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은 원목의 재질과 결의 모양, 건조의 상태, 줄의 종류와 칠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재질은 탄력성과 색상이 뛰어난 비자나무를 최상급으로 꼽는데 은행나무, 향백나무(엘로시다), 피나무, 신비자를 이에 버금가는 고급재목으로 친다. 아무래도 값이 비싸다. 값싼 보급용으로는 주로 동남아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아가지스(AGATHIS)와 한대지방에서 수입해 만드는 스프러스 판이 쓰인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판 대부분이 아가티스 재목이다.
나무는 건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갈라지기 십상이다. 하다못해 보급용 아가티스 원목도 1,200일을 건조시켜야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하니 바둑판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공이 드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명품 바둑판은 나무의 나이가 1,000살은 먹어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것이란 얘기가 여기서 나온다. 살아있는 나무를 베어서는 안 나오고 자연사하는 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걸 인간은 그저 발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바둑줄의 종류에는 옻줄과 먹줄이 일반적이다. 대중적인 먹줄에 비해 옻줄은 재료부터가 비싸고 줄을 입히는 데도 기술과 품이 훨씬 든다. 고급반에 사용하는 옻줄은 일본에서 애용하고, 먹줄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쓴다. 우리 전통 목공예 기법으로 파넣는 목상감줄도 선보인 바 있다.
옻줄은 흔히 ‘친다’라고 표현하고 먹줄은 ‘먹인다’라고 말한다. 먹줄은 바둑판 표면을 살짝 파서 줄을 놓기에 면과 평평하지만, 옻줄은 면 위에 사무라이 무사들이 쓸 법한 일본도 날에 옻을 묻혀 치기에 선이 0.5mm 정도 살짝 돌출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바둑판을 만드는 장인이 있지만 일본은 아예 기반사(棋盤師)라는, 바둑판을 만드는 가업을 대물림하는 명장 가문이 있고 이들이 만드는 바둑판은 상품이라기보다 빼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522029]SJboard.jpg](/media?src=http://photo.cyberoro.com/photo/201608/%255B522029%255DSJboard.jpg&board=baduk&pid=874243)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깊게 볼 대목이 있다. 맨위 바둑판 사진과 달리 네발이 달린 주안상 모양을 보자. 이게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바둑판이다. 맨위 사진, 연꽃무늬 네 발 조각이 달린 바둑판은 일본식이다. 우리나라 바둑판 다리는 아치 모양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초 고증조차 없이 태연히 일본식 다리 달린 바둑판에서 배우들이 바둑두는 장면을 접할 때 많이 아쉽다.
승부바둑 예술바둑 - 바둑판의 '배꼽'은 풀지 못한 수수께끼
무릇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있듯 바둑판 하나에도 깃든 생각과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한 예로 다리가 달린 고급바둑판을 뒤집어 보면 한복판에 가로 세로 8cm 정도의, 흡사 소형 피라미드를 거꾸로 옴폭 파놓은 듯한 정방형의 조각 홈이 있다. 이를 ‘바둑판 배꼽’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배꼽 홈의 용도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게도 나라마다 좀 다르다.
바둑은 중국 신화시대인 요순시대에 발아하여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만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애초 바둑의 원형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중국에서는 바둑을 둘 때 흑백 두 점씩 미리 포진하고 시작한 기보가 남아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흑백 서로 8점씩 포진하고 두는 순장바둑이 근대까지 두어졌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바둑판에 아무것도 배치하고 두지 않는 이른바 빈 바둑판에 두고 싶은 곳부터 마음대로 두는 ‘자유 포석제’ 바둑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두고 있는 ‘현대바둑’이다. 바둑이 일본에서 ‘현대바둑’으로 발전하고 만개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본바둑은 무사계급이 지배하던 바쿠후(幕府)시대부터 활성되었다.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천하가 통일되자 위정자들은 전쟁에 동원되었던 사무라이들의 승부욕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바둑이 장려되었고 그때부터 정책적인 후원에 힘입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다. 흔히 독재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떼어놓으려고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을 펼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시대에 일본은 바둑의 4종가(宗家)라 하여 혼인보가(本因坊家)-이노우에가(井上家)-하야시가(林家)-야스이가(安井家)가 있었다. 이 네 가문은 막대한 부와 명예가 보장된 명인 자리를 다투기 위해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바둑비법이 대문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단속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명인을 차지하는 건 곧 가문의 생존을 의미했고 자연 바둑의 승부는 목숨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자유포석제’로 둔 일본의 현대바둑을 일본바둑의 시작으로 잡는다 해도 줄잡아 400여년, 이 400여년의 역사는 승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22029]board02.jpg](/media?src=http://photo.cyberoro.com/photo/201608/%255B522029%255Dboard02.jpg&board=baduk&pid=874243)
흔히 배꼽이라고 부르는 갓난아기 주먹 크기만큼 움푹 파인 부분을 우리나라는 ‘향혈(響穴)’이라 하여 바둑판에 돌을 착점할 때 은은하고 향기로운 울림소리가 나게 할 목적으로 만든 장치라 생각한다. 음향효과론이다. 예전 오동나무로 만들었던 우리나라의 순장바둑판을 보면 바둑판 줄을 철사줄로 박아 착점할 때마다 텅엉텅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인들에게 가면 등골이 오싹할만한 용도로 바뀐다. 명칭부터가 ‘향혈’에서 ‘혈류(血溜)’로, 용도는 옆에서 훈수하는 자의 목을 베어 이곳에 거꾸로 놓아 피를 담기 위해 만든 구멍이었다 해석한다. 바둑판의 각(角)도 일본은 살이 스치면 베일 정도로 날을 세워 만든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간에는 바둑을 대하는 태도가 그 시작부터 달랐다. 우리는 예(藝)로 보았으며 그들은 철저한 승부로 본 것이다.
이 외에도 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배꼽을 팠다는 설도 있으나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바둑판의 배꼽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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