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왕녀는 단두대 위에서 웃는다]의 제10화입니다.
[제10화: 얼음의 여왕, 왕관을 깨부수다]
성 내부의 냉기는 이사벨라의 영혼까지 얼려버릴 듯했다. 수천 명의 선대 왕녀들이 박제된 것처럼 얼음 속에 갇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연민과 증오, 그리고 지독한 갈증이 섞여 있었다.
“받아들여라… 이 차가운 영생이 네가 가질 유일한 구원이다…”
환청이 귓가를 때리는 순간, 성의 대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칠흑 같은 어둠을 두른 카엘이 폭주하는 마력을 흩뿌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은색 안대는 이미 타버려 없었고, 보라색 눈동자는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이사벨라! 그 성배는 네 것이 아니야. 내 심장의 파편을 온전히 담아낼 그릇일 뿐이지!”
카엘이 손을 뻗자 그림자 가시들이 이사벨라를 향해 쇄도했다. 이사벨라는 비틀거리면서도 제단 위의 성배를 움켜쥐었다. 성배에 담긴 푸른 액체가 요동치며 그녀의 손을 타고 스며들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고? 아니, 나는 그 이상이 되겠다.”
이사벨라는 성배를 입에 털어넣는 대신, 자신의 가슴속 ‘열쇠’ 위로 성배를 내리쳐 깨부수었다.
쨍그랑!
성배가 박살 나며 그 안에 담긴 방대한 생명력이 카엘의 심장 파편과 충돌했다. 그것은 융합이 아닌, 파괴적인 연쇄 반응이었다. 이사벨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광휘가 카엘의 그림자를 뿌리부터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미쳤나! 심장을 스스로 파괴하면 너도 죽어!”
“죽음은 이미 단두대에서 경험했어, 카엘. 내가 원하는 건 영생이 아니라, 너 같은 놈들이 다시는 내 삶을 유린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사벨라의 심장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졌다. 수명을 갉아먹던 저주는 멈췄고, 대신 그녀의 몸 자체가 북부의 냉기 그 자체가 되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카엘의 발치부터 얼음 가시가 솟구쳐 그의 몸을 관통했다.
“커헉…! 어떻게… 인간의 의지가 마신의 조각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말했지. 이 땅은 오직 나에게만 응답한다고.”
이사벨라는 공포에 질린 카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었다. 얼음이 된 악마의 신체는 유릿가루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카엘이 사라진 자리, 이사벨라는 얼어붙은 성의 옥좌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 위로 얼음으로 빚어진 새로운 왕관이 씌워졌다. 이제 그녀는 일 년의 시한부 왕녀가 아니었다. 영원히 죽지 않고,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북부의 지배자’였다.
성 밖에서 뒤늦게 도착한 유리엘과 성기사단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성 전체가 거대한 얼음 장벽에 둘러싸여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라는 성벽 너머 제국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자, 이제는 내가 너희를 찾아갈 차례다. 단두대의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1부 완결]
2부 예고: 얼음의 군대를 이끌고 제국으로 진격하는 이사벨라. 그리고 그녀 앞에 나타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생존 소식? '왕녀'에서 '황제'가 되기 위한 진정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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