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혼미함 경(Susammuṭṭhā-sutta) (S1: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어떤 천신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그때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사성제의] 법에 크게 미혹한 자들은
외도의 교설로 인도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잠들어 있어 깨어나지 못했지만
그들 이제 깨어날 시간 되었습니다.”

 


3. [세존]
“[사성제의] 법에 미혹하지 않는 자들은
외도의 교설로 인도되지 않도다.
완전하게 깨달은 자들 바른 구경의 지혜 구족하여
평탄치 못한 곳에서도 올곧게 가도다.”



상윳따 니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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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1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18-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19-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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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20-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지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21-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21-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21-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 ―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21-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正語]인가? 

비구들이여, 

거짓말을 삼가하고 

중상모략을 삼가하고 

욕설을 삼가하고 

잡담을 삼가하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21-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비구들이여, 

살생을 삼가하고 

도둑질을 삼가하고 

삿된 음행을 삼가하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21-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21-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2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正念]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느낌들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21-9.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 pīti]과 행복[樂, sukha]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sampasādana)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


21-10.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


디가 니까야 ㅡ 대념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