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하신 '왕녀'와 '복수' 혹은 '반전'의 키워드를 담은 짧은 소설의 도입부입니다.
[왕녀는 단두대 위에서 웃는다]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이여, 이 소리가 들리는가?”
차가운 겨울바람이 목을 베는 단두대의 칼날보다 시퍼렇게 몰아쳤다. 광장에 모인 군중은 왕녀 ‘이사벨라’를 향해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부었다. 화려했던 금발은 오물로 뒤섞여 떡이 졌고, 비단 드레스는 갈기갈기 찢겨 수치스러운 몰골이었다.
그녀의 오라비이자,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찬탈한 1왕자 카시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동생아, 마지막으로 할 말이 그것뿐이냐? 네가 죽어야 이 나라에 평화가 온단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들어 카시안을 보았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 줄 알았던 그녀의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맑게 빛났다. 이사벨라는 입가에 고인 피를 퉤, 하고 내뱉으며 낮게 읊조렸다.
“오라버니, 당신이 잊은 게 하나 있어.”
“무엇을?”
“내가 이 나라의 ‘왕녀’인 이유는 단순히 국왕의 딸이라서가 아니야.”
이사벨라의 발치에서부터 검은 그림자가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군중들의 욕설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변했다. 성벽 위의 깃발들이 일제히 타오르고,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 나라의 땅과 피가 오직 나에게만 응답하기 때문이지.”
이사벨라는 자신을 억누르던 포박을 가볍게 끊어내며 일어섰다. 단두대의 칼날이 허공에서 스스로 산산조각 났다.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딛자, 카시안의 발밑에서 수천 개의 가시 덩굴이 솟구쳐 올랐다.
“자, 이제 누가 처형당할 차례인지 다시 정해볼까?”
왕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이제 왕위를 되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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