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왕녀는 단두대 위에서 웃는다]의 제9화입니다.
[제9화: 얼어붙은 성의 주인]
폭발적인 마력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이사벨라가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것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그리고 모든 것이 시간이 멈춘 듯 은백색으로 얼어붙은 거대한 성채였다.
"허억, 헉..."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찢어지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던 오른손은 검게 타올라 감각이 없었다. 그때, 눈보라 사이로 정갈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스스로 열쇠를 비틀어 이곳까지 오셨군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분입니다."
이사벨라는 떨리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제국의 군복도, 성기사단의 갑옷도 아닌, 고대 왕국의 예복을 갖춰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이사벨라 앞에 무릎을 꿇으며 눈 덮인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발디마르 왕실의 마지막 수호자, '에드먼드'가 진짜 왕녀님을 뵙습니다."
"진짜... 왕녀라고? 나는 반역자의 여동생으로 몰려 단두대에 섰던 여자다. 수호자 같은 건 필요 없어. 내 심장을 고칠 방법이나 내놔."
이사벨라가 이를 악물며 독설을 내뱉었지만, 에드먼드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물려받으신 '열쇠'는 왕좌를 지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의 거대한 저주를 봉인하는 말뚝이죠. 카엘이라 불린 그 악마는 전하를 이용해 봉인을 풀려 한 것입니다."
에드먼드의 손가락이 성의 꼭대기를 향했다. 그곳에는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며 공중에 떠 있는 수정 잔, '성배'가 있었다.
"저 성배 안에는 전하의 타버린 수명을 채워줄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시는 순간, 전하께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영원히 이 북부를 지키는 얼음의 마녀가 되어 살아가야 하죠."
이사벨라는 실소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니. 하지만 망설임은 짧았다. 멀리서 대지를 가르는 듯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엘과 유리엘, 두 괴물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인간으로 죽느니, 괴물로 군림하겠다."
이사벨라는 에드먼드의 부축을 뿌리치고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발자국 위로 얼음 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성의 대문을 연 순간, 이사벨라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성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얼음에 갇힌 채 살아있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열쇠'를 품었던 선대 왕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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