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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은 정말로 터가 안 좋은 걸까?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연일 들끓고 있다. 의외로 말머리는 적군이 아닌 아군을 향하고 있다. 수면 아래에서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터지자 서로에게 본격적인 수싸움이 화살 빗발치듯 오간다. 그야말로 한솥밥 먹는 식구에서 독을 타는 식구가 된 격이다. 인터넷도 한바탕 전쟁터가 되어 손가락질이라는 석궁을 들고 가타부타 비아냥대기 바빴다. 그러나 선악은 무언극 배우처럼 침묵했다. 은막 뒤에 가려진 내막이 어찌 됐건, 선악은 민희진의 뉴진스를 즐기고 있는 소생으로서 가급적 일이 원만하게 봉합되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민희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어렴풋이 베팅했으니까.


2024년 4월 25일 오후 3시. 민희진이 기자회견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플래시의 홍수 속에서 초췌한 모습은 등에 화살이 꽂힌 듯 자못 안타깝기도 하면서, 인조반정 때 세검정에서 칼을 간 이귀와 김류의 모습도 느껴져서 으스스한 위화감이 돌았다. 알고보니 그것은 참척(慘慽)의 모습이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되어 비참하고 원통함을 꾹꾹 눌러담은, 그저 애달프고 솔직한 여성이 카메라 앞에 섰을 뿐이었다.


이 선악이 삼류라면 민희진은 일류요, 이 선악이 초단이라면 민희진은 9단이다! 민희진이 기자의 플래시 세례를 끊고 마이크를 들더니 순식간에 판을 장악하고 뒤흔들었다. 단언컨대 그것은 선악이 여태까지 본 기자회견을 포함하여 그 어떤 예술 작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희노애락이 담긴 일종의 무대 공연 예술이었다. 선악은 도저히 타오르는 감흥을 견디지 못하고 목요일 백주대낮부터 소주를 꺼내 민희진이 말아주는 폭탄주를 안주 삼아 마셨다.


마이크는 마이크일 뿐이다. 그러나 누가 들었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은 달라진다. 전씨가 들면 사기꾼의 나팔이 되고, 민씨가 들면 복수귀의 파이프밤이 되는 법이다. 단장(斷腸)의 통곡으로 시작한 회견은 차츰 칼춤이 되어 대한민국 전토를 2시간 가량 마비시키는데 성공했다. 선악은 이 미증유의 역사적 기자회견이 흘러가는 여론의 물줄기를 비틀어 반전시켰다고 판단했다.


참, 민희진이라는 장르는 곱씹을수록 재밌다. 대한민국의 눈길을 두 시간 동안 끌었으니 타고난 스타의 기질도 있다. 지조와 절개가 호방하고 기백이 걸출하니 영웅의 자질 또한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숨김없이, 거짓없이 말하는 게 여실하게 느껴졌다. 억울함과 원통이 치받치고 주리 참듯 눈물을 참고있는 게 명확하게 보였다. 적어도 꺼삐딴 리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는 기회주의자는 아니라고 선악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특히나 '개저씨'라며 능상할 땐 감탄이, 뉴진스의 이야기를 꺼내고 통곡하여 흐느끼다가 목이 멨을 땐 존경이, '땡겨쓰기'를 비판할 땐 밑에서 한 번 개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나치게 꼿꼿해서 부러질 순 있어도 휘지는 않는 사람. 내리지 못하는 말 위에서 우는 사람.


민희진은 아마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문득 어느 사건이 생각났다. 국내에서는 에이벡스의 난이라고 알려진 2004년 에이벡스 쿠데타 사건(エイベックスお家騒動)이다. 사건의 골자는 이러했다. 2004년 7월 30일, 이사회에서 당시 회장이던 요다 타츠미가 [이익상반거래]를 명목으로 매니지먼트 이사였던 치바 류헤이의 해임안을 올렸고 가결되었다. 이에 반발한 치바 류헤이의 친우이자 또 다른 이사였던 맥스 마츠우라가 치바와 함께 자진 사임을 해 2004년 8월 1일자로 퇴사했다.


이때, 일본 여성의 카리스마라고 불리며 당시 일본 음악계를 제패하고 있었던 하마사키 아유미가 자신을 키워준 맥스 마츠우라의 퇴사에 반발해 공식적으로 '에이벡스 퇴사'를 암시하여 소동이 크게 발전했고, 에이벡스의 주가는 급락했다. 결국 요다 타츠미 회장이 꼬리를 내리고 맥스 마츠우라와 치바 류헤이의 복귀를 내정하며 사장, 부사장으로 취임시켰다. 맥스와 치바는 이어서 USEN(일본 최대 통신 회사)을 끌어들여 '요다 타도'를 천명했고, 싸움에서 패배한 요다 타츠미는 TOB(공개 매수)를 포기하고 회장직을 사임한다. 아티스트와 제작자가 의리를 지켜 회사를 사수한 아름답고 동화 같은 이야기다.


인간사, 참으로 덧없다. 칼 손잡이와 칼 끝은 가깝다더니 하이브와 어도어의 관계가 이럴 줄 누가 알았겠나. 아이돌 업계의 신화라고 불리던 민희진이 용산의 이카로스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어느새 인터넷 찌질이들은 민희진을 교만하고 악독하고 요사스럽고 부덕하고 비상식적인 마녀로 몰고 점화를 할 준비를 끝마쳤다.


인간사, 참으로 더럽다!


이러나 저러나 가장 큰 의문은 '민희진과 뉴진스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일 것이다. 선악은 확답할 수 있다. 이어지는 뉴진스의 더블 싱글은 멜론 차트 1위를 거머쥘 것이고 민희진의 천재성은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바라자. 그녀들에게 흉조의 까마귀가 아닌 평화의 비둘기가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