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왕녀는 단두대 위에서 웃는다]의 제3화입니다.
[제3화: 어둠 속에서 온 계약자]
반란은 평정되었으나, 왕궁의 공기는 여전히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이사벨라는 흙먼지와 피가 묻은 드레스를 갈아입지도 않은 채 왕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승리의 고양감 뒤로 지독한 공허함과 탈력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림자뿐이었던 집무실 구석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관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우신 모양입니다, 전하.”
“누구냐!”
이사벨라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격할 기색 없이 우아하게 걸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에 서늘한 은색 안대를 한 사내였다.
“제국에서 온 그림자, '카엘'이라 합니다. 전하께서 단두대를 부수던 순간의 불꽃에 반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죠.”
카엘은 이사벨라의 구두 앞코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사벨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제국이라면 이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강대국이었다.
“제국의 사냥개가 왜 이곳에 있지? 카시안과 내통하던 놈인가?”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카시안이 제국에 팔아넘기려 했던 ‘금지된 마법병기’의 열쇠를 회수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열쇠는... 전하의 심장 속에 녹아들었죠.”
이사벨라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단두대에서 각성했던 그 기이한 힘, 땅이 진동하고 가시 덩굴이 솟구쳤던 마력은 단순히 왕실의 혈통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뜻인가.
“말해. 네 목적이 뭐지?”
“전하를 완벽한 여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제국의 황제는 당신의 나라가 카시안 같은 멍청이의 손에 망가지는 걸 원치 않거든요. 대신, 대가가 따를 겁니다.”
카엘이 고개를 들자 안대 너머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제가 전하의 ‘칼’이 되어드리는 대신, 전하께서는 저에게 당신의 ‘밤’을 주셔야겠습니다.”
이사벨라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목숨을 걸고 되찾은 왕좌였다. 그까짓 밤이든 영혼이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 팔 것도 없었다.
“좋다. 네가 내 충견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해 봐. 당장 내일 아침, 카시안을 지지했던 귀족들의 명단을 가져와라. 그들의 목으로 내 대관식의 레드카펫을 깔 생각이니까.”
어둠 속에서 카엘의 낮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로운 동맹, 혹은 더 지독한 속박의 시작이었다.
제4화 예고:
귀족들의 반발과 대관식의 위기. 그리고 이사벨라의 심장에 숨겨진 '마법병기'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