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죽음을 조롱하지 말라? 모든 죽음은 신성하다? 노무현의 죽음을 조롱하지 말고 박원순의 죽음을 조롱하지 말라? 엘리트가 이런 식으로 못 배운 사람을 억압하면 안 된다. 조롱이든 농담이든 집단에 보내는 경고 신호다. 엘리트는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트럼프의 집권을 보게 된다. 엘리트의 우월의식이 사회를 망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많은 부분은 동물적 본능에서 결정된다. 아프면 아파하고 슬프면 슬퍼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많은 사람이 의중을 감추면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 위선적인 도덕사회라면 건강하지 않다.



  김진은 업보이고 노무현과 박원순은 집단적 타살이다. 노무현과 박원순을 조롱한 자들은 스스로 짐승이 되었다. 인간이 망가져서 짐승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들이 짐승의 흉심을 들킨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짐승이 인간으로 위장하고 배회하는 것이 더 끔찍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군가의 희생없이 사회는 진보할 수 없다. 보수는 다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사회가 보수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는 희생을 거부하는 기득권의 몸부림이다. 누군가 희생해서 희생을 거부했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 된다. 친일파 죽음은 조롱해도 된다. 친일파는 인간이 아니다.



  1926년 2월 13일자 동아일보 1면 사설. 이완용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붓들려 갔다. 누가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능히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이냐. 이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고 외양만 보고 판단하는 사회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우리가 도덕가 행세를 하면 짐승들이 교화될 거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짐승들을 격리하는 방법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 인간흉내를 낸다고 고생하는 짐승들은 그냥 짐승 짓을 하도록 놔두는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