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이 또렷했다. 거기에는 언제나 땀과 포효하는 분노 속에서의 야만적인 평온이 있었다.


나는 말을 계속 했다.


가장 병든 마음으로 이루어진 요새를 상상해보게. 지질학적 분노에 휩싸인 그 행성의 수도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정지대에 자리했다네. 용암의 강 속에 살아있는 귀중한 광물들은 수십만의 광부들이 상주하도록 만들었네만, 행성 자체는 여전히 모든 인간의 손길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네. 그곳이 페레게론 4일세, 사촌들이여. 마그마를 피로 삼고, 연기를 공기 삼으며 절반만이 빚어진 채 여전히 진통으로 몸부림치는 곳일세.”


에케네가 미소를 지었다.


데스스피커 그리말두스, 당신께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뛰어난 달변가시군요.”


나는 스스로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심판의 선언문을 말하거나, 증오의 기도문을 구상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 마지막 요새는 화산 속에 자리했기에 정점이라 불렸네. 아마 화산에 관련된 모든 지질학적 기록을 통틀어도 거기에 비할 곳이 별로 없을 것이네. 심지어 성스러운 화성의 올림푸스 포지의 정상보다도 더 거대했으니까. ‘정점은 일반적인 행성의 작은 대륙만한 크기로 페레게론의 지표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네. 내부에서 화산의 뿌리는 행성의 중심까지 이어졌고. 평화의 시기에 제국은 그곳을 파내어 더욱 깊게 채굴했네. 전쟁이 닥쳐오자, 그곳은 적 사교집단의 마지막 요새가 되었지. 우리는 반역자들이 그곳을 폐쇄해 스스로를 가두기 전에 타격해야만 했네.”


한 사자가 물었다.


데스스피커께서는 적들이 그 전쟁을 최후의 전쟁이라 일컬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흑기사들은 무엇으로 불렀습니까?”


빈쿨루스 성전이라 불렀지. 그리고 피와 불의 전투로 끝났네. 많은 기록에서 인퀴지터 빈쿨르스와 사원의 꼭대기에 있던 대 반역자의 마지막 결투를 묘사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네. 하지만 언제 제국의 공식 기록에서 진실을 따지던가?”


그로 인해 사자들의 얼굴에서 쓴웃음이 번졌음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열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화산 속에서 보냈던 마지막 몇 시간 동안의 그 뜨거운 열기를.

유조차와 화물 운반설비가 지나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수송 통로가 화산을 거쳐 산맥의 공업 설비로 이어졌지만, 그곳들은 폐쇄되었고 수 주 간의 공중 공격에도 버텨냈네. 이제는 그곳에 대 병력이 강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주 관문을 통해 정면 공격하는 방법만이 남았네.”


나는 스스로 그 날을 정당화 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 함께 하고 있는 전사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말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공격의 선봉대로서 하이 마샬 루돌루스의 소드 브레스렌에 속해 있었다네. 선봉대는 아군의 주력이 산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요새의 관문을 확보해야 했지. 병력이 강하할 공간이 없어서 블러디 로즈 오더의 자매들과 우리의 형제들은 지반이 안정적인 고원에 강하하여 그곳에서부터 바위산을 타고 올라야 했네. 선봉대는 호흡기가 없는 일반인이라면 질식하고도 남을 만큼 짙은 화산성 대기를 뚫고 드랍 포드로 강하했지. 30명이었네. 하이 마샬이 직접 고른 정예였지.”


나는 사자들이 보이는게 내 헬멧 렌즈일 뿐일지라도 그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네. ‘관문을 고수하라.’ 그것이 주군의 명이었네. ‘다른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관문을 고수하라.’ 그게 전부였네.”


그는 분노를 토해내고 싶었으나 포효하기에도 숨이 가빴다. 지친 분노가 그의 사지를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었고, 느릿하게 어루만지며 고난에 빠뜨렸다. 이토록 지쳐본 적이 없었고, 이토록 기운이 빨려나간 느낌도 처음이었다. 전쟁은 지쳐버린 도축장 작업, 불타는 근육으로 밀고 당기며 칼날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단순한 행동이 되어버렸다.


살육당한 적이 바위 지형 도처에 널브러졌다. 그의 형제들 가운데 아직 서 있는 이들은 방어구를 갖춰 입은 시체들의 장애물 뒤에서 싸우고 있었다. 찢어지는 괴성을 지르는 광인들이 공포를 모르는 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은 소리치는 무리가 되어 달려들며 스스로의 목숨을

싸구려 동전마냥 허비했다.


아이-아이-아이이이이이!” 개자식들은 도축자의 칼날로 뛰어들며 멈추지 않고 괴성을 질렀다.


기사는 혼란 속에서 주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명령을 외치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들이 달아나지 않고 싸우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질타의 외침도 아니었다. 아니다, 그는 황금으로 장식한 전사인 주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웃음이었다.


그것이 루돌루스의 방식이었다. 하이 마샬은 시체의 장애물에 한 발을 걸쳤고, 멈추지 않고 번득이는 검광 속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검을 휘두르고 내리 찔렀다. 전투의 열기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그리말두스는 가까스로 숨을 쉬며 저주를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그를 위해 노래하는 체인소드의 포효성은 진동하는 톱날의 울부짖음과 인간의 몸뚱이를 찢어발기며 고깃덩이로 소리를 죽인 으르렁댐 사이를 오갔다.


산비탈 아래에서 제국의 군세가 등반하려 애쓰고 있었다. 관문에서는 페레게론의 사교도 군대가 반란의 실패와 마주하자 더 이상 비틀린 진실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있었으나 지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는 먼지로 변했다. 마지막 근거지는 공격받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그 순간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방어자들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가 아니라 달아나기 위해 싸우는 때였다. 그것은 독성 대기 속에서의 변화였다. 어느 군세에서나 외치는 분노의 함성이 어떠한 청각적 흐름마냥 바뀌는 변화였다. 어떠한 실질적인 조짐도 없었으나, 고사리 숲을 집어삼키는 불길처럼 파져나갔다. 이제 더 이상 후퇴전이 아닌, 패주가 되었다. 방어자들은 와해되었으며, 그들이 등을 돌리고 달아나며 살육이 벌어졌다. 조금 전만 해도 광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침략자에 맞섰던 이들이 등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 기사의 눈에 겁쟁이의 죽음으로서 그 이상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리말두스는 지하의 거점을 충실하게 가리키는 거대한 천사상의 시선 아래에서 주군의 곁에 서서 싸웠다. 한 시간 전에 헬멧이 찢겨나갔고, 탁한 공기 속에서 그의 강화된 호흡기는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서 있었으며, 싸웠다, 그리고 그의 검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적이 몰려들며 그의 사지를 잡아당겨 넘어뜨릴 기회를 노리고 자기들의 목숨을 희생했다. 그는 적을 검과 발, 주먹으로 죽였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그의 타바드에 역겨운 자국을 남겼다. 대부분의 적을 가까스로 비명만 내뱉을 정도로 빠르게 죽였다. 곤충의 안면을 닮은 산소마스크가 없는 이들은 검으로 처단할 필요도 없이 질식해 죽었다. 호흡기의 산소통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죽이는데 충분했다.


거대한 관문은 이제 닫을 수 없었다. 설령 흑기사들이 도착하며 기계장치를 멜타 폭탄으로 파괴하지 않았더라도 통로에 널브러진 시체가 워낙 많아서 문이 닫힐 수가 없었다. 적은 동물적인 절망에 빠진 채 자기들의 신전 도시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한 무리의 적들이 땀을 쏟으며 자기의 형제들이 흑기사들의 칼날에 죽어가는 동안 거대한 석문을 닫으려 애썼다.


처음으로 올라와 기사들에게 닿은 제국군은 인퀴지션 군주들의 일원이자 아뎁타 소로리타스 군세의 임시 지휘자인 빈쿨루스 본인이었다. 그는 뒤따를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체들의 장애물을 타넘어야 했다.


블랙 템플러의 하이 마샬 루돌루스는 대동했던 소드 브레스렌 중 남은 9명과 함께 그를 기다렸다. 그리말두스는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지친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독으로 지원군에 대한 소식도 듣지 못한 채 거의 세 시간을 싸웠다. 박살난 시체 수백 구 사이에서 소드 브레스렌들은 사지에 힘이 빠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부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쓰러진 채 머리조차 들지 못했다. 스페이스 마린인 만큼 그들은 일반인들이라면 며칠은 쉬어야 할 상황에서도 몇 분이면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필멸의 전사였다. 육체는 곤경을 겪었고, 기계 팔다리조차 관절이 혹사당해 오작동을 일으켰다.


단 한 명만이 서 있었다. 그는 결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


그의 주군이 말했다.


잘 싸웠더구나. 이젠 네가 운을 타고난 게 아닌가 싶다, 메렉.”


그리말두스는 긁힌 갑주의 관절부에 박힌 총검을 뽑아내고 내던졌으나 피는 흐르지 않았다. 주군에게 성전사의 십자가를 그으며 답하고 상처가 스스로 아물게 기다렸다.


루돌루스는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폐 셋이 탁한 공기를 거르게 놔두었다. 그리말두스는 지휘관의 시선이 갑자기 왼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시선도 그리로 돌렸다.


영원한 성전의 레클루시아크, 모드레드가 죽은 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루돌루스의 소드 브레스렌으로 가장 최근에 승급한 그를 은빛 면갑의 붉은 렌즈로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