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f3da36e2f206a26d81f6e34781726f


요즘 신진서 상하이 대첩 재현때문에


이창호의 원조 상하이 대첩 이야기가 많은데


다들 연승에만 관심을 두기에 당시 이야기 적어봄.


바둑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창호가 당시 연승을


거두어서 역시 바둑의 신 이러면서 추앙하지만


의외로 당시 이창호는 신적인 존재에서 약간 내려온


상태였음.



7ff3da36e2f206a26d81f6e44786746f


6회 농심배가 2005년 2월이었는데


이창호가 이세돌에게 결승에서 패배한 것이


2003년이었고 2004년에는 최철한에게 패배해서


국수전과 기성전 왕좌를 내어준 상태.


한마디로 이 때의 이창호는 존엄한 신이 아니라


막 치고올라오는 신예들과 정면승부로 혈투를 벌이던


그런 시기.


그런데 그 결과는 좋지 않았는데 이세돌이야 다들 


알 것이고 최철한과는 결승에서 자주 만났는데 뒤로


갈수록 이창호가 압도당하면서 위세가 떨어지던 중.



7ef3da36e2f206a26d81f6e64788726d


상하이대첩의 대중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 이 시기의 이창호는 대중의 신뢰를


많이 잃어가고 있었음.


정말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창호 상하이 대첩 시기인 2004년 11월 29일


시작해서 다음 라운드 2005년 2월 23-6일 시기에


이창호는 여전히 최철한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그 결과는 국수전 0:3 패배였음.


그 날이 언제냐면 


바로 2005년 2월 19일 상하이대첩 중간이었음.


3:0 으로 또다시 최철한에게 패배한 이창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모두를 지키기위해 


상하이로 떠나게 됨.



7cf3da36e2f206a26d81f6e34781726f


돌부처라는 별명이 있지만


이창호의 대국을 보면서 가장


경외감을 느꼈던 게 이 시기의 이창호였음.


얼마전 3:0 패배를 당한 기사같지 않게


전혀 흔들림없는 대국을 펼쳤던 이창호.


아이러니하게 이창호는 자기자신에게 시련을


안겨준 최철한에게까지 농심우승컵을 들려주게


되었음.


신진서의 이번 대첩도 대단했지만 역시 이런 사정


들을 돌이켜보면 이창호의 그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순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