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사신의 얼굴]

제국군이 보낸 사신이 왕궁 대전에 발을 들였을 때, 이사벨라는 왕좌에 비스듬히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그림자처럼 카엘이 버티고 서 있었다.

철갑을 두른 사신이 투구를 벗자, 장내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오랜만이야, 이사벨라.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제사라도 지내주려 했는데.”

사신의 정체는 이사벨라의 옛 약혼자이자, 제국의 3황자 ‘에녹’이었다. 그는 이사벨라가 카시안에게 쫓겨날 때 가장 먼저 파혼을 선언하고 등을 돌렸던 사내였다.

“에녹, 네가 제국의 사냥개가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군. 내 목을 치러 왔나?”

이사벨라의 서늘한 물음에 에녹은 비릿하게 웃으며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황제 폐하의 제안이다. 지금 즉시 제국에 항복하고 속국이 된다면, 네 그 가짜 왕좌와 일 년 남짓 남은 목숨은 보전해주겠다고 하시더군.”

이사벨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국은 이미 그녀의 시한부 운명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곁에 선 카엘을 힐끗 보았다. 이 정보가 어디서 흘러나갔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거절한다면?”

“그럼 이 성은 오늘 밤, 제국이 자랑하는 마법병단 ‘검은 까마귀’에 의해 잿더미가 되겠지.”

긴장감이 극에 달한 순간, 갑자기 카엘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황자님, 주인님과의 대화가 너무 무례하시군요.”

“네놈은 누구지? 제국의 천민 주제에 감히…!”

에녹이 검을 뽑으려던 찰나, 카엘의 손가락이 가볍게 튕겨졌다. 에녹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폭발하듯 솟구쳐 그의 사지를 묶어버렸다.

“윽! 이, 이 힘은…!”

“전하, 이 사신은 제가 처리할까요? 아니면… 실험 재료로 쓰시겠습니까?”

카엘의 눈 속에서 붉은 안광이 소름 끼치게 빛났다. 이사벨라는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나 에녹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에녹의 뺨을 서늘한 손으로 만지며 속삭였다.

“제국에 전해라. 항복은 내가 아니라 황제가 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에녹, 너는 돌아갈 수 없어.”

이사벨라의 심장이 격하게 박동하며 금빛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에녹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네 생명력을 조금 빌려야겠어. 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제물’이 필요한 참이었거든.”

에녹의 비명소리가 대전을 가득 채웠다. 이사벨라의 창백했던 안색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반대로 에녹은 순식간에 노인처럼 쪼그라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카엘은 기괴할 정도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제가 고른 여왕님답습니다.”

그날 밤, 제국군 진영 위로 거대한 불꽃이 내려앉았다. 전쟁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