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스페인의 주도로 식민지가 운영되고 이로 인해 수 많은 원주민들이 노예가 되거나 사망한다.

이는 스페인 본토에서조차 교회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해진 지경이었다.



식민지 인구의 감소와 비판이 이어지자 스페인 왕이었던 카를로스 1세는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아메리카의 스페인인들이 왕으로부터 권리를 인정받아 식민지를 직접 운영하는 엔코미엔다
(Encomienda) 제도를 폐지하고자 했지만 식민지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스페인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카를로스 1세는 엔코미엔다 폐지는 실패했지만 식민지 인구의 감소를 줄이기 위해 1550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사건을 바야돌리드 논쟁(Junta de Valladolid)이라고 한다.




당시 스페인 최고의 지성인중 한 명인 세풀베다
(Juan Gines de Sepulveda)는 스페인의 정복활동을 옹호했다.

원주민들의 식인이나 인신공양 행위는 자연에 반하는 죄이며 이는 곧 신에 대한 죄를 지은 것이기에 이성적 존재가 아닌 원주민들을 강압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여담으로 세풀베다는 굉장히 호전적인 인물이어서 16세기 중엽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십자군 원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세풀베다에 맞선 것은 도미니코회 사제이자 역사가인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였다.

그는 아메리카 원정에 군종신부로 참여하면서
세풀베다와 달리 실제로 원주민에 대한 잔혹한 만행을 목격하였고 바야돌리드 논쟁 이전부터 원주민에 대한 처우 개선이나 앞서 말한 엔코미엔다 제도 폐지를 성토하였다.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원주민들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세풀베다의 말에 라스 카사스는 그들 또한 신의 자손들이며 그들의 권리와 영토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식민지가 원주민들의 노동으로 운영되던 상황에서 갑자기 원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하면 노동력은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는 반발에 라스 카사스는 기가 막힌 의견을 내놓는다.




바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식민지로 데려가서 노동력으로 쓰자는 것이었다.

매우 당황스럽지만 라스 카사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 근력이 뛰어난 흑인들을 노예로 쓰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았지만 흑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 듯하다.

바야돌리드 논쟁의 결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권리가 인정되어 이들을 노예화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 물론 그 대신에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대규모의 흑인 노예 무역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여담으로 라스 카사스는 나중에 흑인 노예들이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주장을 후회하였으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한국에서는 비교적 인지도가 없지만 최초의 피식민지인들의 권리에 대한 논쟁이자 근대적인 국제법의 탄생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서양사학계에서는 16세기 중 굉장히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는 만큼 세풀베다와 라스 카사스는 충분히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