 깨쳐주었다는 말에 주목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때 “바둑은 원래 천체를 관찰하던 도구였는데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바둑으로 변형된 것”이라는 이른바 ‘천체도구설’을 주장했다.
원래 하늘의 별자리를 기록하던 기구가 바둑판이었으며 이것으로 천문(天文)을 살피고 역(易)을 따졌을 것이라고 보고, 따라서 요순임금이 왕자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는 기록은 곧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제왕수업을 뜻한다는 논리를 편다. 고대시대 지도자(왕)가 정치와 종교를 모두 관장하던 사실을 헤아린다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주장이다.
![[522033]40317286_m.jpg](/media?src=http://photo.cyberoro.com/photo/201608/%255B522033%255D40317286_m.jpg&board=baduk&pid=874240)
고대 농경시대에서 임금이 해야하는 주요 역할은 씨를 뿌려야 하는 시기와 곡식을 거두는 시기를 정확히 헤아려 백성에게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먹을 것을 장만, 생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을까). 태양력과 태음력이 미처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농사를 위한 절기 예측은 별자리를 관측하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가능했다. 말하자면 천체 별자리의 움직임을 기록하던 도구가 바둑판이었다는 거다. 그 모든 지식(노하우)과 기술(방법)을 다음 임금이 될 왕자에게 전수한 수업이 ‘바둑으로 어리석음을 깨치게 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왕자들에게 바둑을 가르쳤겠는가.
바둑의 기원을 ‘천체도구설’로 보는 우 칭위엔의 주장은 또 아래와 같은 대목으로도 설득력을 더한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 줄이 각 19줄씩 있고, 19×19=361, 바둑돌을 놓을 수 있는 교차점이 361개 있다. 해서 바둑을 ‘361로(路)’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년 음력의 날수와 비슷하다. 고대 17줄 바둑판을 쓸 때에도 바둑알은 흑백 180개씩 360개로 지정해 요즘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세상이 낮과 밤, 음과 양의 반반으로 조화를 이루는 이치를 담은 것이고, 또한 바둑판의 사각(4면)을 봄여름가을겨울(春夏秋冬)이라 말하는 것, 바둑판 사각 끝선으로 빙 둘러간 바깥점이 72로인 것도 1년 72절후를 상징하는 것이라 받아들인다.
천체를 암시하는 바둑용어도 적잖다. 대표적으로 바둑판의 한가운데 점을 하늘의 중앙을 뜻하는 ‘천원(天元)’으로 부른다든지, 사방으로 돌아가며 찍혀 있는 8개의 굵은 점을 우리나라에서는 꽃무니를 닮았다 하여 화점(花點)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별을 뜻하는 ‘성(星)’으로 표현하는 점도 그렇다.
어딘가 우주를 담은 축소판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바둑을 일컬어 춘하추동 365일의 음양오행의 이치가 담긴 우주의 축소판 또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말하는 걸 한갓 내 논에 물대기식 해몽이라 무시할 것은 아니다. 명지대학교가 1997년 세계 최초로 바둑학과를 만들어 바둑을 어엿한 학문의 한 분야로 천명한 것도 충분히 근거 있는 행보이다.
③ 남방 전래설
바둑에 대한 기록이 우리나라의 역사책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인데, 이로 미루어 한국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바둑은 백제를 통해 일본으로 다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바둑이 중국 요순시대에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북방전파론과 달리 티베트나 인도 지방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남방전파론도 제기되고 있다.
최남선은 바둑에 앞선 표기였던 ‘바독’이 돌, 방위, 옥석, 이정표 따위를 가리키는 인도네시아말 바투(batu)에서 나왔다고 주장한 바 있고, 바둑서지학자 안영이도 광복 전후까지 두어진 우리나라 순장바둑이 티베트 시킴왕국의 17줄 바둑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로 미루어 남방(티베트나 인도 등) → 중국 → 한국, 일본 과정을 거쳤거나,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다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고대중국은 땅의 경계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 우리나라가 바둑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쇼기도 막룩 영향을받앗는데 태국에만잇으니 태국 영향을 받앗갯지 그럼머 바다로 들어왓을수도잇갯저 글고 바둑이 우리말 기원을 알수가업는거 보면 외국어유래일수도잇을듯?
서봉수의 저 말은 무시해도 좋을 말이다. 무슨 위인이나 된다고 지가 평생 동안 둔 바둑을 가리켜 단순히 돌놓는 게임이라고 치부하는지 ㅉㅉ 서봉수가 바둑 매너나 기타 태도 등을 보았을 때 존경받을만한지는 의문이다. 바둑 실력은 별개로 하고 - dc App
맞말햇는데 왜욕
지가 평생을 두고 바치는 바둑을 그리 단순히 치부하는데 좋을 리가.. ㅋㅋ 서봉수는 원래 바둑철학은 없는 인물이다. 조훈현 사범님과 둔 바둑에서 계가 후에 지가 둔 돌도 안 치우고 나오는 인물인데 할 말 다 했지 ㅉㅉ 만약에 테니스 프로가 지가 하는 테니스를 그저 라켓에 공 맞혀서 넘기는 거라고 인터뷰하면 과연 오오~!! 할까? 단순히 바둑을 잘 둔다고 해서 그가 바둑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생각도 갖고 있을 거라 여기면 착각이지ㅋㅋ 적어도 바둑을 업으로 하는 이라면 팬을 생각하면 일부러라도 그리 인터뷰하면 안 되지... ㅋㅋ 이세돌 사범님의 평소 인터뷰하고 비교하면 쉽다 ㅎㅎ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